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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첫 여류비행사 참전 입증기록 복원행정자치부 국가기록원 권기옥 지사

   
<1935년 중국 선전비행을 준비하던 무렵의 권기옥(왼쪽에서 두 번째)여류비행사, 가운데 이탈리아 교관과 중국 최초의 여자 비행사 이월화와 함께(권 현씨 제공)>
대한민국 최초 여류비행사로 일본을 폭격할 그날을 기다리며, 중국 공군으로 활약했던 권기옥 애국지사의 비행학교 졸업장과 비행사 임명장 등 참전을 입증하는 중요 기록물이 마침내 복원됐다.

행정자치부 국가기록원은 권기옥 지사의 모교이자 관련기록을 소장하고 있는 숭의여고가 복원·복제를 의뢰한 필업증서 등 5건 5매와 전쟁기념관이 의뢰한 한국전쟁 당시 발급된 국군수첩 등 2건 19매의 복원을 완료하여 최근 의뢰기관에 인계했다.

국가기록원 보존복원센터가 복원한 이번 기록물은 중국 항공서 부비항원(副飛航員) 임명장, 국민정부군 공군상위 임명장 등 1977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받은 권기옥 지사(1901~1988)의 공훈을 입증하는 중요 기록물이다.

평양에서 태어난 권기옥 지사는 숭의여학교 재학 중 3.1.운동에 참여한 것을 비롯해 문일민, 장덕진 등을 도와 평남도청 폭파사건에 간여한 혐의로 일본 경찰에 쫓기다 중국으로 망명했다.

이후 항주 홍도여학교를 거쳐 중국 남서부 내륙에 소재한 운남육군항공학교 1기생으로 입교했다.
1년 2개월여 만인 1925년 2월 항공학교를 졸업하고 우리나라 최초의 여류비행사가 됐다.

이번에 복원된 필업증서는 일본 다가와치(立川)비행학교를 1927년 졸업해 여류비행사가 된 박경원보다 2년여 앞선 것임을 입증한다.

국가보훈처가 지난 2003년 8월 이달의 독립운동가로 권기옥 지사를 선정하며 밝힌 공적에 따르면, 권 지사는 운남항공학교 졸업 후 모교에 잠시 머물며 견습비행사로 훈련을 받고 활동하다가 개혁성향의 군벌인 퐁옥상(馮玉祥) 휘하 공군 비행사를 거쳐 1926년 4월 동로군 항공서 부비항원(副飛航員)이 됐다.

항공서 부비항원 임명장은 이때 받은 것으로 추정된다.
1927년 받은 비항원 위임장은 장개석이 이끄는 동로항공사령부가 북벌을 시작하면서 받은 것으로, 이때부터 10여 년을 중국 공군으로 활약했다.

1928년 4월 남경에서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옥고를 치루기도 했던 권기옥 지사는 석방된 뒤 국민정부 군정부본부에 합류하여 1929년 항공서(署) 항공제1대 상위 관찰사에 위임되었는데, 이때 받은 위임장도 이번에 복원됐다.

1933년에는 국민정부군 정부 본부 항공서 교육과 편역원 겸 공군 상위에 임명됐으며, 1937년 중일전쟁이 발발하자 중경에 소재한 국민정부 육군참모학교 교관으로 활약했다.

이후 권기옥 지사는 1943년 중경 임시정부 직할로 재조직된 한국애국부인회 사교부 주임 등으로 활동했다.

1948년 귀국 후에는 국방위원회 전문위원, '한국연감(年鑑)' 발행인, 한중문화협회 부회장, 재향군인회 명예회원을 역임하고, 1968년 대통령 표창, 1977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받았다.

1988년 4월 19일 88세를 일기로 타계해 국립묘지 애국지사 묘역에 안장됐다.

윤선자 전남대 사학과 교수는 “권기옥 지사는 한국 최초의 여류비행사로 당시 여성들의 삶을 옥죄었던 편협한 인식을 극복했고 조국 독립을 위해 비행하였기에 진정 의미 깊은 삶을 산 독립운동가이고, 근대 한국인”이라고 강조했다.

윤 교수는 “권기옥 지사를 기억하고 기념할 수 있는 자료들을 복원한 것은 독립운동가의 삶을 기억하는 것이다.이번 복원을 계기로 많은 자료들이 복원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한편, 올해부터 기능이 대폭 확대 개편된 국가기록원 보존복원센터는 한국전쟁 당시의 전황과 군부대 일면을 볼 수 있는 국군수첩과 표창장 2건 19매(사진 6, 7)도 복원하여 전쟁기념관에 인계했다.

그밖에 국가기록원 소장기록물 및 의뢰받은 기록물 총 2,000여 매를 올해 중 복원할 계획이다.
<권병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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