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불교조계종 상원사,관음도량과 수행도량처
양평 농업박물관에서 사료가치 재조명 결과
용문산 상원사 범종학술조사추진위,세미나 개최


경기 도내에서 화악산 명지산에 이어 3번째로 높은 양평군 용문산 자락의 상원사 범종의 비천 문양은 선녀가 당나라 시대의 비파를 연주하고, 비천상 위쪽에는 염주 목걸이(瓔珞)와 천의(天衣)가 휘날리고 있다.
효령대군의 보액사찰로 내려오는 상원사의 특징은 신라시대의 종에서 유래된 범종을 보존하며 소중한 한국 불교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다.
앞서 가짜란 오명을 쓰고 국보에서 탈락했던 비운의 상원사 범종(해제 당시 국보 367호)이 신라시대에 제작됐을 가능성이 높다는 과학적인 연구결과가 나와 센세이션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

범종의 납 동위원소 비율이 남한에서 생산된 종 재료와 거의 일치한데다 일본이나 중국산과는 거리가 멀다는 진단이다.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전통과학기술사업단의 도정만 박사팀은 최근 상원사(미지산) 범종은 신라시대 범종 제작 기법인 밀납(蜜蠟) 주조공법을 사용했고, 재료도 신라시대 남쪽지방 것을 사용한 것으로 분석됐다고 주장했다.

재료의 성분분석을 통해 범종이 일본에서 제작됐다는 일부 학자의 주장을 뒤집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최근 양평 농업박물관에서 열린‘용문산 상원사 범종 학술발표회’에서 발제자로 나선 도 박사는“종 재료에 섞인 납(Pb)의 세 가지 동위원소 비율을 분석해 보니 남부지방 재료를 사용했으며, 구리(Cu) 주석(Sn) 납의 구성 비율이 성덕대왕 신종 등 신라시대 종과 유사했다”고 강조했다.

그는“재료 비율을 보면 한반도 남쪽과 북쪽, 중국 남부와 북부, 일본 등 원산지를 알 수 있다"면서 그동안 한국과 일본의 고고학자들은 상원사 범종의 제작 연대와 모조품 여부를 문양이나 당시 상황 등으로 판단했한 것으로 알려진다.

도 박사는“제작기법도 온전하게 남아 있는 신라시대 범종인 오대산 상원사 범종(725년), 성덕대왕신종(771년)처럼 당시 범종에 주로 사용했던 밀납 주조공법이 적용됐다”며“거푸집 위에서 용융 청동을 부어 넣는 방법도 신라시대 범종 제작 기법과 같았다”고 말했다.

그는“용문산 범종 표면의 비천상의 선녀가 당나라 시대의 4현 비파를 연주하고 있는 것도 제작 연대를 신라시대로 추정하는 근거”라고 주장했다.

이같은 상원사 범종은 1929년 2월1일 우리나라 최초의‘제야의 종’타종에 사용된 것으로 기록된다.
국가는 1939년 11월17일 마침내 보물로, 해방과 함께 국보 367호로 지정하기에 이르렀다.

그런 와중에 진품이 아니란 불명예를 안게 된 것은 옛 문교부 문화재위원회 위원이었던 한 사학자가 62년 노인들의 증언,문양 등을 근거로‘일본이 약탈해 간 뒤 19세기 말 일본에서 급조해 다시 들여온 것’이라고 주장한 것이 발단이 됐다는 후문이다.

그해 12월12일 문화재위원회에서 그 주장을 받아들여 그만 국보 지정을 해제하는 처지로 둔갑했다.
그 후 여러 사찰을 떠돌다 2010년 1월15일 상원사로 귀환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관음도량이면서 수행도량으로 알려진 상원사는 국민들에 문화적 정신적 도량으로 거듭나면 좋겠다는 소망도 흘러나온다.

용문산 상원사 범종학술조사추진위원회의 위원장인 호산스님은 손색없는 명상센터로 가능하며, 미국 일본 티베트 등은 참선하는 도량이 많다고 지적했다.

