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론 뭇매 피하자' 사건 터질 때마다 뒷북 대책

‘묻지마’ 범죄가 잇따르자 치안당국이 또 대책을 발표했다.
이번에는 ‘우범자 감시.감독팀을 신설해 우범자를 직접 만나 관리하겠다’는 내용이 담겼다.

하지만 시민의 시선은 싸늘하기만 하다. ‘강호순사건’, ‘유영철사건’ 등 충격적인 흉악범죄 사건이 터질 때마다 번번이 대책을 내놓았지만 실효를 거두지 못한 탓이다. 용감한 시민이 위험을 무릅쓰고 해결사로 나서고 있다.

때문에 “이번에도 땜질용 대책으로 여론을 무마하고 넘어가려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보여주기 식 대책이 아니라 종합적이고 장기적인 대응이 이뤄져야 할 것으로 지적된다.

경찰청에 따르면 경찰은 800여명의 성폭력 강력범죄 우범자 감시.감독팀을 새로 만들기로 하고 국무총리실, 기획재정부, 행정안전부와 인력 예산 확충 방안을 논의하기로 했다.

경찰은 성폭력 우범자 2만여 명과 살인 강도 등 8대 강력범죄 우범자 1만7,000여명을 지역별 분포에 따라 각 경찰서에 1∼5명의 전담 경찰관을 배치해 감시 감독 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경찰 관계자는 “인력이 충원되면 현재 간접적으로 수개월에 한 차례인 우범자에 대한 정보수집 빈도가 일주일에 2번 정도로 늘어 실효성이 상당히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그동안 경찰은 우범자를 대상으로 정기적으로 첩보를 수집하고 있지만 법적 근거가 마련되지 않아 당사자가 강력히 거부하면 주변인을 탐문하는 방식의 간접적인 접근만 해 실효성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김기용 경찰청장은 ‘민생치안 안정을 위한 전국 지방경찰정장 긴급 화상회의’를 열고 “전.의경 부대나 기동대를 최대한 민생 현장에 투입해 범죄의지를 사전에 차단해 묻지마 범죄로 인한 국민 불안을 해소하라”고 지시했다.

실효성도 없이… 반복되는 경찰 대책

경찰의 이번 대책도 인력 증원과 전담팀 신설을 골자로 한 이전 대책들과 큰 차이가 없다.
전문가들은 더군다나 인력이나 예산도 확보하지 않은 채 경찰 독자적으로 내놓은 대책으로는 강력범죄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없다고 지적한다.

2004년 7월 서울 지역에서 부유층 20명을 잇따라 살해한 유영철사건 때 경찰은 묻지마 범죄와 광역 범죄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겠다며 수사지원센터와 광역수사대를 각 지방청에 만들었다.

2009년 2월 강호순사건 때는 지방청 인력을 증원하고 과학수사 역량을 강화하겠다고 발표했다.

2010년 6월 8세 아동을 납치해 성폭행한 ‘김수철사건’ 때는 ‘아동성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하고, 전국 지방청 산하에 아동.여성 대상 성폭력 특별수사대를 만들었지만 7개월 만에 간판을 내렸다.

이달 초 통영 여자 초등생 살해 사건과 제주 올레길 40대 여행객 살인사건이 발생했을 때는 성폭력 우범자 특별점검을 위해 경찰관 직무집행법 개정 추진하고 우범지역에 대한 형사활동을 강화하겠다고 밝히기도 했지만, 최근 쏟아진 강력범죄에는 사실상 속수무책이었다.

한 경찰 관계자는 “예산 확보도 없이 사건이 터질 때마다 인력을 늘리고 전담팀을 편성하겠다는 것은 일선 경찰관의 업무를 가중시키겠다는 것밖에 안 된다”며 “이런 식으로는 전담팀만 넘쳐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경찰대 이웅혁 교수(행정학)는 “여론의 뭇매를 피하기 위한 경찰 대책은 일시적인 대책일 수밖에 없다”며 “정부와 정치권이 범죄 문제를 국가 정책의제로 설정하고 형사기관 전체의 개혁과 지원을 전제로 접근해야 한다”고 말했다.
<주필 이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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