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종(언론인)>
박근혜 대통령의 정부요직 인선을 보면서 진부하기 이를 데 없는 표현이지만 ‘인사가 만사’라는 말에 공감하게 됩니다.

박근혜 정부가 출범한 지 25일에 이르렀습니다. 그러나 아직 정부 기능의 핵심인 내각도 완전히 구성하지 못한 상태입니다. 중요 부서 장관 후보자들이 청문회를 기다리는 중이고, 후보자들의 공직 윤리 시비가 연달아 보도되고 있습니다.

한꺼번에 수십 명의 요직을 인선해야 하니 민주주의 국가에서 이만한 혼란과 시비는 감수해야 할 절차인지도 모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근혜 정부는 출발선상에서 스스로 너무 많은 시간을 잡아먹고 있고, 야당의 지연술도 국민의 입장에서 보면 심한 것 같습니다.

인사의 원칙은 대통령마다 다를 수밖에 없다고 봅니다. 시대 상황과 정권의 성격에 맞는 인사가 필요할 것이며, 박근혜 정부도 5년 후 성공한 정부로 평가받고 싶을 것입니다. 그래서 나름대로 공직 인선에 심혈을 기울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전임 이명박 정부 때의 ‘고소영’ 같이 학맥, 지연, 종교에 기울어지는 부정적인 이미지의 여론이 덜한 것은 다행이지만 역시 코드와 측근이 인사의 핵심이 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정치평론가들의 평가를 보면 박근혜 정부의 요직은 관료 출신, 과거 박정희 정권의 DNA를 이어받은 전문가 그룹 출신이 대종을 이루고 있다고 합니다.

박근혜 정부에서 혁신적 역할을 할 미래창조과학부 장관과 중소기업청장에 파격적인 후보가 임명되면서 신선한 바람이 일 것도 같더니 검증 과정을 거치며 낙마하고 말았습니다. 한때 기대를 모았던 사회통합형 요직 인선도 없었습니다.

활발한 토론보다는 위에서 아래로 내려오는 지시와 대통령의 마음을 알아서 처리하는 강한 관료색의 정부가 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이것은 경제 패러다임의 변화로 다방면으로부터 도전받고 있는 우리 한국 사회에 필요한 활력소를 불어넣기에 역부족인 정부가 될 우려가 큽니다.

코드 및 측근의 요직 기용과 관련해서 좀 오래 된 이야기지만 2006년 룰라 다 실바 브라질 대통령이 집권2기를 앞두고 고백한 말이 생각납니다.

“정부 요직에 친구를 앉힌 것은 잘못이었습니다. 더 큰 잘못은 친구를 해임하는 것을 어려워한 점입니다.”
룰라가 얘기하는 친구란 정치적 동지인 집권노동자당 안의 측근들을 말합니다. 그는 집권 1기 동안 자신과 같이 정치를 해온 이들을 대거 각료로 기용했는데, 부패 스캔들에 휘말리면서 정치적 위기를 맞았던 것입니다.

정치적 동지는 정권의 지분을 생각하게 마련이고, 그래서 긴장감 없이 부패에 쉽게 휩쓸리는 게 동서고금을 막론한 인지상정이라고 생각합니다.

룰라 대통령은 다행히도 집권 2기 동안 브라질을 잘 통치하여 성공한 대통령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1기의 시행착오를 고칠 기회가 2기에 주어졌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나라 대통령은 5년 단임입니다. 인사에 잡음이 많으면 초기에 해당 부처는 물론 정부 자체의 신뢰감을 잃어버리고 정부 정책은 표류하기 쉽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청와대의 주인 노릇을 할 수 있는 날 수는 1,826일입니다. 날 수로만 보면 대통령 직책 수행은 시작의 시작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일할 수 있는 날이 아직도 1,800일 남아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1,800일은 물리적인 날수일 뿐입니다. 우리는 민주화 이후 5명의 대통령이 임기를 마무리하는 것을 보았지만 마지막 1년, 심하면 후반 2년은 심한 레임덕, 즉 권력누수 현상으로 국정의 명맥만 유지하는 꼴을 목격해왔습니다.

미국도 대통령 취임 100일에서 정권의 성패가 갈린다고 해서 '100일 전략'을 만들어 행정력을 집중시킵니다. 같은 대통령제를 채택하고 있는 한국도 마찬가지입니다.

취임과 동시에 새로운 내각이 유기적으로 움직이고, 5년의 로드맵이 국민 앞에 선명히 비춰져야 합니다. 그런데 내각 구성이 진통이고 따라서 로드맵도 국민의 마음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100일을 허송하고 나면 행정의 초점을 맞추기가 힘들어질 것입니다. 야당은 속내로 싫어하지 않을 상황일지 모르나 일반 국민에게는 피해도 크고 희망을 잃게 됩니다. 남아 있는 요직과 후속 인사라도 잘해서 국민의 신뢰를 얻을 수 있는 정부가 되기를 기대해 봅니다.

<프로필/김수종>
한국일보에서 30년간 기자 생활.
환경과 로컬뉴스 등에 대한 글을 즐겨 씀.
저서로 '0.6도' '다음의 도전적인 실험' 등 3권이 있음. 
<자유칼럼그룹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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