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곡의 풍경, 아름다움으로 승화시킨 단색화 기법 이채

<서양화가 김가범화백>
“떠오르는 구상(영감)에 나이프(knife) 작업을 통해 우주에서 일어나는 작품(소재)을 빚으려 여러차례 덧대고 긁어내는 세밀한 공정을 거쳐야 합니다.

숨이 멎으리만치 정교한 화법이 가미된 작품에 그 어느날 날카로운 평론가로부터 호평을 얻으려면 거친 캔버스를 헤아릴 수 없이 곱게 다듬고 채색하면 마감에 이르죠.”

굳이 미술에 조예가 빈약하다해도 화가의 작품을 조우하면 구천의 은하수를 타고 나는 착각에 빠지듯 유토피아의 세상을 누빈다.

화실에 들어서며 시야에 들어온 100호 명화는 손저으면 맞닿을듯 은은한 달빛그림자가 두눈시리도록 명경의 해수면에 투영되는 아련함에 속내를 들킨다.

수도승에 버금가리만치 정갈하고 옷맵시 고운 주인공 김가범화백은 서울 서초구 예술의 전당 바로 건너 목가적인 현대슈퍼빌에 창조의 향유를 만끽한다.

시중의 화실과 판이하게 다른 심경이 정제된 마음 준비가 됐을 때 그의 秀作을 만나노라면 그저 얼마나 감성이 묻어나고 배어있는지 한눈에 엿볼 수 있다.

흠칫 산이며 매화며 대나무 든 실제 사물을 바로곁에서 만나 방백이 흘러나오는 심혈은 魂을 찬미한다.

“핑크 작업인데 처음 밑작업은 흰색, 회색, 나아가 빛그림과 다이나믹한 작업공정이 있지만, 마르고 또마르는 동안 나이프로 20여 차례의 반복작업이 이어집니다.”

미리 준비된 온갖 색감을 동원해 맨 처음은 두껍게 색칠해두면 3주에서 한달 가량이 소요되는 중간중간에 재작업을 쉼없이 더해 1년여 뒤에나 옥동자가 탄생된다.

“(성장한) 자식이 부모의 슬하를 떠나 출가시키기 전 남들에게 자랑스럽게 내놓을 수도 선보일 수도 있는 만큼 스스로의 작품이 잘 됐나 부심하며 끊임없이 손질하는 과정은 끝이 없답니다.”

<출품작을 배경으로 포즈를 취한 김가범 화백>
<김가범 145.5 × 145.5cm>
김 화백이 올들어 서양화에 입문한지는 과거 습작시절부터 어언 40여년이나 흘렀을 정도로 지덕체를 겸비한 나름의 성공신화를 이끌어냈다는 후문이다.

반세기 남짓 어림잡아도 출품작은 500~600여 작품에 이를 것이란 김 화백은 모두 소중하지만 상황을 보아 이젠 시리즈를 살린 산(山) 작품에 붓을 가까이할 생각이다.

반구상 반추상을 평소 좋아하는 김 화백은 작품을 구매한 분들이 너무 좋아할 때도 가슴이 울렁거릴 정도로 청순미를 감추지 못한다.

분명코 그는 경제적 수익을 노린 작품을 억지로 판매하려 들지 않지만, 굳이 밝힌다면 큐레이터를 통해 구매가 이뤄지도록 자기관리에 철저하다.

“선생님의 작품을 마침내 구입했는데 기분이 좋습니다.이 보다 희열에 찬 노래는 없답니다.”
구매자의 후일담을 들을 때 그는 비록 판매는 됐지만 “딸을 시집보내듯 많이 예뻐해 주세요. 많이 사랑해 달라”고 덕담을 나눈단다.

 
그들이 잘못다뤄 작품이 떨어트려 훼손됐다면 언제든지 연락을 달라고 주문한다며, 작품을 박스에 정성스레 쌓아 받아보는 소비자는 놀라기 일쑤라는 귀띔이다.

심지어 구매자의 집에 있는 다른 작품까지 살펴줄 정도로 商魂을 저버리지 않는 양심의 바로미터를 짐작케 하는 대목이다.

일부 외국 작가들은 상당수 성의가 태부족한 작품이 많은 것에 안타깝다는 그의 작품을 만나보면 경외감을 감추지 못한다.

더군다나, 일거수일투족은 물론 소요되는 캔버스와 부속물, 무엇보다 물감의 품질은 최고만을 고집한다.

비용부담이 만만치 않지만 김 화백이 이승을 떠난 100년, 200년뒤에도 정말 양심이 살아있는 시대작가로 오명을 남기지 않겠다는 신독어린 근성이 솟아난다.

