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일 무더운 날씨가 이어지고 있다.

이 무렵의 갑갑한 빌딩숲은 심신을 더 지치게 한다. 어디 아무도 찾지 않는 섬으로 훌훌 떠나고 싶다.
먼 섬일수록 더 좋겠다. 한 사나흘 파도소리를 들으며 귀나 씻고 싶다.

이런 분들께 가거도를 추천해드린다.
우리나라 최서남단 섬으로 동경 125도 07분, 북위 34도 21분에 자리했다.

가거도는 멀다.
목포에서 남서쪽으로 136km, 흑산도에서 남서쪽으로 65km 떨어져 있다. 쾌속선으로 4시간30분이 걸리는 까닭에 큰 맘 먹지 않고는 찾기 힘든 곳이다.

가거도에 가는 것만 꼬박 하루를 잡아야 할 정도다.
그래서 사람들은 가거도를 '가도 가도 끝이 없는 섬'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워낙 먼 곳이라 낚시꾼들이 알음알음 찾아 들어가는 섬이었지만 요즘은 여행객들도 찾아들고 있다. 

가거도는 대한민국 최서남단에 자리한 섬이다. 가거도는 중국과도 가깝다. 435km 떨어져 있다.

새벽이면 중국에서 닭이 홰를 치는 소리가 들렸다는 옛말도 있다.
30여 년 전만 해도 중국 배가 무시로 드나들고, 가거도 주민들도 중국어 한두 마디쯤은 했다고 한다.

지금도 폭풍이 불면 중국 어선의 피항지 노릇을 하고 있다. 가거도는 작은 섬이다.
길이 7km, 폭 1.7km밖에 되지 않는다. 섬 가운데에 독실산(639m)이 우뚝 솟아 있는데, 이 산을 중심으로 22km에 달하는 해안선이 병풍처럼 이어진다.

 
독실산은 신안군과 다도해해상국립공원에 자리한 산들 가운데 가장 높다. 그러니까 가거도는 하나의 섬이라기보다는 바다에 솟은 산이라고 보면 된다.

섬 전체를 통틀어 봐도 평지가 거의 없고 온통 가파른 산지뿐이다. 가거도항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배를 정박하기 힘들 만큼 험한 지형이다. 

그럼에도 이 섬에는 선사시대부터 사람이 살았다고 한다.
가거도 등대 옆 선사유적지에서는 패총(조개무지)과 함께 돌도끼, 돌바늘, 토기 파편 등 신석기 유물이 발굴됐다.

신라시대에는 당나라를 오가던 무역선들이 중국 땅과 가까운 이 섬을 중간 기항지로 삼았다.

가거도에 사람이 본격적으로 살게 된 것은 1800년 무렵, 나주 임씨가 건너오면서부터.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가가도(可佳島)로, '여지도서'에는 가가도(佳嘉島)로, 해동지도와 제주삼현도에는 가가도(家假島)로 표기되어 있다.

우리가 알고 있는 '가히 살 만한 섬'이라는 뜻의 가거도(可居島)라고 부른 것은 1896년부터라고 전한다. 일제강점기에는 소흑산도(小黑山島)라고 부르기도 했는데, 이는 행정구역을 정비하면서 흑산도와 비교해 작은 섬이라 하여 이렇게 이름 붙였다고 한다.

저항시인 조태일은

그의 시 가거도에서 너무 멀고 험해서 / 오히려 바다 같지 않은 / 거기 / 있는지조차 / 없는지조차 모르던 섬 //
쓸 만한 인물들을 역정 내며 / 유배 보내기 즐겼던 그때 높으신 분들도 / 이곳까지는 / 차마 생각 못했던, // 그러나 우리 한민족 무지렁이들은 / 가고, 보이니까 가고, 보이니까 또 가서 / 마침내 살 만한 곳이라고 / 파도로 성 쌓아 / 대대로 지켜오며 / 후박나무 그늘 아래서 / 하느님 부처님 공자님 / 당할아버지까지 한데 어우러져 / 보라는 듯이 살아오는 땅이라고 가거도를 노래했다.
 

