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어하면 흑산도, 흑산도 하면 홍어다. 서로 떼어놓을 수 없으니 이 둘을 두고 천생연분이라 부르리라. 전남 신안 흑산도는 한반도 서남단에 자리한 섬이다. 목포에서 쾌속선을 타고 2시간은 쉬지 않고 달려야 도착한다.

홍어(만) 맛보러 흑산도를 찾기에는 약간 무리가 있지만 이왕 흑산도를 찾았다면 홍어맛도 놓치지 말자. 그 먼 길 달려와서 홍어를 접하지 못하고 간다면…. 듣기만 해도 아쉽고 서운하다. 그렇다고 흑산도에서만 홍어를 맛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서해안을 따라 자리한 남도 자락의 목포나 영산포도 홍어하면 빼놓을 수 없는 공간이다.
납작 넓적 못생긴 생선, 홍어를 만났네
홍어에 대한 '설(說)'은 차고 넘친다. 한반도 홍어의 주 무대로 알려진 서해안줄기에서는 더욱 그렇다. 흑산도 앞바다뿐 아니라 인천에서도 홍어가 많이 난다. 서해안뿐이랴. 울릉도와 독도 부근에서 참홍어가 난다는 보고도 있다. 그래도 사람들은 흑산도 홍어를 첫손에 꼽는다. 찰진 맛 때문일까?

가오리목 생선인 홍어는 앞뒷면이 납작 눌려있다. 위에서 내려다보면 마름모꼴이다. 아무리 후하게 점수를 준다 쳐도 잘생긴 인물은 아니다. 홍어가 속한 가오리목 생선의 특징이다. 이 납작한 가오리목 생선은 전 세계 바다에 조금씩 다른 생김새와 다른 이름으로 존재한다. 동네 마트에서 '칠레산' '아르헨티나산' 이름표를 단 홍어를 접한 기억, 한번쯤 있지 않던가. 저렴한 가격으로 무장한 그들은 국내산 홍어보다 친숙하게 우리 곁에 자리하고 있다. 사철 맛볼 수 있는 홍어, 언제 제일 맛이 좋을까.

홍어 제철은 겨울에서 이른 봄으로 알려진다. 흑산도 토박이 김기백 문화해설사는 "눈발 날릴 무렵의 홍어가 최고"라며 손가락을 치켜세웠다. 11월에서 이듬해 3월까지를 제철로 친다. 그렇다고 추울 때만 홍어를 맛볼 수 있다는 얘기는 아니다. 흑산도를 찾은 8월 하순 여름 막바지에도 현지 홍어를 맛볼 수 있었다. 또 지난 2011년 흑산도 홍어축제는 5월에 진행되었다. 전국 어디서건 사계절 모두 홍어를 맛볼 수 있다는 뜻이다. 수입 홍어 덕분만은 아니다.

흔히들 홍어는 삭혀서만 먹는 것으로 아는데 삭히지 않은 싱싱한 홍어도 있다. 홍어를 직접 잡는 흑산도 인근에서는 신선한 홍어를 많이 먹는다. 그 외의 지역은 거리가 멀어진 만큼 이동시간이 필요하다. 지금이야 목포까지 2시간 안팎이면 닿을 수 있지만 과거에는 더 오랜 시간이 걸렸을 것이다. 21세기 우리들이 목포에서 배를 타고 흑산도와 인근 섬으로 나서듯 목포는 예로부터 호남의 섬들이 뭍으로 들어서는 관문이었다. 흑산도 인근에서 잡은 홍어는 목포에 모여 전국으로 팔려나갔다. 목포에서 팔고 남은 홍어는 호남의 젖줄, 영산강 하구에 자리한 영산포로 향했다. 흑산도에서는 싱싱한 홍어를, 목포에서는 중간 정도 삭힌 홍어를, 영산포에서는 푹 삭힌 홍어를 주로 먹게 된 이유다.
'톡' 쏘는 홍어, 이유가 있었네

그래도 홍어의 특징은 '톡' 쏘는 향과 맛이다. 이 맛과 향은 사람마다 호불호가 극명하게 갈린다. 식겁하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코는 뻥 뚫리고 입천장은 벗겨질 정도로 푹 삭힌 홍어에 열광하는 이들도 있다. 홍어 특유의 향은 요소 덕분이다. 동물은 노폐물, 즉 요소를 오줌으로 방출하는데 홍어는 이를 피부로 보낸다. 피부로 간 요소는 암모니아 발효를 하고 이는 잡균을 죽인다. 먼 바다에서 뭍으로 이동하는 동안 홍어는 발효, 즉 상할 수 밖에 없었고 그럼에도 잡균이 없어 먹어도 해가 없었다. 삭힌 홍어를 먹게 된 이유다.

