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울진숲길,주민들 요구와 시대적 생활 배려

길은 사람뿐만 아니라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이 현재라는 시-공간에 있기까지의 흔적으로 가야할 방향을 제시 해준다.

한편으론 사람과 뭇생명들이 오고가는 공간을 길이라고 일컫는다.

숲길은 숲으로 가는 길이며, 숲과 만나는 길이다. 요즘 길이라는 의미는 시대의 빈곤을 상징적으로 말해주는 것 같다.

미리 목적지를 정해두고, 그 곳으로 빠르게 가는 수단으로 길을 이해하기도 한다.

이러한 길은 맹목적이며, 감성도 소통도 없으며, 경쟁과 속도만이 지배한다.

그 결과 사람이 뭇생명의 우위에 있으며, 뭇생명은 사람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라고 착각한다.

과정도 중요하지 않으며, 결과만으로 평가한다.

공동선은 퇴색되고, 개인은 벌거숭이로 만인에 대한 만인의 전투장으로 내몰린다.

한번쯤은 이 시대의 풍경을 스스로에게 물어볼 필요가 있는 것 같다.

무한경쟁과 속도, 개발만능, 빌딩과 돈, 직위로 상징되는 시대 앞에서 이에 대한 성찰과 탈출구는 없을까. 

고향을 만나고 싶다. 생명을 만나고 싶다.

"길이 있다면, 어디 두천쯤에나 가서 울진군 북면의 버려진 너와집이나 얻어 들겠네, 거기서 한 마장 다시 화전에 그슬린 말재를 넘어 눈 아래 골짜기에 들었다가 길을 잃었네.

저 비탈바다 온통 단풍 불 붙을 때 너와집 썩은 나무껍질에도 배어든 연기는

매워서 집이 없는 사람 거기서도 눈물 잡겠네 (중략) 따라오는 등뒤의 오솔길도 아주 지우겠네, 마침내 돌아서지 않겠네.

울진에 태어나 유년을 보낸 김명인 시인(고려대 교수)의 ‘너와집 한 채’(1992년)다.

이 시에는 금강소나무숲길(십이령길)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이 시에는 내가 있고 길이 있으며, 인생이란 여행이 있고, 인간 내면의 그리움이 녹아 있다.

가지고 또 가져도 허기진 욕심, 움켜쥐고 더 움켜쥐어도 잡히지 않는 욕망을 던져버리고 나를 찾아 나를 위로하고 싶을 때 언제든지 가고 싶은 어머니의 품 같은 곳, 마음의 고향.

바로 그 곳이다.

울진의 보부상 옛길-‘십이령’

울진은 바다를 접해 있기에 남북과 서쪽으로 이어진 큰 길이 있기 마련이다.

지금은 7번 국도와 36번 국도가 있지만 이 도로가 만들어지기 전에는 관동로와 십이령이 그 역할을 대신했다.

울진에서 서쪽 방향인 내륙으로 통하는 길은 십이령길(흥부, 죽변, 울진장), 고초령길(매화장), 구주령길(평해장)이 있다.

그 중 대표적인 길이 십이령길이라고 할 수 있다.

십이령은 옛 보부상들이 흥부장, 울진장, 죽변장에서 해산물을 구입하여 봉화, 영주, 안동 등 내륙지방으로 행상을 할 때 넘나들던 열두 고개를 말한다.

이 길은 백두대간에서 갈라진 낙동정맥으로 산악이 높고 구간이 길어 도적이나 맹수들의 습격이 많았다.

그래서 보부상들은 개별 행동은 매우 위험해 집단적으로 행동하여야 했다.

보부상들뿐만 아니라 지역주민들도 이용하였고, 암행어사, 원님, 선비도 이 길을 다녔다.

십이령은 쇠치재~바릿재~샛재~너삼밭재(저진치)~너불한재~한나무재(작은넓재)~넓재(큰넓재)~꼬치비재~곧은재~막고개재~살피재~모래재다.

보부상들은 흥부장이나 죽변장, 울진장에서 미역, 건어물, 소금, 생선, 젓갈 등을 구입해 봉화, 영주, 안동장에 내다 팔고 다시 내륙지방의 생산품인 피륙, 비단, 담배, 곡물 등을 사서 해안 장터에 와서 팔았다.

그들은 흥부장에서 봉화 소천장 방향으로 이동할 때 바릿재 아래에 있는 북면 두천 주막거리에서 1박을 하고, 아침 일찍 집단을 이뤄 출발했다.

아침 일찍 두천 주막거리를 떠나 십이령의 두 번째 고개인 바릿재를 오른다.

바릿재란 이름은 소에다 물건을 바리바리 싣고 다녔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바릿재 입구에는 맑은 내가 흐르고 징검다리를 건너자마자 내성행상불망비가 있다.

당시 행상인들의 안전한 상행위에 도움을 준 사람에 대한 공덕비다.

보부상들은 불망비를 지날 때 술을 한잔씩 올리고 예를 갖추었다고 전한다.

바릿재를 숨가쁘게 넘어가면 장평이라는 마을이다.

지금은 사람이 살지 않지만, 과거에는 주막도 있었고, 여러 채의 민가가 있었다.

장평을 지나면 옛길을 따라 만들어진 임도를 만난다. 임도는 시시골과 찬물내기에서 내려오는 내를 따라가기에 풍경이 아름답고, 걷기에 참 좋다.

