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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리엄 해밀턴 쇼’ 해군대위 흉상,해사 옥포만에 제막

1일 국군의 날 해군사관학교에서 흉상 제막식
6·25전쟁때 인천상륙작전 수행, 서울탈환중 전사

“지금 한국 국민이 전쟁 속에서 고통당하고 있는데,
이를 먼저 돕지 않고 전쟁이 끝난 후
평화 시에 선교사로 한국에 간다는 것은
제 양심이 도저히 허락하지 않습니다.”-윌리엄 해밀턴 쇼 대위가 부모님께 보낸 편지中-

‘한국인보다 한국을 더 사랑했던 외국인’ 윌리엄 해밀턴 쇼 대위(William Hamilton Shaw.사진)의 흉상이 옥포만의 해군사관학교에 건립돼 진중의 화제다.

   
<생전의 윌리엄해밀턴 쇼 대위>
'윌리엄 해밀턴 쇼' 대위는 1950년 6·25전쟁이 발발하자 “한국은 나의 조국” 이라며 미 해군에 재입대, 인천상륙작전에 참가했으며 같은 해 9월 서울탈환작전 중 북한군 공격에 의해 전사했다.

흉상이 건립된 해군사관학교는 6.25전쟁 이전인 1947년부터 1948년까지 쇼 대위가 교관으로 사관생도들을 가르치며 한국의 해군 창설에 기여했던 곳이다.

해군은 29일 해군사관학교 통해관 학술정보원(도서관)에서 이기식 해군사관학교장(해사 35기.중장) 주관으로 ‘윌리엄 해밀턴 쇼 대위 흉상 제막식’을 개최했다.

이날 행사에는 리사 프란체티(Lisa M. Franchetti) 주한 미해군 사령관(준장)을 비롯한 韓·美 양국 해군장병 130여명이 참석해 쇼 대위의 한국에 대한 사랑과 해사에 대한 애정을 기리고 한·미 해군의 뿌리 깊은 우정을 다시금 확인했다.

제막식은 흉상 제작 경과보고, 흉상 제막, 헌화 및 기념영상 시청의 순서로 진행되었으며, 제막식장에는 고인의 한국에 대한 애정과 헌신의 발자취가 담긴 역사자료와 사진이 함께 전시됐다.

해사는 쇼 대위 흉상을 사관생도들의 수업이 이뤄지고 가장 많이 찾는 통해관 학술정보원(도서관) 1층에 설치하여 한국인보다 한국을 더 사랑했던 쇼 대위의 한국에 대한 애국심과 그의 희생정신을 해군사관생도들이 본받을 수 있도록 했다.

   
<사진=해군사관학교 제공>
제막식을 준비한 조창용 해사 인행처장(중령)은 “쇼 대위 흉상은 대한민국 해군과 해군사관학교 발전에 기여한 고인의 헌신과 희생을 기리기 위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조 처장은 “사관생도들을 비롯 해군 장병들이 쇼 대위의 흉상을 보면서 오늘의 대한민국을 위해 희생한 모든 분들께 감사하고 조국해양수호에 대한 사명감을 더욱 굳건히 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쇼 대위는 일제강점기인 1922년 6월 5일 평양에서 선교사로 활동한 서위렴 1세(William E. Shaw)의 아들로 태어났으며, 1943년 미 해군장교로 입대해 2차 대전에 참전 후 전역한 뒤 2년간 한국 해군사관학교 교관으로 생도들을 가르쳤다.

이후 미국 하버드대에서 박사과정 중이던 쇼 대위는 6·25전쟁 발발 소식을 듣고 자발적으로 미 해군에 재입대하여 인천상륙 작전에 참전했다.

그러나 1950년 9월22일 서울 은평구 녹번리(현재 통일로) 전투에서 매복 중이던 북한군의 공격을 받아 만 28세의 젊은나이로 전사했다.

쇼 대위는 1956년 한국 정부로부터 금성 충무무공훈장, 미국 정부로부터 은성훈장을 추서 받았다.
 
