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천 최광연>

나는 오직 한 길밖에 모르는 외고집쟁이 농부다.
석선 선생님께서 제시하신 무농약 무비료 무제초제 유기농 농사를 지으라고 하신 뜻을 받들어 안 되면 갈아엎을망정 비료나 농약을 치고 싶은 유혹을 물리치고 19년 동안이나 오직 한 길만을 걸어왔다.

국내에서 농사짓는 것을 성공하고 더 넓고 광활한 땅을 개척하여 인류가 질병 없이 행복하게 살 수 있는 먹거리 농사를 짓기 위해 나는 중앙아시아 키르기스스탄에 돌나라에서 운영하는 농장에서 책임제 일을 시작하게 되었다.

그런데 하루는 우리 농장에서 예상치 못한 절도 사건이 일어났다. 한밤중에 세 명의 절도범이 농장에 침입했는데 물건을 훔쳐서 담을 넘다가 마침 근무를 서던 우리 근무자들에게 발각이 되어 쫓고 쫓기는 중에 절도범 두 명이 붙잡혀 경찰서로 넘겨지게 되었다.

경찰서에서 연락은 받았지만 외국에서 일어난 일이라 염려가 앞섰다. 쉽게 해결될 줄 알았는데 외국인 농장에서 일어난 일이라 “우리 선에서 해결할 수 없어서 검찰에 넘겨서 재판을 받아야 합니다.”라는 경찰서 관계자의 연락을 받고 ‘일이 더 커지는구나!’ 나는 난감하였다.

한 번도 가보지 못한 재판정이라는 생소한 곳에 서야 하는 참으로 어려운 일이 생긴 것이었다. 재판 날짜를 통보받고서 언어가 다른 나라에서 통역관을 통해서 재판에 참여해야 하는 나는 더욱 부담이 되었다.

재판 날 알게 된 놀라운 사실은 두 명의 절도범이 형제 사이라는 것이었다. 방청석에 팔십이 넘은 연로하신 어머님과 절도범의 아내가 참석해 있었다.

재판은 시작되었고 판사와 검사가 다 조사해 보더니 징역 6년을 선고하는 것이었다. 이유는 재범인데다 엄벌로 다스려야 다시는 자기 나라를 국제 망신시키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두려움과 긴장이 가득한 채, 초조한 모습으로 방청석에 앉아 있지도 못하고 서 있던 아내와 연로하신 어머니가 울고 있었다. 만약 두 형제가 감옥에 간다면 연로하신 어머니와 아내, 그리고 형은 네 명의 자녀가 있고 아우는 세 명의 자녀를 두고 있는데, 그들의 생계조차 해결할 수 없는 어려운 가정이었다.

얼마나 집안이 어려웠으면 도둑질을 하였겠는가? 무한 동정이 갔다. 나도 어머님과 장모님을 모시고 생활해온 지 28년째 접어들었다. 두 어머니를 모시고 사는 삶이 정말 든든하고 행복했다. 그래서 더욱 방청석에서 울고 계시는 절도범의 어머니가 꼭 내 어머니를 뵙는 것 같았다.

내가 돌나라에 들어와서 석선 선생님께 배운 것은 부모 효도와 남을 위해서 희생하고 봉사하고 섬기라는 것이었다. 그것은 이론적인 가르침이 아니었고 석선 선생님께서도 오랜 세월 동안 어머님(92세 졸)과 장모님(91세 졸)을 한 집에 모시면서 보여주신 석선 선생님의 생애의 가르침이었다.

처음에는 그분처럼 산다는 것이 힘들게 느껴졌지만 이제는 부족하지만 나에게도 자연스러운 발걸음이 된 것 같다.

내가 절도범 두 형제를 대신하여 감옥에 갈 수 있다면 연로하신 어머니와 아내와 제수씨, 그리고 일곱 명의 어린 자녀들이 어려움을 당하지 않고 살 수 있지 않겠나 하는 생각이 떠올라서 재판장에게 “우리 인류는 한 가족, 한 형제가 아닙니까?

그러니까 도둑질한 저 형제들은 내 친동생 아닙니까? 저 두 형제들을 대신하여 제가 감옥에 가겠습니다. 저를 보내주십시오!”라고 말씀드렸다.

판사는 한참 동안 나를 쳐다보더니 할 말을 잊었는지 말을 못 하고 재판정에는 조용한 침묵이 흘렀다. 그때 내 앞에서 재판 내용을 기록하고 있던 여자 서기관 두 명이 기록을 멈춘 채 눈물을 흘리며 울고 있었다.

자기 나라 백성을 대신하여 한국에서 온 농장 책임제라는 사람이 감옥에 대신 가겠다고 제안한 내 말에 감동이 되었던 것 같다. 우리 돌나라에선 석선 선생님의 생애의 가르침을 받은 십대의 청소년들까지라도 그런 일이 닥친다면 누구나 자연스럽게 나올 수 있는 평범한 일인데, 그들에게는 아마 감동이 되었던 것 같다.

석선 선생님께서는 당신의 집을 털러왔던 동네 청소년 도둑 둘이 파출소에 잡혀갔을 때에 찾아가셔서 그 형제 도둑에 대해서 탄원해서 풀어준 적이 몇 번 있으셨다. 석선 선생님은 어린 청소년들이 도둑이 된 것은 당신이 불우한 청소년들을 따듯하게 보살피지 못한 까닭이라면서 파출소 소장에게 선처를 부탁했다.

석선 선생님은 그들을 석방시켜 데리고 나와서는 여러 가지 선물도 사주시면서 타일러 주셨다.
그들은 결국은 바르게 커서 성년이 되었을 때 명절 때 고향에 오면 꼭 선생님께 찾아와 큰절을 하면서 감사의 인사를 드렸다.