작품이 높은 가격에도 상종가를 치지만, 그래도 소비자 만족도를 제고키 위해서는 주저없이 네덜란드산 렘브란트를 애용하며, 색채감이 빼어난 일본제 물감을 즐겨 사용한다는 고백이다.

배송하나에도 완벽하게 포장한 후 16년이나 함께 일해 온 운송업자에게 맡긴다는 그는 백화점의 선물을 보낼 때처럼 정성이 깃든 예를 갖춰야 한다는 배려심도 묻어난다.

주문 생산해 판매후에도 외국 작가들은 비교적 성의가 낮은데 착안, 미지의 주인을 위해 안전하고 기분좋게 포장한다. 액자 틀도 오크를 고집하며 못이 안들어갈 정도로 고급용이다.

현재 김 화백의 화법은 나이프를 올리고 내리며, 1년여 동안 심혈을 기울이는데 이같은 화풍은 유럽이 강세로 알려진다.

작가와 같은 기법은 아직 전무한데 반해 강한 프라이드와 자존감을 지키며 자존감을 잃지 않겠다는 다부진 각오이다.

한 작품을 남기더라도 당대에는 호감받지 못할지라도 그가 이승을 떠나 이름마저 잊혀질즈음 앞서간 시대화가로 남아주길 소망할 뿐이란다.

<미스코리아대회에 출전,두서의 성적을 거뒀으나 완고한 집안의 반대로 꿈을 접어야 했다.>
20대는 미스코리아대회에 출전해 대구 선발전에 좋은 성적을 얻었음에도 불구, 고사한 그는 완고한 부모의 반대에 부딪혀 본선에 좌절되는 아쉬움도 귀띔한다.

우면산 자락 예술의 전당이 지근거리에 있는 화실에는 샘솟는 창작의욕을 꽃피우기에 충분하다.

여고시절 미술학도를 꿈꿨으나 이 역시 부모의 반대로 무산됐다는 그는 이제라도 풍요로운 상상의 나래를 펼쳐보이겠다는 꿈이다.

구상을 넘어 추상의 세계로 나가 세기의 명작을 남기겠다는 김 작가는 이제 작품 활동을 못하면 우울증에 빠져들지 모를 정도로 프로의 길을 걷고 있다.

미술에 조예가 깊은 평론가마저 내면적인 폭발을 내포하고 있는 심리적인 표출이 살아 숨쉰다는 품평을 드고 있다.
남성적 기풍이 살아숨쉬는 그의 화풍은 거칠거나 시원하다는 양비론이 비중을 더한다.

<예술의 전당 건너 화실에서 만난 김가범 화백>
그는 홍익대학교 교수와 학장, 서울대학교 교수, 대한미술협회 회장을 역임한 김환기 선생과 설치미술가 데미안허스트 (Damien Hirst)를 존경한다고 한다.

기회가 돼 찾은 유럽에서도 자작품에 강한 자부심을 갖는 동기가 됐기에 여전히 붓과 함께 한다.

아트페어 출품을 앞두고 그는 유명작가들과의 선의의 경쟁에 부심하며 각고의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는다.오는 5월 중순과 가을즈음 작품 전시회를 위해 지칠줄 모르는 창작의욕에 불꽃을 지핀다.

실제로 한 작품을 마친후라도 스스로 만족할 때까지 또다시 채색하고 어루만지며 1년 남짓 소요된다는 말이다.
김 화백은 거듭 좋은 작품을 남겨 사랑받는 작가가 되고 싶다는 소박한 꿈을 키워간다.

혹자는 사군자에도 도전해보라 했을 때도 아름다운 필묵의 정신사 ‘조선시대 산수화’며, 매란국죽으로 피어난 선비의 마음을 사린 ‘사군자’, ‘왕의 화가들’ 등 전문서적을 먼저 정독한뒤 당시 작품세계를 충분히 습득,망라한 후라야 붓을 드는 지고지순한 미를 담아낸다.

<사단법인 참길복지회의 대표로서 이웃사랑을 남몰래 실천,귀감이 되고 있다.>
근래들어 늘어나는 단색화 열풍이 거세지만, 최고의 작품을 통해 불후의 명작을 남기겠다며 기염을 토한다.

1년이면 동료 작가들과 ‘참길복지회’를 이끌며, 판매수익금을 기부하는 노블레스오블리주(Noblesse oblige)를 愼獨으로 실천하며 귀감을 일궈낸다.
가족은 남편과 슬하에 아들, 며느리, 그리고 재롱둥이 손주 둘을 두고 있다.
<권병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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