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의 교향시에 버금갈 해조음과 검푸른 격랑으로 에워싼 울릉도와의 첫선은 지금으로부터 32년전으로 거슬러 오른다.

육중한 해군 DD-구축함의 함수를 내리치며 순항을 거부하던 황천 1,2급은 가히 일반 상선은 엄두도 내지 못하는 높은 파고를 기록했다.

새벽녘이면 1만8,000야드를 넘는 수평선의 잔잔한 바다는 육상에서의 호수를 만난듯 신기하리만치 적막감마저 감돌았다.

1978년 첫 부임지로 명령받은 DD-913 부산함에 승조한 나는 호연지기를 새기며, 동해 수호의 소임속에 간혹 낭만의 울릉도를 먼발치로 바라볼 뿐이었다.

강원도 모기지에서 출항해 동해 연안을 멀리하며 동-북쪽으로 항진하다 수시간후면 천혜의 울릉도와 독도라인을 가로지르는 초계근무에 들어갔다.

4반세기 훨씬 넘긴 지금은 당시의 수병시절이 주마등처럼 흘러지나가며 세찬 바닷바람을 비켜 높은 격랑에 맞서던 함상생활을 잊을 수 없다.

가장 큰 위용을 자랑하던 전장 150여m DD-구축함에는 함장을 비롯한 300여 명이 승선해 각자 맡은 임무아래 1년이면 365일 주야간 24시간 내내 교대로 조타수와 견시를 번갈아 섰다.

저녁무렵 낙조의 비경은 그 어디에서 볼 수 없는 황홀한 선경을 빚어냈다. 황금빛 물결을 출렁이며 드넓은 난바다를 잠재우는 고요함은 그 어느 명화에 견줄 수 없다.

여름철이면 바다날씨의 일기불순에 따라 어김없이 돌고래들이 군무를 이루며, 군함 주변을 쏜살같이 지날때면 일대 장관을 연출한다.

드넓은 바다의 해조음과 아직도 눈에 선한 돌고래 떼 무리가 오랜 함상생활에 지친 수병들의 몸과 마음을 달래주기에 충분했으리라.

맑고 깊으며 청정해역으로 이름 높은 동해는 서해와 남해와는 달리 언듯 보아도 검푸른 해수면에 주눅들기 십상이다.

쉽게 가볼 수 없던 외로운 독도 역시 한편의 수묵화를 연상하듯 사뭇 마음의 붓을 들어 하늘을 도화지 삼아 그려냈다.

하얀 정복과 겨울이면 한껏 멋을 더해주던 세일러 복은 지금도 잊을 수 없는 추억거리로 남아 문뜩 그 시절을 떠올린다.

해저의 깊이를 모를 동해 바다에서의 2년여 남짓 해상근무를 마치고 부임한 육상근무는 다름아닌 해군사관학교 군사학처였다.

그러나 내 삶의 한 지평을 펼쳐준 동해상의 함상 시절은 이제 되돌아 갈수 없는 한편의 궤적으로 각인되며 각종 시련과 어려움을 맞닥드릴 때는 또하나의 용기를 북돋워 준다.

국내외로 잇따른 경기침체와 일상이 번거롭고 모진 시련이 다가와도 난 32년전의 바다 생활을 되뇌이곤 한다.

찬란한 희망의 불빛이 와닿듯 질곡속에 핀 방초인양 흔들림 없이 지켜준 수병시절의 잊을 수 없는 바다의 교향시를 다시금 상기해 본다.

실루엣되어 불현듯 떠오르는 울릉도의 비경 또한 뇌리에 남아 지워지지 않은채 또하나의 글로벌 명소로 기록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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