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영방송 KBS의 월 수신료는 2500원이다.
“TV 수상기를 소지한 자는 수신료를 납부하여야 한다”는 방송법 64조가 근거다.

이 수신료는 1981년 이래 32년째 2500원으로 묶여 있다. 영국 BBC는 오래전 안정적 재원 마련을 위해 수신료 물가연동제를 확립했다.

KBS가 수신료 ‘현실화’를 바랄 만도 하다. 그 점에는 KBS 노사가 따로 없어 보인다. 수신료 현실화는 KBS 구성원들의 최대 염원이자 지상과제라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정도로 중대한 일을 성취하려면 충족해야 할 조건이 있기 마련이다. 시청자가 내는 수신료가 주 재원인 공영방송에 그 조건은 명백하다.

바로 공정보도다.

그제 KBS 이사회가 수신료 인상안을 전격 상정했다. 안은 2개로 하나는 4300원으로 인상, 다른 하나는 4800원으로 인상이다.

후자가 관철될 경우 내년부터 수신료가 92% 오르게 된다. 그러나 인상안 상정 과정에 큰 문제가 있었다.

야당 추천 이사 4명이 불참해 여당 추천 이사 7명만의 결의로 단독 상정됐다. 야당 추천 이사들은 이사회에 앞서 낸 성명에서 수신료 인상 논의를 위한 전제조건으로 세 가지를 요구했다.

보도 공정성 및 제작 자율성 보장제도 마련, 국민부담 최소화의 원칙, 수신료 사용 투명성 확보 방안 마련이 그것이다.

하지만 이길영 KBS 이사장과 여당 추천 이사들은 이를 무시하고 일방적으로 안을 상정했다.

수신료 인상을 이런 식으로 상정한 것은 오만하고 무책임한 짓이다. 시청자 가운데는 지금 매달 세금처럼 꼬박꼬박 내야 하는 2500원조차 아깝다고 여기는 사람들이 많다.

따라서 수신료 인상은 사회적 합의가 절대적으로 필요한 문제다. 그러기는커녕 KBS 여당 추천 이사들은 다수의 힘으로 인상안을 밀어붙였다.

우선 이사회 안에서 진지한 논의가 이뤄져야 하는데도 그러지 않았다. 이래놓고도 시청자들이 순순히 오른 시청료를 낼 것이라 믿는 것인가.

KBS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공정방송을 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로 수신료 인상이 전제돼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2010년에도 이사회가 1000원 인상안을 의결해 방송통신위를 거쳤으나 국회 상정 단계에서 무산됐다.

순서가 거꾸로다.
수신료를 올려야 공정방송이 실현되는 게 아니다. 공정방송이 수신료 인상의 대전제다.

그런데 현재의 KBS 보도 내용이 국민에게 수신료를 물리는 공영방송에 부합하나. 공영성 강화는 뒷전이고 권력의 눈치나 살피는 버릇은 전 정권 때나 매한가지다.

그러면서 수신료 인상이라니, 후안무치가 아닐 수 없다.
<논설위원 이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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