임도 좌우로 연결된 가파른 돌산은 산양의 주서식지다.

곳곳에서 산양의 똥자리와 흔적을 확인할 수 있다. 이 구간은 산양의 삶터이기에 조용히 걷는것이 중요하다.

장평에서 임도를 따라 한 시간 반을 걸어가면 찬물내기에 이른다. 계곡에서 흘러내리는 물이 매우 차가워서 찬물내기라고 부르며, 1구간의 중간지점으로 쉼터가 있다.

찬물내기에서 가파른 산길로 접어들면 옛길의 모습이 온전히 남아있다.

십이령의 세 번째 고개인 조령 혹은 샛재로 불린다.

고갯마루에 조령성황사가 있다.

조령성황사는 보부상들이 지역주민들과 함께 세운 성황당이다. 보부상들은 이 성황당을 지날 때 신변의 안전과 성공적인 행상을 기원했다는 구전이다.

조령성황사에서 대광천에 이르는 한 시간 정도의 길은 옛길의 아름다움이 그대로 녹아 있다.

희귀식물과 다양한 초본이 형성돼 있기에 십이령길을 대표하는 구간이다.

대광천을 따라 임도를 조금 걸으면 너삼(고삼)밭이다. 지금은 너삼을 거의 볼 수 없지만 과거에는 너삼이 많았기에 불러진 이름이다.

보부상들은 십이령의 네번째 재인 너삼밭재 입구에서 재에 오르기 전에 밥을 지어 먹었다고 전한다.

너삼밭재(저진치)를 오르다 보면 지금은 흔적뿐이지만 화전민들이 살았던 저진치를 만난다.

저진치를 지나 큰 고개를 넘으면 홈달이라고 불리는 소광2리다.

폐교된 소광초등학교를 개조하여 마을에서 공동으로 운영하는 금강송펜션을 만난다.

금강소나무숲길은 두천리 내성행상불망비에서 시작하여 소광2리 금강송펜션까지가 1구간이다.

봉화로 연결되는 2구간은 조성 중에 있으며, 3구간과 4구간은 통고산과 왕피리로 향한다.

산양과 만나는 길

산양은 화석동물이다.

지구에는 200만년 전에 왔고, 지금도 그 때 그 모습이다.

1968년에 천연기념물 217호로 지정했고, 멸종위기 1급으로 보호된다.

고라니는 뿔이 없고, 노루는 수컷만 뿔이 있지만 산양은 암수 모두 뿔이 있다.

염소는 젖꼭지가 2개지만, 산양은 4개다. 발굽은 2개로 나뉘어져 바위 위에서 몸을 잘 지탱해 준다.

발굽의 앞면에는 분비샘이 있어 자신의 냄새를 남기기도 하며, 발바닥과 발굽 뒤에 있는 발톱은 미끄러지지 않도록 도와주는 구실을 한다.

영역표시와 의사소통을 위해 가끔 나무의 껍질을 벗기는 뿔질을 하기도 하고, 똥자리를 둔다.

사는 곳은 경사진 깊고 험한 바위산이며, 양지바른 곳을 좋아한다.

우리나라에는 휴전선, 설악산, 울진 일대에 500~700마리 정도가 생존해 있는 것으로 추측된다.

이 길은 ‘금강소나무숲길’이 공식명칭이지만 ‘십이령길이기도 하고 ‘산양길’이기도 하다.

지난 겨울 금강소나무숲길에서 폭설로 인해 산양 20여 마리가 사체로 발견돼 모두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

금강소나무숲길을 왜 여는가

 멸종위기에 처해 있는 산양 서식처 중간을 관통하는 이 길에 왜 숲길을 내는지에 대해 많은 고민과 의견이 있다.

역설적이지만, 금강소나무 숲길은 산양의 서식처를 지키기 위해 낸 길이다.

2000년 초부터 녹색연합과 울진참여자치연대는 울진지역 산양을 모니터링 하면서 서식지 보호활동을 해왔다.

환경단체의 입장에서는 산양이 서식하는 공간은 산양들만의 보금자리로 만들어주고 싶은게 사실이다.

하지만 숲을 탐방하고자 하는 시민들과 지역사회가 발전하기를 원하는 주민들의 욕구도 중요한 시대적 요구사항으로 아이러니를 연출한다.

녹색연합과 울진참여연대 등은 산림청과 파트너가 되어 산양을 보호하고 시민들과 주민들의 다양한 요구를 함께 풀어가기 위해 금강소나무숲길 기본계획과 실행계획을 세웠다.

금강소나무숲길은 산림청이 대국민 산림서비스 차원에서 숲길을 조성키로 하고 만든 첫 번째 길이다.

이 길은 사람만이 아니라 산양과의 공존을 위해 여는 숲길이란다.

나와 너, 사람과 또 다른 생명, 현재와 과거와 미래를 이어주는 길이다.

금강소나무숲길이 나와 너, 사람과 산양을 비롯한 생명, 현재와 과거와 미래를 연결해주는 길이 되기 위해 예약탐방제를 통해 탐방인원을 제한키로 했다.

하루 80명 이상이 이 길을 갈 수 없으며, 예약하지 않으면 갈 수 없다.

숲길가이드(숲해설가 5명 배치)를 동반해야만 갈 수 있는 길이다. (사)울진숲길이 산림청의 위탁을 받아 울진숲길 전반에 대한 관리를 할 예정으로 귀추가 주목된다.

<허은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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