 
가거도 제일 비경, 섬등반도 

가거도에 들어가면 가장 먼저 닿는 곳이 선착장이 있는 대리마을이다.
이곳에 섬사람 대부분이 모여 산다. 면 출장소, 우체국, 보건소, 초중학교 등 공공기관과 여관, 슈퍼마켓, 음식점 등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배가 찾을 때면 잠시 붐비다 이내 조용해진다.

대리마을 외에도 가거도에는 섬등반도의 비경으로 각종 촬영지가 된 2구 항리마을 그리고 3구 대풍마을이 있다. 

가거도 제일의 비경을 만나려면 해발 639m의 독실산 산허리를 넘어 항리로 가야 한다.
대리마을을 벗어나면 인적이 뚝 끊긴다. 여기서 삿갓고개(210m)까지는 경사가 심한 오르막길이 1.4km 정도 이어진다. 

숨이 깔딱깔딱 넘어갈 정도로 길이 비탈지다. 삿갓고개에 도착하면 멀리 섬등반도가 보이고 길은 삼거리를 이룬다.
왼쪽은 항리로 가는 길이고, 오른쪽 오르막은 독실산 정상으로 가는 길이다.

항리로 가는 길을 따르면 길은 평탄해진다.
멀리서 파도 치는 소리가 밀려와 귓전을 간질인다. 평탄한 길은 갑자기 바다로 내리꽂히며 내리막으로 달리다 섬등반도에 닿는다.

가거도에서 가장 유명한 섬등반도는 삼면이 바다에 둘러싸인 비경을 드러낸다.
규모는 별로 크지 않지만 100m 높이의 해안절벽이 꿈틀대며 바다로 용틀임하는 듯 나아간다.
그 위로는 스위스 초지를 연상시키는 초록의 산등성이가 펼쳐진다.

염소들이 발에 자석이나 붙인 듯 초원과 바위를 오가는 모습이 신비롭다.
박해일과 박솔미가 주연한 영화 '극락도 살인사건'의 촬영지로도 잘 알려져 있다.
 

하지만 바람이 세차게 불 때나 안개가 짙은 날 등 날씨가 좋지 않을 때는 찾아가지 않는 것이 좋다.
길 양쪽이 깎아지른 해안절벽이어서 안전사고를 부를 수도 있다.

가거도를 둘러싸고 있는 바다는 얕고 누런 서해 연안바다가 아니라 검푸른 동해의 물빛을 하고 있다.
이곳에서 흑산도와 조도군도가 보인다고 하는데, 사실 웬만큼 맑은 날이 아니면 보기 어렵다.

 

쾌청한 날에는 독실산에서 무려 150km나 떨어진 제주도 한라산을 볼 수 있다고 한다.
가거도항에 자리한 동개해수욕장은 짧은 걸음으로 돌아보는 가거도의 명물이다.
몽돌 해변과 마법의 성처럼 솟은 바위가 인상적이다.

가거도는 장거리 여행을 하는 수 많은 철새들의 중간 기착지이기도 하다.
국내에서 관찰되는 새 520여종 가운데 가거도에서만 300여종 이상이 목격될 정도다.
가거도의 부속 섬인 구굴도는 세계 최대 규모의 바다제비 번식지이기도 하다.

가거도를 여행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걷는 것이다.
가거도에는 버스도 없고 택시도 없다. 민박집 소형 트럭이나 가끔 얻어 탈 수 있을 정도다.

하지만 섬을 느긋하게 걷다 보면 가거도의 진면목을 느낄 수 있다.
울창한 숲과 아름다운 바다가 있는 가거도.
수평선 너머에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이 지친 여행자의 마음을 편안히 해준다.
<최갑수/여행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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