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미대한제국공사관,102년 만에 고국의 품으로 돌아와

조선왕실의궤, 외규장각 도서 등 세계에 자랑할 만한 우리 문화재가 잇달아 국내로 반입됐다.
독립운동의 산실이던 주미대한제국공사관도 일본에 빼앗긴 지 102년 만인 2012년 10월 18일, 고국의 품으로 돌아왔다.

일제강점기와 6·25전쟁 등을 거치면서 변형·왜곡됐던 광화문도 원형을 되찾았고, 안동 하회마을 경주 양동마을 등은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돼 우리 전통문화를 빛냈다.
일제 식민지배 때 일본으로 강제 반출된 조선왕실의궤가 2011년 12월 6일 반환됐다.

사진은 의전행사 속에서 조선왕실의궤가 인천공항 화물터미널로 들어오는 모습이다.

국립문화재연구소는 2010년 일제강점기 등을 거치면서 해외로 반출된 우리 문화재가 10만7천8백57점에 이른다는 조사결과를 발표했다.

문화재청은 그해 4월 이집트에서 문화재를 약탈당한 22개국이 참가한 가운데 열린 ‘문화재 보호 및 반환을 위한 국제회의’ 에서 프랑스 국립도서관 소장 외규장각 도서와 일본 궁내청 소장 조선왕실 도서를 반환 희망 목록에 올렸다.

그로부터 1년 뒤인 2011년 12월 6일, 일제 식민지배 때 일본으로 강제 반출된 조선왕실의궤가 반환됐다.

반환된 도서는 △조선왕실의궤 81종 1백67책 △이토 히로부미 반출 도서 66종 9백38책 △‘증보문헌비고’ 2종 99책 △‘대전회통’ 1종 1책으로, 2011년 10월 노다 요시히코 당시 일본 총리가 방한했을 때 돌려준 3종 5책을 제외한 1백47종 1,200책이다.

조선왕실의궤는 유네스코 지정 세계기록문화유산으로 등재된 문화재로 1922년 조선총독부가 80종 163책을 본국에 기증했으며 이와 별도로 일본 궁내청이 1종 4책을 자체 구입했다.

이토 히로부미가 반출한 도서는 1906년부터 1909년 사이 한일관계 조사자료로 쓸 목적으로 반출해 나간 77종 1천28책 가운데 1965년 한일 문화재협정에 따라 반환된 11종 90책을 제외한 잔여분이다.

이들 도서 중 5종 107책은 국내에 없는 유일본으로 추정된다. 특히 이 중에는 조선중기 충무공 이순신의 시문집인 ‘이충무공 전서’ 1종 8책이 포함돼 있다.

일-불, 조선왕실의궤 외규장각 도서 등 반환

‘증보문헌비고’는 우리나라의 역대 문물제도를 정리한 백과사전으로 ‘동국문헌비고’를 보강해 정리한 완성판이고, ‘대전회통’은 1865년 편찬된 조선시대 마지막 법전으로 우리 행정법 체계의 근간을 이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조선왕실의궤 반환에는 정부와 민간단체들의 노력이 있었다. 정부와 민간단체는 이구동성으로 일본 정부에 반환을 요구해 왔다.

그 결과 일본의 간 나오토 당시 총리는 2010년 8월 담화를 통해 “1백주년을 맞은 한일 강제병합을 사과하는 차원에서 이를 반환하겠다”고 밝혔다.

프랑스의 외규장각 도서 반환도 마찬가지다. 정부는 1866년 병인양요 때 강화도에 상륙한 프랑스 극동함대사령관 로즈 제독이 수천냥의 은궤와 함께 약탈한 3백40여 권의 외규장각 문서의 반환을 끊임없이 요구해 왔다.

프랑스의 미테랑 대통령이 1993년 테제베의 한국 고속철도 수주를 위해 방한했을 때 ‘휘경원원소도감의궤(상)’ 1권을 반환하면서 프랑스 외규장각 도서의 전체 반환을 약속했지만 양국 간 합의는 이뤄지지 못했다.

 
대한제국 공관 중 원형 보존된 사적

하지만 2010년 11월 이명박 대통령이 서울 G20 정상회의 참석차 방한한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을 만나 합의를 이뤄 내 반환이 확정됐다.

