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기십자가'란 단어가 인터넷상에 떠오르기 시작한 것은 2004년도부터였다.

내용인즉, D종교 단체 지도자인 S선생(거기서는 이렇게 부른다)과 그 여제자와의 성적 스캔들에 관한 내용이었다.
이 정도의 내용이라면 삼류 잡지에 나오고 말, 일회성 가십거리겠으나 이 사건은 그렇게 간단한 내용이 아니었다.

피해를 당했다고 주장하는 여제자 측에서는 성적 피해를 입었다는 내용이었고, S선생 측에서는 성경에 예언된 내용을 이룬 거룩한 사랑이었다는 것이다.

<소순웅 자유기고가>
성적 피해를 입었다는 것은 금방 이해가 가지만 이단 교주들의 뻔한 실태 중의 하나인 이런 사건을 성경을 이룬 거룩한 사건이라고 주장하는 S선생 측과의 공방은 간단하게 끝나지 않았다.

급기야 창기십자가 사건은 2006년 10월 18일 KBS TV <추적 60분>에 방영되었다.
국내는 물론 한인들이 있는 곳이라면 세계 어디서나 이 사건은 논죄의 대상이 되었다.
 
그러나 이것으로 끝나지 않고 창기십자가 사건은 2012년 12월 8일 SBS TV에 <그것이 알고 싶다>로 또다시 전국을 달구었다.

그 사이 인터넷 공방이 치열했으며 피해자 측과 오히려 이 일로 큰 피해를 입었다는 D종교 단체와의 법적 논쟁은 수십 회를 거듭하였다.

이에 관한 사건일지를 추적해 보았다.
창기십자가 사건의 첫 번째 피해자는 미혼의 40대 K모 여인으로 미국 시민권자였다.
그녀는 어머니의 권유로 D종교 단체에 가입하였으며, 그곳에 귀의해서 한동안 행복한 생활을 하였다고 한다.

미국 워싱턴시티에 살고 있는 아버지(대한통운 이사 역임) 집에 적을 두고 미국에 있는 D단체 소속 영농단체에서 살고 있었다.

그러나 성격이 특이해서 회원들 간에 마찰이 심해지자 결국은 미국에 있지 못하고 한국에 있는 D단체 소속 출판부에 근무하게 되었다.
그녀는 미국 워싱턴시 S사진관에 근무한 경력이 있어서 출판사 사진부에 배속되었다.

그러나 이곳에서도 회원들 간에 화목하지 못해서 여러 부서를 전전하였다. 이를 딱하게 여긴 S선생은 몇 번이나 K여인을 불러서 타이르곤 하였다.

그 과정에서 K여인은 S선생에게 고맙다는 뜻으로 1,000불이나 2,000불도 용돈 하시라고 갖다 드렸고, 이에 대해서 S선생도 K여인에게 애로사항을 여러 가지로 해결해 주었다.

이 과정에서 K여인은 S선생에게 성적인 피해를 입었다고 한다.
그래서 이에 대한 배신감으로 K여인은 D단체 대표를 찾아가서 피해보상으로 50만 달러를 내면 가만히 있지만 그렇지 않으면 고소를 하고 세상에 이 사실을 알리겠다고 하였다.

이에 대한 보고를 접한 S선생은 변명하기는커녕 고백하기를 “나는 성경에 있는 대로 순종하였다. 이것이 죄라면 내가 하늘의 천벌을 달게 받겠다.
그러나 결코 이 사건에 대한 무마용으로 그녀나 그녀의 집안사람들과 협상하지 말라.”고 하면서 단 1달러도 주지 말라고 거듭 당부했다.

D단체 입장에서는 참으로 난감한 사태가 발생한 것이었다.

마음 같아서는 얼마를 주어서 입막음을 하고 이 일을 조용히 끝내고 싶었으나 설립자인 S선생이 단 1달러도 협상용으로 주어서는 안 된다고 하면서 급기야 창기십자가, 이 일로 인한 어떤 수치나 법적 책임도 당신이 혼자 다 지겠다는 내용을 D종교 단체 전체 회원 앞에서 직접 발표를 하였다.

설립자인 S선생의 뜻을 당장은 이해할 수 없었으나 특별한 부탁이라 D종교 단체 회원들은 S선생의 부탁대로 인간적인 방법으로 아무런 협상도 하지 않았다.
 
결국은 인터넷상의 수많은 비난 댓글로 인한 수치와 양대 TV를 통한 사회적인 몰매를 오롯이 다 맞았다.

이 과정에서 필자는 흥미 있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것은 창기십자가 첫 번째 피해자라고 하는 K여인이 근무한 워싱턴시 S사진관에 대해서였다.
그곳은 남자들 누드 모습을 전문적으로 찍는 사진관이었으며, K여인은 이곳에서 사진사 보조로 근무하였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되었다.