선생님의 이런 아름다운 모습을 뵙고 배웠기에 나도 그렇게 할 수 있는 힘이 생겼다.

말문이 막혔던 검사가 갑자기 일어나서 “안 됩니다. 이것은 국제적으로 나라 망신을 시킨 일이므로 반드시 처벌하여 악습을 고쳐야 됩니다.”라고 하였다.

나는 다시 간청하여 “한 번만 저들을 선처해 주신다면 저 형제들이 다시는 그런 짓을 하지 않을 것입니다.”라고 말씀을 드리니까 긴 시간 동안 진행된 재판에 판사가 내린 결론은, 첫째는 감옥에 가든지 아니면 둘째는 벌금으로 양 두 마리와 100달러를 내든지 선택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

벌금형으로 결정은 되었지만 벌금을 못 내면 구속시킨다는 것이었다.

나는 “가정 형편이 너무 어려워서 도둑질한 건데 벌금을 어떻게 낼 수 있겠습니까? 재판장님!! 그러니 시간적 여유를 주셔서 제가 두 형제와 아내를 우리 농장에 근로자로 일하게 해서 벌금도 내게 하고 생활할 수 있도록 해보겠습니다.”라고 말씀드리니까 판사와 자식 잘못 둔 죄로 방청석에 죄인처럼 서 계시던 연로하신 어머니도 실망했던 모습이 싹 사라지고 희망찬 모습이 얼굴에 떠오르던 것이 지금도 내 마음 한쪽에 자리 잡고 있다.

재판은 이렇게 마치게 되었다.

다음날 두 형제와 아내가 괭이와 삽을 들고 우리 농장에 일꾼으로 출근하는 모습을 보고 정말 행복했다.
얼마 지난 후 중앙아시아 키르기스스탄 큰 명절에 연로하신 어머님과 절도범의 아내가 그 나라 전통 양털 모자와 맛있는 명절 음식을 한 보따리 싸 들고서 우리 농장으로 나를 찾아왔다.

어머니가 직접 머리에 모자를 씌워 주시며 나의 손을 꼭 잡으시고 너무 감사하다는 말을 연달아하시는데, 덥석 잡으신 어머니의 따듯한 손이 잊을 수 없는 행복이 되었다.

이렇게 국내에서도 한 번도 가보지도 못한 법원 재판 광경을 외국에서 경험하게 된 것이다.

판사는 “돌나라 사람들이 운영하는 농장에 대해서 안 좋은 소문 때문에 그동안 많은 오해와 의심을 했었는데, 이제야 돌나라가 얼마나 아름답고 좋은 일을 하는 단체인지 알게 되었습니다.”라고 고백하였다.

그날 이후 재판장과 검사와 나는 좋은 친구가 되었다. 언어 소통은 잘 안 되지만 마음으로 통하는 친구 말이다. 말로 통하는 친구보다 마음과 정으로 통하는 친구가 더 좋은 것 같다.
 
“초대해 주신다면 돌나라 농장을 한번 방문하고 싶습니다. 농장도 구경하고 한국 음식도 꼭 먹고 싶습니다.”라고 하여 나의 아내가 화려하게 차리지는 못했지만 그들을 집에 초대하여 정말 기억에 남는 귀중한 만남의 시간을 보냈다.

음식보다 따듯한 정으로 이미 우리들의 마음은 가득 채워져 있었다. 먹고 마시는 것보다도 좋은 친구가 되고 싶어서 찾아온 것이다.

그 후 재판 소식이 그들의 입을 통해서 수백 킬로가 넘는 대도시에 살고 있는 법조계 친구들에게까지 잔잔한 향기로 전달되어 그 소식이 나에게까지 들리게 되었다. 나는 유기농 농사꾼이고 그들은 판검사지만 직위, 직책, 나이가 우리들 사이에 장애물이 되지 않았다.

석선 선생님의 “지구는 하나, 인류는 한 가족”이라는 가르침대로 우리가 살아간다면 얼마나 행복한 “새 세상”이 펼쳐질 것인가? ‘남’이라고 생각하는 사고방식은 한없이 우리 사이를 멀어지게 하지만 ‘우리’라는 짧은 단어는 서로를 한없이 가까워지게 한다.

일생을 오직 남의 행복만을 위해서 사셨던 선생님처럼 말이다.

석선 선생님 집 앞 개울에 사는 흔한 작은 피라미 새끼 한 마리도 혹시 배가 고플까 봐 먹이를 들고 나오셔서 그들의 배를 채워 주시는 자상하신 모습을 나는 잊을 수가 없다. ‘정말 만물을 내 것처럼 아끼시고 사랑하시는 주인이시구나!’ 하는 것을 늘 느끼게 되었다.

내가 어렸을 때 기억에 남은 것은 덩치 큰 사람들이 피라미를 잡아먹으려고 메를 들고서 고기 잡으러 다니는 모습만 보았지, 개울에 살고 있는 이름 모를 작은 물고기의 배를 채워 주기 위해 걱정하는 사람은 한 번도 본 적도, 들어 본 적도 없다.

그러나 석선 선생님은 산에 피는 작은 꽃가지 하나라도 함부로 꺾지 않으시고 당신 집 정원에 있는 것처럼 아끼신다. 만물은 주인이 따로 없다. 만물은 진정으로 자기를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이 만물의 진정한 주인이다.

그래서 석선 선생님은 비록 시골에 사시지만 지구를 그렇게 아끼고 사람들을 그렇게 사랑하시므로 오늘도 지구의 주인처럼 행복하게 사신다.

우리도 석선 선생님처럼 ‘남’이 없는 생활을 산다면 이 세상이 얼마나 행복해질까?

 

 

저작권자 © 대한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