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래 우리네 주거 생활환경에서 민망하기 그지없는 사건이 여기저기에서 봇물 터지듯 발생하고 있습니다.

오래전 일입니다만, 시내 단독주택 단지에서 조용히 살던 지인이 바로 옆집 이웃과 주차 공간 문제로 고성이 오가도록 싸웠다고 합니다. 그런데 저의 지인은 상대방이 인정사정없이 퍼붓는 폭언(暴言)을 견디지 못하고 심장마비로 그만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그것도 젊은 아들의 주차 문제로 어머니가 갑자기 사망했으니, 아들의 심정은 어떠했겠습니까. 그야말로 집안이 풍비박산(風飛雹散) 난 것입니다.

이성낙연세의대 교수
근래 층간 소음 문제로 아래위층 이웃 간에 끔찍한 칼부림 살인 사건이 생기더니 이젠 곳곳에서 유사한 이야기가 들려와 이런 일이 ‘전국적인 현상’인가 싶어 더욱 걱정스럽습니다.

언론매체에서는 아파트 공사를 할 때 층간 소음을 줄일 수 있는 새로운 특수 공법을 소개하기도 합니다. 어떤 주부는 층간 이웃끼리 품격 있는 ‘쪽지 소통’을 활용해보라는 애틋한 제안도 합니다.

지난겨울에는 폭설이 유독 자주 내렸습니다. 자동차 정비 업소들이 밀려들어 오는 크고 작은 사고 차량 때문에 큰 곤욕을 치렀다고 합니다. 비슷한 상황이 병원 응급실에서도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고 보니 필자의 가까운 지인 중 한 분은 발목 골절상을, 또 한 분은 손목 골절상을 입었습니다. 두 분 모두 많이 내린 눈을 제대로 제설하지 않아 생긴 빙판 보도(步道)에서 사고를 당했습니다.

그런데 두 분은 ‘재수가 없어서’ 또는 ‘내 탓’이라는 푸념만 하더군요. 그런 모습을 보며 문득 ‘유럽 같으면 어림도 없는데’라는 생각이 스쳤습니다.

많은 눈이 올 때마다 보행은 물론 차량 통행에도 불편이 많은 게 현실입니다. 언론매체에서는 이를 사회 이슈화하면서 “너도나도 눈 치우기 동참”, “눈 치우기 운동 전국에 확산” 따위의 기사를 실으며 시민 정신에 호소합니다.

분명 듣기에 좋은 얘기지만 이는 일시적인 ‘정치적 접근 방법’일 뿐 구체적인 강구책으로 자리 잡기에는 거리가 멀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습니다.

유럽 지역으로 유학을 간 학생이나 사업차 일정 기간 기숙사나 다세대 주택에서 생활하게 된 한국 사람은 이웃으로부터 잔뜩 눈살을 찌푸린 항의 방문을 받는 경우가 심심치 않게 있습니다.
 
이런 일은 대부분 바로 층간 소음 때문일 경우가 많습니다. 유럽에서는 저녁 10시 이후 욕탕 물이 쇠파이프를 타고 내려가는 소리나 밤늦은 시간에 거실에서 쿵쿵 소리를 내며 뛰어노는 아이들 소리를 묵과하고 인내하는 아랫집 이웃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 즉시 위층으로 올라가 “왜 ‘주거 규칙(Haus-Ordnung)’을 준수하지 않느냐”고 불평하기 십상입니다.
다세대 주택이나 학생 기숙사에 입주할 때는 누구나 예외 없이 ‘주거 준수 규칙 사항’을 지키겠다고 ‘서약’하기 때문입니다.

이 공동생활 준칙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함께 사는 이웃에게 어떤 방해되는 행동도 하지 않겠다는 내용입니다. 거기에는 물론 저녁 10시 이후에는 샤워나 목욕을 삼가야 한다는 문구도 있게 마련입니다.

이런 공동생활 준칙에는 층간 소음만 있는 게 아닙니다. 사람들은 종종 눈 오는 날, 독일 시민들이 거리로 나와 너도나도 열심히 눈을 치우는 모습을 보면서 그네들의 시민 정신을 높이 평가하곤 합니다.

그런데 독일인의 그런 시민정신 뒤에는 무서운 ‘강박과 강압’이 있습니다. 어쩌다 갑자기 눈이 내리면 직장 동료들이 안절부절못합니다.
특히 단독주택에 사는 동료들이 더욱 그렇습니다. 누군가가 대신 일을 마무리해줄 테니 어서 빨리 퇴근해 집 앞 보도의 눈을 치우라고 하면 허둥거리며 귀가하는 경우가 아주 흔합니다.

만약 어떤 사람이 눈을 치우지 않은 집 앞 보도(집 경계선에 있는)에서 낙상하기라도 하면, 그 치료비를 포함한 모든 손해를 전액 배상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아침 6시부터 저녁 10시까지 눈 치우기로 바쁠 수밖에 없는 것이지요.

서울에서 이번 겨울을 보낸 독일인에게 넌지시 주택 앞 눈 치우기를 언급했더니 “경비 아저씨들이 이른 아침부터 눈을 치워주니 서울에서 겨울나기는 너무 행복하다”면서 독일에서의 ‘눈 치우기 고생’을 나쁜 기억으로 떠올리더군요.

갑자기 내린 폭설로 생긴 사회 문제를 투철한 시민 정신으로 해결할 수 있다면 얼마나 살맛 나는 세상이겠습니까. 층간 소음에 따른 갈등을 이웃 간의 인사 나누기라든가 예의범절 교육으로 해결할 수 있다면 얼마나 바람직한 일이겠습니까.

일찍이 독일의 문호 괴테(JW v Goethe)는 “도둑이 그러하듯 기회가 상황을 만든다(Gelegenheit macht Verhltnisse, wie sie Diebe macht)”고 했습니다.
요컨대 사람은 살면서 편한 것이라는 유혹에 쉽게 적응해버리기 마련이라는 뜻으로 이해할 수도 있습니다.

불특정 다수가 아파트라는 제한된 공간을 공유하는 데 예의범절 수준의 지침으로 관리하는 것에는 분명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고 봅니다.
이는 어쩌면 인간이 갖는 ‘이상(理想)의 한계이며 함정’일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층간 소음에 따른 난동’ 같은 문제 해결에 접근하면서 감시 체제 도입, 새로운 건축 공법 적용, 또는 예의범절 교육 같은 해법보다는 공동체에서 살아가는 데 필요한 행동 준칙을 먼저 마련하고 그 준칙을 고지식하게 지키도록 유도하는 것이 바로 현답(賢答)이 아닌가 싶습니다.

<이성낙교수 프로필>

뮌헨의과대 졸.
프랑크푸르트대 피부과학 교수, 연세대 의대 교수, 아주대 의무부총장 역임.
현재 가천대 명예총장, 의사평론가, (사)현대미술관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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