외규장각 도서 반환 합의 이후 프랑스 내에서는 이에 반발하는 기류가 거세게 일었다.
반환을 위한 실무협상이 본격화돼 외규장각 도서를 5년마다 갱신 대여하기로 합의, 145년 만인 2011년 외규장각 도서가 고국으로 돌아왔다.

주미대한제국공사관도 일본에 빼앗긴 지 102년 만인 2012년 10월18일, 고국의 품으로 돌아왔다.
주미대한제국공사관은 고종의 자주외교 의지가 담긴 곳으로, 대한제국이 국외에 설치한 공관 가운데 유일하게 원형이 보존돼 있는 사적이다.

옛 공사관은 을사늑약 후 주미 일본공사 우치다에 의해 단돈 10달러(일본 외무성 외교사료관 외교문서에는 1만 달러로 기록돼 있음)에 미국인에게 팔렸다.

문화재청은 현 소유주와 수년에 걸친 협상 끝에 소유권을 되찾아 왔다.
국립중앙박물관에서 2011년 7월18일 개최된 ‘145년 만의 귀환, 외규장각의궤’특별전에서 관객들이 관람하고 있다.

김찬 문화재청장은 최근 미국 워싱턴DC 내셔널프레스클럽에서 열린 주미대한제국공사관 매입 최종 서명식에서 소유주였던 티모시 젠킨스 부부와 매입서명을 마쳤다. 매입금액은 총 3백73만 달러(약 42억원)에 이른다.

최종 서명식에서 젠킨스 부부는 김 청장과 동석한 한국 주요 인사들에게 “과거 한국은 불평등하게 일본에 이 공사관을 빼앗겼다”며 “‘사랑의 마음’을 담아 한국 정부에 이 집을 넘기게 돼 매우 기쁘다”고 덕담을 했다.

김찬 청장은 “미국민에게는 우리 문화유산을 널리 알릴 교두보로, 우리 국민에게는 역사교육의 장으로 쓸 계획”이라고 말했다.

젠킨스 부부도 “이 집 매각을 계기로 한국의 전통문화와 역사가 미국에 더 많이 알려지기를 바란다”고 했다.
일제 강점기와 6.25전쟁 등을 거치면서 변형, 왜곡됐던 광화문도 2010년 8월15일 광복절에 맞춰 복원됐다.

조선 고종2년(1865년) 흥선대원군에 의해 경복궁이 중건될 당시의 모습을 되찾은 것이다. 이와 함께 경복궁 역시 20년 장기복원정비계획이 마무리됨에 따라 옛 전각의 3분의 1 가량을 복원, 조선 제일의 법궁으로서 위용을 되찾았다.

광화문 경복궁 등 본래 모습 되찾아

또 1905년 을사늑약과 1907년 헤이그특사 파견의 현장인 덕수궁 중명전도 복원, 개방돼 비운의 대한제국 역사를 되새기게 했다.

이와 함께 지난 2008년 화재로 유실된 숭례문 복원작업이 순조롭게 끝나 오는 12월 마무리될 예정이다.
숭례문 복원공사 과정에서 지표 1백60센티미터 아래에서 조선 전기의 지대석이 발굴돼 숭례문의 원형을 확인하는 수확도 거뒀다.

또 지난 2009년 조선왕릉에 이어 2010년 경북 안동의 하회마을, 경주의 양동마을이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돼 우리 전통문화를 빛냈다.

국립부여박물관은 부여군 부여읍 능산리 절터에서 출토된 유물을 보존처리하는 과정에서 문익점이 원나라에서 목화씨를 들여오기 800년 전의 백제시대 면직물이 확인돼 세계를 놀라게 하기도 했다. 

게다가 강원 화천군 원천리 북한강변에서는 한성백제 초기(3~4세기)의 마을 유적이 발견되는 등 4대강살리기 사업 구간에서 문화재들이 잇따라 발견됐다.

높아진 대한민국 국격에 맞게 우리 문화재들이 속속 제자리를 찾아가고 있어 국격의 위상을 체감하고 있다.
<유영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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