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9년 9월 손저으면 맞닿을듯 울릉도를 배경으로 구축함 갑판에서 동료들과 포즈를 취했다.
동해 먼바다의 수평선은 그 해저를 가늠키 어려울 정도의 검푸른 격랑으로 사뭇 공포의 대상이었다.

육중한 해군 DD-구축함의 함수를 향해 내리치며, 항로를 거부하던 황천 1,2급은 가히 일반 상선은 엄두도 내지 못하는 높은 파고를 연출했다.

여명이 동틀무렵이면 1만8,000야드를 넘는 수평선을 바라다보면, 육상에서의 잔잔한 호수를 만난 듯 적막감마저 감돌았다.

1978년 첫 부임지로 명령받은 DD-부산함에 승조한 나는 호연지기를 새기며 해상방위의 소임을 넘어 간혹 낭만으로만 여겼던 울릉도 근해를 지났다.

경남 해군기지에서 출항해 동해안을 먼발치로 바라보며 북향으로 항진하다 수시간 후면 동해 모처 해군기지에 기항한뒤 곧이어 울릉도와 독도라인을 가로지르는 초계근무에 들어갔다.

어언 33년이 흐른 지금은 당시 해군 수병시절이 주마등처럼 흘러가며 세찬 해풍을 비켜 격랑에 맞서던 함상 생활이 새록새록 되살아 난다.

충남 부여가 고향인 나는 사방이 산과 들로 둘러싸인 목가적인 여느 농촌과 별반 다름없었지만, 망망대해의 수평선은 문화충격으로 뇌리를 스쳐지났다.

드넓은 먼바다의 한 점으로 위치한 울릉도와 독도는 이름하여 한반도의 동쪽 막내이자 간성으로써 나름의 수호천사이다.

숱한 망언으로 우리를 넘보려는 일본의 야만을 떠나 분명코 우리는 그를 사랑하고 지켜내야 할 소중한 초병임을 자임한다.

사계절 변함없이 울릉도와 독도를 아우른 청천하늘은 반짝이는 성근별로 밤하늘을 수놓으며 나를 반겼다.

이제는 아득한 한 토막의 추억거리에 불과하지만, 청년 수병의 패기어린 꿈과 비전을 일깨워준 울릉 근해의 함상생활은 성인의 마음을 다진 삶의 밀알이 됐다.

해군에서도 가장 큰 위용을 자랑하던 구축함에는 함장을 비롯한 300여 명이 승선하지만 난 365일 24시간 내내 교대로 우현과 좌현을 나눠 견시를 섰다.

시야에 들어온 낙조의 선경은 그 어디에서 만나 볼 수 없는 황홀한 명경지수를 빚어냈다.
남해와 서해안에 버금가는 청정해역으로서의 울릉도와 독도만이 지닌 독보적인 존재가치를 부여하고도 남음이 있다.

단순한 관광으로서의 충족을 지나 국민 모두가 기억하며, 지켜내야 할 기념비적인 역사의 현장으로 은둔의 변신을 꾀해보는 계기도 생각해 보았다.

황금빛 물결을 출렁이며 광야와 같은 난바다를 잠재우는 고요함은 한폭의 수묵화를 연상케 했다.

간혹 때로는 훌훌털고 수평선을 향하며 걷고 싶은 충동을 느끼리만치 봄바다의 오후는 파도마저 잠드는듯 대자연의 이치를 선보인다.

7,8월 여름이면 일기불순 예보에 따라 어김없이 돌고래들이 군무를 이루며, 군함 주변을 쏜살같이 지날 때면 일대 장관을 그려낸다.

아직도 눈에 선한 돌고래떼 무리가 오랜 함상생활에 지친 수병들의 몸과 마음을 달래주기에 충분했으리라. 
어언 반백이 다된 지금, 해양 수호의 한 일원으로 신비의 섬,울릉도를 먼발치로나마 바라본 그 당시를 두눈 지긋 감은채 소리없이 떠올려본다.
<권병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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