홍어 경매는 흑산도 수협 위판장에서 진행된다. 오전 7시 즈음 배가 들어온다고 했다. 위판장 가는 길가에서 만난 동네주민들은 건주낙(미끼를 꿰지 않는 주낙) 손질에 여념이 없다.
"홍어 같이 바닥에 붙어사는 땅고기, 저질고기는 건주낙으로 잡아요. 미끼가 없소. 공갈낚시지. 홍어가 다니는 길목에 바늘을 깔고 잡는거라.

11월과 12월은 짝짓기 시즌. 수정된 알은 석달 후 새끼홍어가 된다. 첫해, 몸통 12~16cm 정도까지 자란 홍어는 2~3년 후 20~40cm까지 큰다. 그리고 5~6년 후에는 전장 1.5m가 넘는 성어가 된다. 잘 자란 홍어는 '1번치'라고 부르는 홍어계의 귀족이 된다.

암놈은 암치, 수놈은 수치라고 한다. 둘의 차이는 꼬리 양 옆에 달린 거시기. 암놈이 맛도 좋고 값도 비싸 더 귀한 대접을 받는다. 그것만 잘라내면 암치와 구분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일꾼들이 소주 안주로 잘라가도 못 본 척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만만한 게 홍어 거시기'라는 말도 있다. 암치가 더 귀한 건 알겠다. 귀한 암치, 어떻게 급이 나뉘는 것일까?

암치 1번이 홍어의 최고봉이다. 8.25kg이상 나가는 홍어 암놈을 뜻한다. 최상품이자 흑산도 홍어 시세의 기준이 된다. 비쌀 때는 한 마리에 100만원 가까이 솟구치기도 한다. 8월 마지막주 암치 1번 가격은 36만~40만원 선. 가격은 매일 달라진다. 그 다음은 암치 2번, 7.25kg 이상 나가는 홍어 암놈을 말한다. 1kg 정도 차이가 날 뿐인데 가격은 8~10만원 가량 벌어진다. 어민들은 "8kg 이상 되는 홍어가 그만큼 맛있다는 뜻"이라고 했다. 흑산도에서 경매되는 모든 홍어에는 바코드가 따라간다. 바코드를 찍으면 누가 잡았는지 알 수 있다. 명절과 한겨울에 가장 비싸다.

"홍어는 버릴 것이 없소." 동일수산 주인장이 택배 보낼 홍어를 손질하며 말을 잇는다. 징하게 쏘는 맛이 일품인 코부터 오독오독 씹는 맛이 좋은 날개, 그리고 흔히 알고 있는 홍어 살코기(?)는 몸통 즉 가운데 부위다. 애주가들에게 유명한 홍어애는 보리싹과 된장을 풀어 끓여먹을 뿐 아니라 싱싱하면 기름장에 찍어 먹기도 한다. 홍어는 자고로 냄새 폴폴 나는 푹 삭힌 것이 최고인 줄 알았건만, 열흘쯤 지나 물이 빠진 홍어가 찰지고 맛있단다.

손암 정약전 선생이 유배생활을 했던 사리마을 막걸리에 흑산도 홍어 한점 들어가니 부러울 것이 없다. 홍탁이다. 그만큼 홍어는 탁주에 잘 어울리는 맛이다. 남도에서는 홍어를 삼합으로도 즐기는데 주로 묵은 김치와 홍어, 그리고 돼지고기를 곁들인다. 돼지고기 대신 해산물이 들어가기도 한다. 전복과 곁들여 삼합으로 즐겨도 그 맛이 독특했다. 바다와 바다의 조화랄까. 찰지고 약간 쏘아대는 그를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언젠가 눈발이 날릴 무렵의 조우를 기대한다.
안내는 흑산면 관광안내소(061/240-8520)와 신안군 관광안내소(061/240-8531)로 문의하면 된다.
<사진=공감코리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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