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가적인 귀틀구조, 고즈넉한 화산 분화구에 축조
해발 700여m 화산의 분화구에 들어선 너와집은 1882년 고종 19년 울릉도 개척령을 공포하며 주민이주를 장려한 바, 지금의 북면 나리 124번지 터로 기록된다.
이는 개척당시 있던 울릉도의 재래식 형태를 그대로 재현한 너와집으로 1940년께 다시 축조됐다.
이 집은 4칸 일자 집으로 얕은 지붕은 너와와 바람에 날리지 않을 누름돌이 무더기로 올려져 있다.
이 너와는 적송이나 전나무를 잘라 이용했다.
너와는 가볍기 때문에 바람에 날라가지 않도록 돌을 올려 놓았다. 너와는 10년에서 20년 정도의 수명이 고작이기 때문에 부식된 것을 바꿔주는 번거로운 작업이 따른다.
'너와집'은 고려시대부터 존재했을 것으로 향토사학자는 추산하는데 이러한 형태는 울릉도에는 필연적으로 존재할 수 밖에 없다.
울릉도는 벼농사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짚으로 지붕을 얹을 수 없기 때문이다.
큰방, 중간방, 갓방은 전부 귀틀구조로 돼 있는데 큰방과 중간방은 정지에서 내굴로 되었고, 갓방은 집 외부에 우데기를 돌출시켜 별도의 아궁이를 설치했다.
집 주위는 전부 우데기를 돌리고, 앞부분에는 폭을 넓게 잡은 축담(이동 및 활동 공간)이 들어섰다.
반면, 나리분지의 너와집 건너편 투막집 역시 1940년에 세워진 것이지만, 울릉도 개척당시 제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문화재로 지정된후 1987년 울릉군에서 일대 토지와 가옥을 사들여 보수,관리하고 있다.
4칸 집으로 큰방, 중간방, 갓방은 전부 귀틀로 지어졌으며, 큰방과 중간방은 부엌에서 '내굴'로 연계돼 있다.
갓방은 집 외부에 돌린 우데기를 돌출시켜 별도로 아궁이가 만들어져 있다.
가옥의 바깥쪽에 처마 밑을 둘러싸고 있는 방설을 위한 외벽이 곧 '우데기'로 일컫는다.
전통가옥 앞부분에는 폭을 넓게 잡은 석벽이 있어 겨울철 혹한에 대비하는 등 환경친화적으로 튼튼하게 축성했다.
육지에서 볼수 없는 '우데기'는 처마 바로 안쪽에 여러 개의 기둥을 세우고, 억새나 옥수수대로 이엉을 엮어 출입문을 제외하고 집을 둘러쳐서 만들었다.
우데기는 특히 방설의 기능 외에도 차가운 바람을 막아 주고, 햇빛을 차단하는 자연기능도 더한다.
그 외 투막집 외부에 눈이 많이 쌓인 경우 축담은 주민이 곡식저장과 작업을 위한 다용도 공간으로 활용했다.
<울릉 나리분지=권병창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