그의 ‘한국 사랑’과 희생정신을 기리기 위해 2010년 6월, 서울시 은평구에 당시 은평구청장과 역대 해군참모총장 등의 뜻에 따라 추모공원과 동상이 건립되기도 했다.

‘윌리엄 해밀턴 쇼(서위렴)’대위 경력
□학 력
◦평양 외국인 고등학교
◦미국 오하이오 웨슬리안 대학교
◦미국 하버드대학교 철학박사 과정(이수 중 전사)

□주요 경력
◦美 해군 소위 임관(1943년)
◦美 해군 제35어뢰정 전대 PT-518 부정장
- 제2차 세계대전 참전(1943 ~ 1945)
◦韓 해군사관학교 교관(영어, 함정운용술), (1947 ~ 1948)
◦美 하버드대학교 철학박사 과정(1948 ~ 1950)
◦6·25전쟁(인천상륙작전 등) 참전(1950)
□쇼 대위 일대기

윌리엄 해밀턴 쇼(William Hamilton Shaw) 대위는 선교사였던 아버지 윌리엄 얼 쇼(William Earl Shaw)와 역시 선교사 였던 어머니 아데린 해밀턴 쇼(Adeline Hamilton Shaw)의 외아들로 1922년 6월 5일 평양에서 태어났다.
 
그는 이어 1939년 평양 외국인 고등학교를 졸업 후 1941년 일제에 의해 강제 추방된 뒤 미국으로 건너가 오하이오 웨슬리안 대학교를 졸업했다.

이후 미 해군에 입대하여 1943년부터 1945년까지(제2차 세계대전) 미 해군 초계어뢰정(PT : Patrol Torpedo Boat) 부장(중위)으로 복무하며 노르망디 상륙작전에 참전했다.

   
<1944년 6월24일,노르망디 상륙작전 수주일후 PT-518 어뢰정에 승선한 아이젠하워 장군과 윌리엄 해밀턴 쇼 미해군 소위의 당시모습>
전역 후 우리나라가 해방되고 나서는 1947년 미 군정청 소속 예비역 해군장교로 ‘조선 해안경비대 사관학교(현재 해군사관학교 전신)’ 에서 교관으로 근무했다.

그는 교관으로 근무하면서 해사 2기 생도들에게 영어와 함정 운용술 등을 가르치며 대한민국과 해사 생도들에게 각별한 애정을 갖고 교육하는 등 창군기 해군 발전에 기여했다.

쇼 대위는 교관 임무를 마치고 미국으로 돌아가 1950년 미 하버드대학교 박사과정(철학박사) 중 6ㆍ25전쟁 발발소식을 듣고 '한국은 나의 조국'이라며 미해군 대위로 자원하여 재입대하여 인천상륙작전에 참가했다.

그는 한국어와 한국지리, 해안상황에 정통하였기 때문에 해군정보 장교로 임명되어 작전을 성공으로 이끌었다.

인천상륙작전을 성공리에 완수한 뒤 쇼 대위는 미해병대에 배속되어 서울이 탈환되기 일주일 전, 1950년 9월 22일 서울탈환작전을 위한 정찰 임무 수행 중 현재 서울 은평구(당시 녹번리)에서 북한군의 기습공격을 받아 만 28세의 나이로 전사했다.

그 후 1956년 9월 22일 정긍모 해군참모총장, 김석범 해병대사령관, 배낙준 연세대총장, 김활란 이화여대총장 등 43명이 기금을 모아 전사자 추모비를 세웠다.
 
최근에 와서는 서울시 은평구청장과 역대 해군참모총장들이 뜻을 모아 2010년 6월 22일 서울시 은평구에 평화공원을 조성하고 그의 동상을 건립했다.

현재 서울 마포구 합정동 외국인 묘역에 부모님과 함께 안장된 쇼 대위는 1956년 우리 정부로부터 금성 충무무공훈장을, 미국 정부로부터 은성훈장을 각각 추서받았다.
<김석훈(사/특전사환경연합회장)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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