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2월,해적에 피랍된 선원 4명 전원 극적구출

<2012년 12월 남아프리카 피랍현장으로 급거 출동하는 DDH-979 강감찬함이 소말리아 해역에서 변침을 하고 있다.>

소말리아 해역서 국적 선원 4명 무사귀환 ‘수훈갑’
'청해부대 영웅'에서 업무상 횡령으로 재판계류중

남아프리카 소말리아 해역에서 해적에 피랍된 한국인 선원 4명을 극적으로 구출한 해군 예하 청해부대장이 법리공방에 휘말려 안타까움을 주고 있다.

사태의 발단은 이역만리 사선을 넘어 구출작전에 성공하고도 현대판 백의종군을 바라는 김모(해사 42기) 제독은 12일 오후 서울의 모처에서 만나 억울한 누명을 애소했다.

'청해부대 영웅'에서 업무상 횡령혐의로 재판에 계류중인 그는 현재 1,2심을 지나 대법원의 확정판결을 앞둔 서증자료를 본지 탐사보도팀이 단독입수, 사건의 실체적 진실을 재조명 해본다.<편집자 주>

<숨직이며 구출작전을 수행중인 강감찬함의 당시 조타실>
<지휘관 정신훈화뒤 승조원들에게 작전지휘를 내리고 있던 김모 함장>

망망대해의 임지 소말리아 해역에서 생명을 담보로 피랍된 국적 선원 4명은 온 국민의 안전과 무사귀환에 탄성을 자아낸 지난 2012년 11,12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대한민국의 국격(國格)을 한층 승화시킨 '평화의 사도' 청해부대의 DDH-979 강감찬 구축함은 모종의 특명을 받고 남아프리카로 항진,임무수행에 들어갔다.

작전명은 ‘제미니호 피랍선원 구출 및 호송작전’으로 임무는 2012년 11월27일에서 12월3일까지 7일간 현지 하라데라 동방이 작전구역으로 전개됐다.

무사구출 후는 케냐의 몸바사항으로 4명의 피랍선원들을 안전하게 후송시켜 작전을 종료하는 수순으로 이어졌다.

한국은 12월 한 겨울이지만, 적도에 인접한 소말리아 해역의 기상이변에 따른 우발상황을 대비하는 TW실전훈련, 3~4m 높이의 검푸른 격랑, 선사측의 구조선 해안접안 실패, RIB구조불가 판단 등 난항이 거듭된다.

<먼발치로 구출된 피랍선원들이 시야에 들어온다.>
<청해부대의 작전 성공후 도주하는 해적 차량들>

급기야 전략을 수정한 청해부대장 김 제독은 30~40노트의 항진속에 함재기 LYNX의 긴급 출격준비를 뒤로 Hoist 장착에 이어 작전지역으로 출동하게 된다.

이어 선사구조선이 시야에 들어오며 해적차량 포착과 동시 작전개시에 돌입, 위태롭던 피랍선원 4명을 빗줄기가 쏟아지는 연안에서 극적 구출하는 쾌거를 올렸다.

5천만 국민의 숙원이던 제미니호의 박현열 선장을 비롯한 이건일항해사,이상훈기관사 등 4명이 청해부대의 강감찬 구축함에 출격한 헬기로 안착하기에 이르렀다.

<작전 7일만에 무사히 구출된 한국의 피랍선원들이 강감찬함 갑판 위에서 화이팅을 외치며 생환을 만끽하고 있다.>

582일만에 고국의 품에 안긴 피랍 선원들은 강감찬함에서 마련한 한식을 맛본 뒤, 건강검진과 이발, 원-상사단과의 환영오찬에 참석하는 등 짧게나마 자유의 몸을 만끽하게 됐다.

12월3일, 드디어 청해부대 11진의 김 제독과 승조원들은 케냐 몸바사 므바라키항에 입항후 환송식을 뒤로 이들의 신병을 꿈에도 그리던 한국의 품으로 인도하며, 임무를 성공리에 완수했다.
<탐사보도팀=권병창 팀장/엄평웅 기자/김민석 기자/윤종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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