무고한 남측 민간인 관광객이 북측 초병의 총격을 받고 사망하면서 휴전선에 냉기가 돌도 있다. 사과를 해도 시원치 않을 판에 가해자는 피해자에게 사과를 하라고 으름장을 놓고 있고... 참 답답한 현실이다.  개방은커녕 기존의 교류마저 중단될 위기에 처해 있는 것이다. 

현해탄의 냉기도 만만치 않다. 일본 문부과학성이 중학교 신학습지도요령 해설서에 독도 영유권을 명기하려 하고 청와대는 단호한 대처를 다짐하고 지만 여기까지 온 마당에 ‘원만한’ 타협은 원천적으로 불가능해졌다.

알고 있는가. MB독트린이란 게 있다. 우리 외교의 7대 과제와 원칙을 정리한 것인데 핵심은 크게 세 가지다. 한미동맹의 강화와 비핵·개방3000, 그리고 아시아 외교 확대다.

지금까지 그대로 추진해 왔다. 한미동맹을 전략적 동맹으로 한 차원 끌어올리기 위해 노력해왔고, 북한에게는 당근을  줄테니 핵을 포기하라고 압박했다. 아시아 외교를 확대하기 위해 일본에 유화적인 제스처를 취한 것도 맞는 일이다. 

그런데 이  MB독트린이 무너지고 있다.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지 다섯 달도 채 되지 않아 MB독트린이 고립무원에 빠진 것이다.   

중국은 뿔이 나 있고  한국 정부의 한미동맹 강화 움직임에 외교부 대변인이 직접 나서서 대놓고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는 정도다. 다른 날도 아니고 이명박 대통령이 자기 나라를 방문하고 있던 때에 그렇게 했다.
반대로 북한에 대해서는 시진핑 국가 부주석을 보내고 식량지원과 경제협력을 강화하고 있다.

미국은 외면하면서 다른 곳을 쳐다보고 있다. 북한에 잇따라 유화책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북한이 핵 신고서 제출 후 검증절차를 개시하기만 하면 8월 11일을 기점으로 테러지원국에서 해제해줄 계획이다. 식량 50만t 지원을 약속했고 이미 1차 지원분을 보내는 것을 하면서 한국을 왕따시키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의 MB 독트린은 이제 뭉개져 가고 있다. MB독트린을 발판삼아 한국을 사통팔달의 요충지로 삼으려던 계획은 사면초가의 외톨이 신세를 자초하는 결과를 낳고 있다.

어떻게 된 걸까.  어쩌다가 일이 이 지경에 이른 걸까.  다른 건 몰라도 한가지는 분명하다. 자기과신·자기중심의 사고가 이런 결과를 가져왔다는 것을 즉 스스로 자초한 결과라는 것이다.

외교는 상대가 있는 게임이다. 따라서 외교 전략은 ‘희망’이 아니라 ‘계산’이어함에도  MB독트린은 이 ‘기본’을 무시했다. 상대의 외교전략을 낳는 요인을 두루 살펴 현실 가능한 목표와 전략을 짜야 한다는, 외교 문외한도 말할 수 있는 기본 중의 기본을 경시했다.

체제의 흥망을 핵에 걸고 있는 북한에게 ‘핵을 포기하면 당근 줄께’라고 말하는 건 애당초 말이 안되는 것이었다. 당근이 아니라 당근 밭을 통째로 내줘도 될까 말까 한 상황에 ‘국민소득 3000달러’를 운운했고 그 결과 ‘참을 수 없는 모독’이란 험한 대답이 돌아왔다.

일본이 독도를 깨끗이 포기하는 일은 근본적으로 대한민국의 희망사항일 뿐이었다. 보수주  의가 넘실대는 일본 정계의 생리상, 그런 일본 정계의 보수주의를 돌파할 양심세력이 위축될대로 위축된 현실상 독도는 언제라도 재등장할 폭탄이었다. 그런데도 우리가 ‘아량’을 보이고 ‘관용’을 보이면 문제가 없을 것처럼 낙관하는 일은 가당치도 않은 일이었다.

중국의 민감 부위를 살피지 않은 것도 문제였다. 미국이 호주와 일본을 축으로 하는 ‘대양동맹’을 구축해 중국을 봉쇄하려 하는 데 대해 중국이 얼마나 민감해 하는지, 이런 상황에서 한국이 한미동맹 격상을, 그것도 군사적인 동맹 강화를 추진하려는 데 대해 얼마나 예민해 하는지 살폈어야 했다. 

미국의 북핵 해결 이후 전략을 꼼꼼히 둘러보지 않은 것도 한심한 일이다. 미국이 북핵 해결 대가로 뭘 내놓을지, 그러면 북한의 처지와 북미관계가 어떻게 바뀔지를 주의 깊게 고려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북미관계가 급진전되면 북한의 대남 효용력이 떨어질 수 있다는 점을 크게 생각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냥 하면 되는 줄 알았을 것이다. 우리만 잘 하면, 이명박 정부가 원칙을 갖고 나가면 되는 줄 알았을 것이다.  그런데 그 결과가 바로 오늘이다.   

북한은 남북관계가 경색되는 것에 아랑곳하지 않고 무고한 민간인에 총격을 가했다. 그래서 대남 관계가 얼어붙어도 미국으로부터, 중국으로부터 식량이 지원되고 달러화와 위안화가 들어오기 때문이다.

일본은 한국 정부의 반발에 신경쓰지 않고 ‘다케시마’를 다시 읊조린다.  그래서 대한관계가 냉랭해져도 미국·호주와의 동맹관계만 잘 유지하면 정치·국제적 타격은 별로 크지 때문이다. 

이명박 정부는 할 게 없다. 북한을 향해 강경책을 써봤자 효과가 없고 극단적으로 개성·금강산 사업을 포함한 대북교류사업을 전면 중단한다 해도 북한은 크게 아쉬울 게 없는 상태다. 중국이 등을 토닥거리고 미국이 웃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을 향해 단호히 대처해도 효과가 없다. 주일대사 소환과 같은 초강경 외교책을 써봤자 일본이 크게 타격받을 게 없다. 중립‘을 견지하는 맹방 미국이 있는 한 오히려 득이 된다. 독도문제를 국제 분쟁화 하면 일본은 오히려 한 걸음 더 앞으로 나가는 것이 될 것이다.   

둘러보면 MB독트린은 사방에 갇힌 게 아니라 처음부터 우물 안에 빠져있었던 것이다. 자기가 올려다보는 하늘이 중천인 줄 착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제라도 새로 짜야 할 것이다. 동북아 현실과 정세를 냉정하게 살피고 자신을 겸허하게 돌아본 다음에 짜야 한다.

그런 면에서 이명박 정부가 지금 당장 그려야 하는 그림은 추상화가 아니라 구상화라는 점은 명백하다. 

그럴려면 일단 갇힌 우물에서 빠져 나와야 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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