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장작가마 문경 갈평요(葛坪窯)
청화백자의 대가 雪松 신석용 선생
 

“문경에서 해마다 열리는 찻사발 축제가 올해부터 문화체육관광부 선정 전국 최우수축제로 승격된 점에 우리 도예가들은 그 보답으로 더 좋은 명작을 만들어야 할 것입니다. 무엇보다 그동안 우리 도예인들의 염원을 이루게 돼 감개무량합니다.”

갈평요(葛坪窯)의 설송 신석용 도공은 "문경지역이 1,000년을 이어온 전통 민요 백자의 본향으로 도자기를 사랑하는 사람이나 다인들은 이곳의 작품을 소장하는 것을 큰 기쁨으로 여기고 있다."고 귀띔한다.

경북 문경 갈평리에서 1,300여평 부지에 전통장작가마 갈평요를 운영하는 설송 신석용 도예가는 차인으로 차를 좋아하다 아예 도예의 길을 택했다는 후문이다.

그는 원래 다도를 배우려고 문경의 요장을 순례하면서 도자기의 매혹에 빠져 늦깍이 30대 중반에 도자기에 입문한다.

처음에는 관음요에서 흙 빚기 도예기술을 익혔다고 한다. 그는 이후 2004년 대한민국 도예 명장 도천 천한봉 밑에서 도자기 2차 수학을 했다.

그 후 설송은 2007년 이곳 갈평리에 '갈평요'란 이름으로 요장을 차렸다. 이곳은 예로부터 도자기의 산지로 정평이 나 있다.

지금도 이곳은 문경 도자기 원유라 할 수 있다. 늦은 나이에 도자기를 하였지만 그는 남다른 노력과 각오로 중국 도자기 수업등 쉼없는 분골쇄신을 거듭 하고 있다. 새벽 4시부터 작업에 임한다고 한다.

그는 작은 기물은 물론이고 다완 다기 각종기물을 섭렵하여 생산하며 그의 작품에서 주 작업은 청화 백자로 손꼽힌다.

청화로 그림에 중점을 두고 있다. 산수화 사군자 그림에 남다른 귀재를 보이는 잠재력이 탁월하다.
세기적인 청화백자의 대가 설송(雪松) 신석용 선생은 맨처음 잘 나가던 금융회사에 다니다가 우연한 기회에 도자기에 매료돼 주저없이 직장을 그만두고 본격적인 도자기 삼매경에 심취한다.

전문성을 살리기 위해 아예 중국으로 들어가 ‘경덕진도예대학’을 순수 사비를 들여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했다.

1년에 4,5회 정도 작품을 구워낸다는 신석용 선생의 작품 성공률은 대략 50%에 이를 정도로 신독을 잊지 않는다.

흙은 주로 경남 사천지방에서 직접 채취하다 사용한다. 유약 또한 스승 천한봉선생과 의논하며 직접 만들어서 사용하리만치 정성이 깃들어 있다.

설송 신석용선생은 다구, 다기, 대작을 위주로 하며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는 신조를 기울이고 있다.
전통가마만을 고집하는 신석용 선생은 전통가마에서 나온 작품이 진짜 작품이라며 한시도 흔들림없이 매진하고 있다.

작품을 소장하고 싶은 사람에게는 누구라도 가격을 논하기 전에 기필코 소장하도록 양심으로 권장한다. 

“그림에 매료돼 ‘청화백자’ 택했다”
아내의 헌신적 내조 작품으로 승화 

정의 순도 높은 백자에 청색의 코발트 안료로 무늬를 그리고 그 위에 투명유약을 입혀 환원염에서 구워낸 도자기 재현에 구슬땀을 흘린다.

중국의 경우에는 14세기 초엽경에 본격적으로 생산 됐으나 우리나라에는 14세기 말엽에 전래돼 생산단계에 들어간 것은 15세기 중엽으로 거슬러 오른다.

15세기 중엽경의 초기 청화백자는 기형과 문양이 명나라 청화백자의 영향을 짙게 보이지만, 15세기 후반경에는 독자적인 특징을 나타낸다.

특히 청화안료는 회회청(回回靑)이라 해 처음에는 중국에서 수입했는데 조선왕조실록에 따르면 1463년부터 1469년(예종1) 사이에는 수입이 어려워 국내산 土靑을 채취해 청화백자를 번조했다.

성종 초에는 다시 회회청이 수입되는데, 현존하는 유물로는 토청과 회회청의 차이를 분명히 구별할 수 없다.

다만 화학분석 결과에 따르면, 코발트에 비소(As)를 함유한 것이 회회청이며 철분(Fe)과 망간(Mn)을 많이 포함하고 있는 것이 토청이다.

철분의 함유가 많으면 암흑색을 띠고 망간의 함유가 많으면 회자색을 나타내므로 육안으로 어느 정도 구별이 가능할 뿐이다.

청화백자의 회화적인 문양에서는 일반 도공의 솜씨가 아닌 도화서 화원의 전문화가에 그림솜씨를 엿볼 수 있는데 이것은 관장제 수공업 체제로 자리잡아 광주분원의 소임을 짐작케하고 있다.

이뿐아니라, 15세기에서 16세기 전반경의 문양으로는 송문의 타지기법에서 마하파화풍과 관련되는 문양을 볼 수 있는 반면, 16세기 후반으로부터 17세기에 이르면 조선중기의 화단을 풍미하던 이른바 절파화풍의 문양이 청화백자호에도 나타난다.

18세기 전반기에 해당되는 금사리 가마터에서는 매우 특색있는 청화백자가 제작된 것으로 기록된다.

이를테면 형태로는 각병 제기의 각이 진 굽다리 등 새로운 제작기법이 나타나며 문양은 간략한 야초 초충과 산수화 등의 한국적인 정취를 보이는 소재가 등장한다.

10년에 한 번씩 옮겨다니던 분원이 1751년(영조 27) 지금의 남종면 분원리로 분원의 위치가 고정되어 1882년(고종 19) 민영화될 때까지 약 130년간은 한 곳에서만 요업활동을 했으며, 이 때에 청화백자의 대량 생산이 급속히 증가하고 있다.

분원리 시대 전반은 금사리 청화백자와 통하며 간략한 문양이 장식되지만 분원리 후반은 대중화되어 민화풍의 문양이 뚜렷이 나타난다.

청화는 진사,철사와 동시에 시문되는 예도 있으며, 분원리요 시기에는 문방구류에서 그 특징을 보이고 있다.<BIZ팀> 

<설송 신석용선생 프로필>
1964년 문경 출생/1999년 도예 입문/2003년 문경요 도천 천한봉선생 사사/2006년 제1회 국제다구디자인 공모전 특선 외 4회 입상/2007년 문경대학 도자기공예과 졸업/중국 경덕진 도자대학교 청화과정 수료/중국 경덕진 양 빙선생 사사/중국 경덕진 도자기박물관 개인전/제22회 대한민국 전통미술 대전 특선 외 1회 입상/2008년 도천 천한봉선생 도예 60주년 문경 전통찻사발 공모대전 특선/예술의 전당 전시 '사람은 그릇을 만들고 그릇은 사람을 만들고'/2009년 한-중도자명인 100인전/한국-대만교류전/대만 신광백화점
2010년 인사아트페어 전시/토포하우스/중국 공예미술대사 및 국제예술작품 공모전 동상/중국 항주
2011년 문경 전통 찻사발 공모대전 입상/중국 심양대사 장옥동선생 사사/현재 갈평요 운영

주소/경북 문경시 문경읍 갈평리 623-1
전화(054)572-3481,(H.P)010-2010-34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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