그래서 "마음의 물(H2O)을 찾자"는 것이다. 수려한 자연과 문화가 어우러진 도량을 위해 환경친화적으로 조성됐다.

이에 대해 문화재청은“학계에서 연구가 활발히 진행돼 문화재 지정 신청이 들어오면 검토를 거쳐 국보 지정 등 관련 절차를 진행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를 기화로 용문산 상원사 범종의 가치를 과학적으로 분석하는 세미나가 열려 초미의 관심을 끌었다.
용문산 상원사 범종 학술조사추진위원회(위원장 호산스님)는 최근 양평 농업박물관 세미나실에서‘과학으로 본 용문산 상원사 범종’주제아래 학술발표회를 개최했다.

세미나는 상원사 범종의 가치를 분석하기 위한 단초가 돼 긍정적인 도출해내 국보지정에 파란불을 예고하고 있다.

이기선 아세아불교문화원장의 사회로, 김석현 강원대 교수가‘용문산 상원사 범종의 음향분석’을 발표한데 이어‘도정만 한국과학기술원 책임연구원(전통과학기술사업단)이 '용문산 상원사 범종의 금속학적 고찰'을 발표했다.

세미나는 상원사(주지 재원스님)가 주최하고, 범종학술조사위원회와 아세아불교문화연구원이 공동 주관했다.
봉선사와 한국과학기술연구원이 후원했다.

주지 호산스님은“이번 세미나는 상원사 범종의 역사와 특징을 규명하기 위한 첫 세미나로, 문화재적 가치분석 이전에 상원사 범종을 과학적으로 분석하고, 향후 지속적인 학술조사를 통해 범종의 가치를 규명하기 위한 것”이라고 밝혔다.

호산 스님은“금속학적 분석 및 연구결과 상원사 범종이 조성된 것은 약 600~700여년 전인 것으로 전해들었다”면서“상원사 범종의 역사와 조성 시기 등을 확인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기대했다.

호산스님은 이에 "우리 문화재의 70%가 불교문화재인 만큼 이제라도 훼손되지 않게 잘 보존되도록 관리 협력해 줬으면 한다"고 당부했다.

중생과 소통하기 위해 "포교는 믿으라는 것보다 스스로 불교를 느낄 수 있도록 한 생활불교의 가치"를 일깨워 주고 있다. 

전해내려오는 '용문 상원사 관음보살 화현기(觀音現相記)'

1462년(세조 8년)에는 세조가 이 곳에 들러 관세음보살을 친견하고 어명을 내려 크게 중수했다고 하는데, 최항이 그때의 모습을 기록한 '白衣관음현상기' 지금도 전해지고 있다.

1463년에는 왕이 직접 행차했으며, 효령대군(孝寧大君)의 원찰(願刹)이 됐다는 유래다.
미려한 용문산은 그 옛날에는 '미지산'으로 불린 것으로 전해진다.

주요 골자는 세조가 왕비와 세자와 함께 경기도를 순행하다가 효령대군의 원찰이었던 상원사를 들르게 되었는데,그 때 백의관세음보살이 나타나고 상서롭고 아름다운 빛이 비추고 또 범패소리 등이 들리다가는 사라졌다.

감격한 세조는 사찰에 백미 200석을 하사하고 내관으로 하여금 향을 올리도록 했다.
뿐만 아니라 대궐로 돌아와서는 죄인들을 사면시켰으며, 정부 관원들은 축배를 들어 경하했고, 훈부(勳府)에서는 상원사에 불상을 조성하여 건물에 봉안하도록 했다.

그리고 친견한 백의관음보살을 그림으로 그리게 하여 전국의 향리에 배포했다.
이에 그치지 않고 영의정 부사 신숙주, 도승지 홍응, 판내시부사 전균을 상원사에 보내어 다시금 정성을 기울여 공양을 올린 것을 구전된다.
<BIZ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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