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칠곡의 캠프 캐럴 내 고엽제 매립 의혹이 불거진 지 3개월이 되도록 사실 여부가 확인되지 않고 있다. 지난 5월 퇴역 미군 스티브 하우스가 1978년 기지 내에 고엽제를 대량 매립했다고 폭로하자 미군이 즉각 우리측과 민관합동조사을 벌인다고 할 때만 해도 조속한 진상규명이 기대됐다. 그러나 곧 이어 미군측은 화학물질 오염토양을 모두 파내 다른 곳으로 반출했으나 고엽제는 없었으며, 오염물질 반출이 한국 밖으로 이루어졌는지 알 수 없다는 등 초점을 흐리기 시작했다. 이어 고엽제를 묻었다는 장소를 직접 파 보면 쉽게 확인될 것을 토양샘플조사와 수질검사 등 간접조사를 벌여 고엽제 흔적은 발견되지 않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간접조사 결과 캠프 안팎의 지하수에서 다이옥신 등 발암물질이 기준치를 초과한 것으로 드러났다. 꼭 고엽제가 아니더라도 기지 안의 환경오염이 심각한 사실이 밝혀진 것이다. 따라서 고엽제 매립 여부는 물론 기지 내 환경오염에 따른 인근 주민의 건강위해에 관한 문제를 확실히 규명해야 할 필요가 있다. 환경전문가와 산업의학전문의 등으로 구성된 고엽제 대책회의가 지난 7월 13-15일 캠프 캐럴과 인접한 마을 주민 58명을 대상으로 인터뷰와 설문조사를 한 결과 A(12)양은 2008년부터 백혈병, B(12)군은 재생불량성 빈혈을 앓고 있다고 한다. 1990년 당시 20세이던 C씨가 급성 골수백혈병으로 숨졌고, 다른 20대 남성도 10여년 전 백혈병으로 사망했다. 또 2009년 이후 40-60대 주민 5명이 폐암, 간암, 뇌종양 등으로 사망했으며 현재도 위암, 폐암, 갑상선암, 피부질환, 말초신경병, 중추신경장애 등을 앓고 있는 주민이 70명을 넘고 있다고 한다. 수 십 가구 밖에 안되는 기지 인근 마을에서 악성 질환자가 대량 발견된 것은 캠프 캐럴의 오염에 의한 것이 아닌지 인과적 관련성을 확인해야 될 중요한 소견이 아닐 수 없다. 조사에 참여한 주영수 한림대 교수의 "이런 결과가 나오리라고 예상하지 못했다. 특히 신경계 질환을 호소하는 주민의 수는 매우 유의미한 것이다"고 하는 증언을 흘려 들을 일이 아니다. 캠프 캐럴의 고엽제 매립 의혹에 대한 조사가 미군측과 우리 당국, 시민단체가 참여하는 민관공동조사라고 하지만 이제까지의 경과를 보면 미군측 의도대로 끌려가고 있다는 지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쉽고 신속하게 처리할 수 있는 일을 시간을 끌며 본질을 흐리는 조사는 결과가 진실일지라도 주민들의 신뢰를 얻기 어려울 것이다. 특히 독성물질에 의한 환경오염은 주민 건강에 치명적 영향을 주기 때문에 서둘러 기지 내 환경오염 진상을 규명하고, 원상복구를 해야 한다. 무엇보다 기지 인근 주민들의 질병이 기지 내 오염과 관련된 것인 지를 가려서 대책을 세워야 한다. 늦으면 늦을 수록 호미로 막을 피해를 가래로도 못 막는 결과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제라도 미군은 캠프 캐럴의 환경오염조사에 진정성 있는 모습을 보여주기 바란다. 우리 당국도 끌려 다니지 말고 당당하게 국민을 위한 책무를 다해줄 것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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