들리는 말로는 이곳에서 K여인은 남자 누드모델들과 자연스럽게 어울렸으며 그런 사실을 S선생에게 고백했다고 한다.

이 고백을 들은 S선생은 공개적인 단상에서 “이런 좋지 않은 고백을 하는 사람들은 대개는 눈물을 흘리면서 자기의 지난날의 더러움에 대해서 부끄러워하면서 고백하는데 K여인은 눈을 말똥말똥하게 뜨고 자기를 바라보면서 고백하는데… ‘얼마나 저 영혼이 세파에 당했으면 시집도 안 가면서 저런 생활을 하는가?’ 하는 말할 수 없는 동정의 마음이 들었다.”고 고백하였다.

결국 K여인은 S선생을 고소하였고 법원에서는 무혐의로 종결되었다.
그 후에 창기십자가 사건은 다시 SBS를 통해서 불거져 나왔다.

이 과정에서 피해자라고 주장한 이는 D종교 단체 대안학교 교장을 10년 정도 시무한 H여사였다.

H여사는 이 학교 보조 교사로 출발해서 결국은 교장이 되었고, 사회적으로 이름난 대안학교로서 표창도 많이 받았다. KBS 사건 때만 해도 이 일을 해결한다고 D종교 단체 간부들과 함께 뛰어다닌 간부급 열성회원이었다.

그러나 어느 날부터인가 마음이 틀어진 H여사는 결국 2012년 S선생을 강간 및 강간치상으로 고소하였다. 이 과정에서 H여사도 D단체 대표를 만나서 피해보상을 요구하였고 그 협상은 1원도 줄 수 없다는 D단체 쪽의 거부로 결렬되었다.

결국 H여사는 S선생을 고소하는 한편 언론플레이까지 하였다. 여러 가지 자료를 SBS측에 제공하였다.
 
H여사의 제보를 주축으로 한 SBS <그것이 알고 싶다> 팀은 양쪽의 진실 공방을 들으면서 원래 보도내용보다는 많이 수정한 내용을 방영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창기십자가 사건과 이 사건의 중심인물인 S선생은 가감 없이 방영됐다.
사회적으로 큰 파장이 일었다.

이 사건을 맡은 검찰도 사회적 큰 물의를 일으킨 사건이라 중요하게 다루었다. 그러나 오랜 수사결과는 허위제보였다는 것이었다.

검찰 1심에서 무혐의로 처리된 이 사건은 H씨의 항고로 고등검찰로 이송되었고 그곳에서도 무혐의 처분되었다.

이 과정에서 미국의 배심원 제도 같은 ‘시민위원회’의 심의까지 거쳤으나 사실무근으로 무혐의 처리됐다.
이에 불복한 H여사는 정식으로 법원에 ‘재정신청’을 하였다. 결과는 마찬가지로 근거 없는 내용이라는 사실과 함께 기각되었다.
이로써 창기십자가 재판 사건은 많은 억측과 비난과 공방을 거쳤지만 법적으로 완전히 무혐의로 종결되었다.

그렇다면 누가 진짜 피해자인가?
창기십자가 첫 번째 사건의 중심인 K여사나 두 번째 사건의 중심인 H여사는 왜 거짓말을 하였는가?

그런데 왜 S선생은 창기십자가가 사실이라면서 또한 아무런 협상도 하지 않았는가?
더욱이 모든 법적 공방이 끝난 이 마당에 그동안 소수에 의해서 피해를 당한 대다수의 D종교 단체 회원들이 요구하는 ‘무고죄 고소’를 왜 S선생은 하지 않는가?

S선생은 최근 가까운 사람들에게 이렇게 토로하였다고 한다.

“나는 그들에게 진정으로 고마움을 느낀다. 그들이 아니었다면 성경에 예언된 ‘인자가 들려야 하리니 인자가 들리면 세상을 내게로 이끌겠노라’는 성경 말씀을 어떻게 이룰 수 있었겠는가?

참으로 그들이 고맙다. 다만 그들이 나중에 하늘의 심판을 받을 것을 생각하니 또한 마음이 무척 아프다.”고 하였단다.
창기십자가?

정말 이단 교주들의 말로처럼 한 인간과 그를 추종하는 여신도들 간의 성적 범죄였는가? 아니면 성경에 이른 대로 창기십자가는 인간이 결코 해결할 수 없는 죄를 끝낸 거룩한 사건이었는가?

한 가지 특이한 점은 이 사건으로 인하여 D종교 단체 안에는 간음죄가 없어졌다는 것이다.

S선생이 한 일이 기존의 교주들처럼 문란한 성범죄 행위였다면 그 단체도 덩달아 타락해야 할 일인데 오히려 이 창기십자가 사건으로 인하여 D단체는 죄가 없는 거룩한 백성들이 되었단다.
참으로 아이러니한 사건이다.

창기십자가 사건은 오늘도 우리들 마음에 의문의 불씨가 되어 타오르고 있다.
<소순웅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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