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나라 한농제약의 김이옥사장>
평범하지 않은 이타적인 삶의 주인공을 만나다

자신을 낳은 부모도 버리는 현시대에 남의 부모를 모시는 사람이 있다.
그것도 정신이 온전하지 못아신 치매할머니를.
“어머니가 떨어지기 싫어해서 친정까지 모시고 다녔죠.”

딸이 고생하는 것을 안쓰러워하는 친정어머니는 할머니에게 물었다.
“어떻게 이런 이쁜 딸을 두셨어요?”

치매에 걸려 정신이 없는 할머니가 그 질문에 또렷한 말로 대답했다.
“하늘이 주신 딸이예요.”라고.

기저귀를 채워도 빼버리는 치매 할머니(우연숙, 83세), 가실 줄은 알아도 돌아올 줄은 모른다. 그래서 온 동네를 찾아 헤매야 한다.
그런 할머니를 친어머니처럼 모시고 있는 김이옥 사장(49세)의 이타적인 삶을 살포시 전해 본다.

겨울이 깊어가는 12월의 오후, 돌나라 한농제약의 김이옥 사장을 만났다.
김이옥 씨는 돌나라 평창지부에 있는 (주)살균나라 사장으로 재임하다가 2014년 초 경북 상주에 위치한 (주)돌나라 한농제약 사장으로 취임하였다.

부자 집 맏며느리처럼 보이는 김이옥 사장은 기자를 따스하게 맞이해 주었다.
소박하다 못해 회사 대표의 집이라고는 보이지 않는 단촐한 살림이지만 포근함이 가득 배어 있었다.
그녀는 기자의 모든 질문에 시종일관 해맑은 미소로 답변해 주었다.

•할머니를 처음 만난 것은 언제였나요?
김이옥사장 : 돌나라 평창지부에 살 때 알게 되었으니까 15년 정도 되었네요.

•그때도 치매상태였나요?
김이옥사장 : 아니요. 치매에 걸리신 지는 3년 정도 되었어요.

 
모시게 된 경위는 어떻게 되나요?
김이옥사장 : 4년 전, 평창지부에서 가끔씩 뵙던 어머니가 몇 달째 보이지 않았어요. 궁금해서 서울에 있는 어머니댁을 방문했었죠. 어머니를 뵙고 깜짝 놀랐어요.

말라서 뼈가 앙상히 드러나 보이시는 거예요. 뿐만 아니라 심한 우울증에 생명을 위협할 정도로 혈압까지 높았지요.

그 모습을 보니 얼마나 안쓰러운지 차마 그냥 돌아서 올 수가 없었어요.
저희 집으로 모시고 와서 병원치료를 해드렸지요. 그리고 많이 좋아지셨어요.

그런데 한 가지 문제가 생겼어요. 어머니는 어린애기처럼 저를 안 떨어지려고 하는 거예요.
그래서 어머니를 모시게 되었지요.

모시면서 잊을 수 없었던 일이 있다면?
김이옥사장 : 어머니가 무서움을 많이 타시기 때문에 항상 옆에 모시고 잤어요. 모신지 1년 쯤 되는 아침이었어요. 식사시간이 되었는데도 어머니가 일어나지 않으시는 거예요.

저는 방문을 열고 “어머니~”하고 불렀죠. 그런데 코를 찌르는 냄새가 나는 거예요. 어머니가 대소변을 이불에다 보시고 여기저기 묻혀 놓으셨던 거예요. 어머니도 엄청 놀라시며 불안해 하셨어요.

그래서 제가 어머니를 꼭 껴안아 드렸지요. 그러니까 안정을 찾으시더라고요.

•두 분 다 많이 놀라셨겠는데요~ 아휴, 대표님의 천성이 워낙 착하셨나 봐요~.
김이옥사장 : 사람의 마음이란 다 거기서 거기인 것 같아요. 제가 아픈 어머니를 모실 수 있었던 것는 석선 선생님의 강의 때문이었지요.

석선 선생님은 '부모님은 보이는 하나님이라.'고 부모효도에 대해서 강조하시죠. 그것이 아픈 어머니를 모실 수 있는 힘이 되었어요. 그리고 사람으로 태어나서 누구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것이 생각해 보면 너무 행복한 일이구요.

‘내 한 사람 희생해서 저 고통을 나눌 수만 있다면…’ 하는 마음으로 남편이 폐병환자인 것을 알면서도 결혼했다.

남편은 29세의 젊음에도 각혈을 하고 결혼할 당시에도 폐 한쪽이 이미 망가진 상태였다.

그녀의 정성어린 간호도 외면한 채 남편 정동욱 씨는 50세의 일기로 세상을 등지게 된다. 남편을 수발했던 10여년의 세월이 주마등처럼 스치고 지나갔는지 잠시의 침묵이 흘렀다.

남을 위한 그녀의 삶의 그렇게 시작되었나보다.
어느새 이타적인 삶이 49년의 세월 속에 하얀 눈처럼 갈피갈피 녹아 있었다.

4년 전 돌나라 평창지부의 최영애 씨(69세)가 암으로 큰 수술을 하게 되었을 때부터였다. 그녀에게 나이팅게일이란 이름이 붙은 것은.

“제가 없으면 불안하다고 꼭 옆에 있어달라고 했지요.”
그렇게, 돌보는 환자마다 그녀를 떨어지기 싫어했다.

그런 그녀가 지금 또 말기 암환자(이춘영 씨.58)를 돌보고 있다.

환자는 김대표가 평창 지부에 있었을 때 간호해 준 적이 있었다. 그 후 헤어져 도시에 있던 이 씨는 급격히 건강이 악화되어 암 말기까지 진행되었다.

제약회사를 책임지는 바쁜 업무와 치매 어머니를 모신 바쁜 일상이라 환자까지 돌볼 여력이 없는 김대표. 하지만 환자의 남편분의 통사정을 마음씨 고운 김이옥 사장은 뿌리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오늘도 손수 건강식을 준비하고 아침저녁으로 숯가루 목욕과 숯 찜질 등 숯 해독요법을 해주고 있다.
저녁이 되면 김 대표의 몸은 파김치가 되어 침상에 쓰러질 수 밖에 없었다. 그런 시간이 3개월이 훌쩍 넘었다.

긴장과 피곤이 혼합된 3개월의 시간이었다.
의사는 3개월 시한부를 선언했지만 환자는 김대표의 지극정성으로 점점 얼굴에 생기가 돋고 활기를 되찾고 있다.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기적이 일어난 것이다.

각혈하는 폐병환자인 것을 알면서도 결혼을 하고 치매 할머니를 내 부모처럼 모시고 살며 그것도 모자라 시한부 3개월 선고를 받은 암환자를 지극정성으로 돌본다.

어느 것 하나 평범한 사람이 할 수 없는 이타적인 삶이었고 그런 그녀를 놓고 사람들은 현대판 나이팅게일이라고 부른다. 그 이름이 타당하고 어울린다.

대한항공의 임원이 땅콩 서비스 때문에 자신의 부하직원을 국외에 내려놓고 온 일로 국민들의 마음을 더욱 춥게 만들었다.

이런 때에 한 회사의 대표이면서도 남을 위해 젊음을 바치고 있는 김이옥 사장의 이야기는 우리의 마음을 훈훈하게 해 주고 있다.
<자유기고가/이순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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