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전경>
강간죄 객체인 '婦女'에 가족의 아내도 타당

정상적으로 가정을 꾸린 부부라도 남편이 폭행과 협박을 동원해 자신의 아내와 강제로 성관계를 했다면 '강간죄'로 처벌해야 한다는 첫 판결이 나왔다.

이혼을 위해 별거중이던 아내를 찾아가 성폭행한 남편에게 강간죄가 인정된 사례는 있었지만, 부부 관계가 정상적으로 유지된 상태에서 배우자에 대한 강간죄를 인정한 것은 사법사상 처음이다.

이번 판결은 형법 제297조 강간죄의 객체인 '부녀(婦女)'에 아내도 포함될 뿐만 아니라 혼인관계가 정상적으로 유지되는 부부 사이에도 강간죄가 성립될 수 있다는 판례에서 가정생활은 물론 사회 전반에 적잖은 반향을 일으킬 전망이다.

16일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신영철 대법관)는 흉기로 부인을 위협해 강제로 성관계를 맺어 특수강간 등으로 기소된 김 모(45)씨의 상고심(2012도14788)에서 징역 3년6월에 신상정보공개 7년, 전자발찌 부착 10년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강간죄의 객체인 '부녀'란 성년 미성년, 기혼 미혼을 불문하고 여자를 가리키는 것"이라며 "법률상 처(妻)를 강간죄의 객체에서 제외하는 명문의 규정도 없다"고 판시했다.

<대법원 홈페이지 캡쳐>
재판부는 또 "1953년 제정된 구 형법은 강간죄를 제32장 '정조에 관한 죄'에 규정했지만, 1995년 형법이 개정되면서 그 장의 제목이 '강간과 추행의 죄'로 변경됐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이어 "이는 강간죄의 보호법익이 현재 또는 장래의 배우자인 남성을 전제로 한 관념으로 인식될 수 있는 '여성의 정조' 또는 '성적 순결'이 아니라 자유롭고 독립된 개인으로서 여성이 가지는 성적 자기결정권이라는 사회 일반의 보편적 인식과 법감정이 반영된 것으로 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부부 사이에 민법상의 동거의무가 인정되고 여기에는 배우자와의 성생활을 함께 할 의무가 포함되지만, 폭행 협박에 의한 강요된 성관계를 감내해야 할 의무까지 있다고 보긴 어렵다"고 주문했다.

이에 "이같은 점을 종합할 때 강간죄의 객체인 '부녀'에는 법률상의 처가 포함되고, 혼인관계가 파탄된 경우 뿐만 아니라 실질적인 혼인관계가 유지되고 있는 경우에도 남편이 아내의 반항을 억압하고 아내를 간음한 경우에는 강간죄가 성립한다고 봐야 할 것"이라고 판단했다.

대법원의 관계자는 "법률상 처의 성적 자기결정권 보호와 양성평등 사회를 지향한 판결"이라며 "법원이 혼인과 성에 관한 시대 변화의 조류와 보조를 같이 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고 덧붙였다. 
<법조팀>

저작권자 © 대한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