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규태 전연세대 교수,“영어로 시쓰기” 나서

<전규태 교수가 함초롬히 피어오른 '봄의 전령' 철쭉꽃을 배경으로 포즈를 취했다.>
 
‘생명의 본체는 마음’ 시한부 인생 보내

“난치성 췌장암으로 3개월 시한부 인생을 선고 받았을 때 주치의는 조심스레 객사(해외여행)를 바랐죠. 살아야 하기에, 살 수 있다는 믿음하나로 기약없는 10여년 동안 미지의 세계로 장도에 올랐습니다.”

시성(詩聖) 단테(Dante Alighieri.이탈리아)가 베아트리체를 찾아 떠나듯 어쩌면 다시는 되돌아 올수 없을지 모를 머나먼 여행길에 오른 전규태(전 연세대 국문과 교수)박사의 후일담이다.

셰익스피어의 4대 희곡 전부를 합한 것보다 위대하다고 찬사받는 단테(1265.3.1~1321.9.13)의 ‘신곡(神曲) ’은 저승 세계로의 여행을 주제로 한 33편의 대서사시다.

질곡속에 핀 방초인양 그를 만나려는 시간여행 삼아 떠난 10년의 유랑길(?), 그리고 20여년 남짓 죽음 앞에서 총총히 빛난 길 위의 아포리즘(aphorism)이 지혜를 일깨운다.

어느 날 주치의는 “출가(出家)하는 심정으로 깊은 산속의 피톤치트를 맡으며, 채식으로 지내보세요”
굳이 평안한 산사가 아닐지라도 그저 암자와 같은 곳에서 모든 스트레스를 날리며 난치성 췌장암을 치유해야 한다는 소견이다.

치명적인 췌장암으로 인해 꿈같은 삶의 가치를 모두 버리고 심지어 가족과 친구들로부터 아예 격리되는 분위기로 집을 떠나야 하는 청천벽력이나 다름이 없다.

그동안의 각종 자리와 모든 마음을 버려야 되며, 기존의 지인과도 잦은 만남을 자제하리만치 기구한 삶을 맞이해야 한다는 처방이다.
전 박사는 한때 가족의 오판으로 인해 고질적인 악성 부채로 집을 잃는 등 시련의 늪에 빠져 있었다.

그러나, 어느날 지병으로 앓게 된 췌장암으로 조계종의 총무원장을 지낸 석주스님을 만나게 되는데 전국의 사찰에 지시를 해놓을 정도로 산사에서 지낼 수 있는 배려와 위안을 얻는다.

삶의 가치를 되새긴 고마운 인연이다.
열흘 남짓 전국 산하의 천년고찰에 머무르며 몸과 마음을 수련했다. 딸의 세심한 효심으로 이웃 일본에 배를 타고 여행가는 기회를 얻게 된다.

귀국후 가족은 세계여행을 권해 두려움을 뒤로 무모하게 해외 나들이를 택한다. 퇴직금의 일부로 무려 10여년 동안이나 기나긴 여행길에 올랐다.

전 박사는 힐링하는 심정으로 해외를 다녀오라 딸은 권했지만, 새로운 생각과 건강을 아로새기는 기회로 삼는다.

당시 주치의는 하던 일을 모두 내려놓으라 주문하자 그는 주저없이 문필을 접고, 오히려 그림 습작을 한 뒤로 이제는 어엿한 고정수입까지 챙기는 문학교수 겸 화가로 말을 바꿔탄 셈이다.
<전규태 교수는 27일 오후 한국SGI 본부동 5층 화락강당에서 각 장르별 작가들에게 최신작 '단테처럼 여행하기' 산문집의 후일담을 이야기하고 있다.>
글을 쓰면 수십만원에 불과하던 수입이 그림을 그리면 이제 수백만원을 호가했다. 급기야 한국미술협회의 고문으로 추대되기도 했다.

"스티브 잡스도 저와 똑같은 췌장암이 걸렸는데, 돈이 많은 그는 부유(富裕)해서 죽었지만, 돈이 없는 저는 부유(浮遊)해서 살았지요."

스티브 잡스(Steve Paul Jobs)의 주치의는 매사를 긍정적으로 한 곳에 집중하라는 주문이었다면, 전 박사는 오히려 주치의의 '절필'이란 몸관리 주문에 따라 사실상 완치기운이 감도는 컨디션을 되찾았다.

전 교수는 이제 ‘잃어버린 10년’을 찾기 위해 영작 시를 쓰기 시작한데 이어 출판사도 긍정적으로 참여해 부푼 꿈에 젖어 있다.

그는 SGI의 이케다 다이사쿠선생이 부르짖은 세계의 '평화, 문화, 교육'을 소재로 한 불후의 영시(英詩)를 남기겠다는 작은 소망을 귀띔하며 문우들의 부러움을 사고 있다.

“사람의 목숨은 마음의 법칙에 의해 다스려 진다”는 그의 지론은 곧,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란 성어를 몸소 체험하면서 난치성 치유에 주효했다는 후문이다.

한편, 전 박사는 연세대학교 국문과 및 동대학원을 졸업후 연세대 교수,하버드대-컬럼비아대-시드니대 교환교수를 역임했다. 오스트레일리아 국립대교수로 5년 동안 한국학을 강의했다.

동아일보 신춘문예 문학평론으로 등단한 문인이자, 현대시인상,문학평론가협회상,모더니즘 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정부로부터 국민훈장 모란장,국가공로자 서훈을 받기도 했다.

고 박완서의 산문집 ‘모독’은 티베트와 네팔 기행을 통해 15년이 넘도록 희귀본으로 묻혀있던 ‘명품 에세이’로 진가를 발휘한 순수 풍경이 찬미된다.

반면,전규태 박사의 ‘단테처럼 여행하기’ 산문집(열림원 출간)을 쪽별로 넘기노라면, 죽음 앞에서 그 누구보다 명료하게 인식할 수 있었던 사랑, 사람, 그리고 삶이 어떤 결정을 남겼는지, 아름다운 편린을 헤아려 보기에 모자람이 없다.

어느 문학지가 고전과 현대문학을 아우른 전규태 박사를 두고 헌사한 '한국의 대문호(大文豪)란 칭호 역시 사치와 과언이 아닌 대목이다.
<권병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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