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동군-경남독립운동연구소, 진교면 고이리 무덤 한글묘비 가치평가

[하동=한문협 기자]하동 ‘대한독립선언서’에 서명하고 1919년 3월18일 하동장터 만세운동을 주도한 후 행적을 알 수 없었던 죽헌(竹軒) 이병홍(李炳鴻·1896∼1919·양보면 박달리) 선생의 무덤을 순국 100년 만에 발굴, 그가 잠들어 있는 묘소에서 선생을 기리는 추념제가 열렸다.

4일 하동군과 경남독립운동연구소에 따르면 윤상기 군수는 이병홍 선열의 위국헌신을 기리고 독립운동가 후손을 위문하고자 지난 3·1절 선생의 묘소가 있는 진교면 고이리 고외 마안곡 현지에서 추념제를 가졌다.

이날 추념제에는 합천이씨 참지공파 하동군 종중 이재희(85·금남면 중평) 대표와 정재상 경남독립운동연구소장 등이 참석한 가운데 이병홍 선열에 대해 윤상기 군수의 헌화 및 분향과 큰절 등으로 애국지사에 대한 예를 표했다.

추념제 행사의 집례를 맡은 재야사학자 정재상 소장은 축문 낭독에서 1920년 3월 벗이자 동지였던 양보면 출신 독립운동가 김홍권(1892∼1937·건국훈장·상해 임시정부 의정원 의원) 선생이 지은 묘비 비문으로 대신했다.

비문에는 ‘∼ 뜻을 이루지 못하고 ∼ 저버린 님이여, 너의 뼈는 썩을 지라도 혼은 꺼지지 않을지니, 나는 너를 위로 하노라’라는 내용의 순수 한글 헌시로 민족 독립의지를 강하게 표출했다.

이병홍 지사의 무덤은 지난해 3월부터 하동군과 경남독립운동연구소가 3·1운동 100주년 기념사업으로 군내 미발굴·미포상 독립운동가 찾기 전수조사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이병홍 선생의 후손 이현철(56·양보합동양조장 대표) 씨의 제보로 찾았다.

이 지사는 1915년 진주공립농업학교(현 경남과학기술대학교) 3년 졸업 후 하동읍내에서 대서소(代書所)를 운영했다.

그러던 중 1919년 3월 박치화(건국훈장)·정낙영(대통령표창)·이범호(대통령표창) 등 12명과 자신이 운영하던 대서소에서 은밀히 모여 ‘대한독립선언서’를 작성해 3월 18일 하동장날 독립선언서를 낭독하고 군중 1,500여명과 함께 만세시위를 벌였다.

이후 주동자로 몰린 박치화는 일본경찰에 연행돼 진주법원에서 징역 1년형을 받았으며, 사무실을 독립운동 근거지로 이용한 이병홍 지사는 징역 6개월 형을 받았다.

박치화는 항소했으나, 이병홍은 항소를 포기하고 진주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하지만 감옥에서 얻은 병으로 출옥 3일 만에 세상을 떠났다. 향년 24세였다.

이 지사는 세상을 떠났지만 그가 서명하고 남긴 하동 ‘대한독립선언서’는 2015년 민족대표 33인이 서명한 기미독립선언서와 함께 국가지정 기록물 제12호로 등록돼 독립기념관에 전시돼 있다.

한편, 정재상 소장은 행사 후 종중 후손과 윤상기 군수에게 “독립운동가 묘소가 국가지정 문화재로 등록된 곳이 있다”며 “이 지사의 묘비는 100년 전 일제강점기 때 건립한 순수 한글 묘비로 국문학적, 독립운동사적 가치로 볼 때 문화재 등록을 추진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후손 이현철 씨는 “선대 할아버지를 선양하는 일이라면 종중에서 적극 협조 하겠다”고 밝혔다.

윤상기 군수는 “종중과 협의해 서로 힘을 모아 선생의 숭고한 뜻이 후세에 길이 전해질 수 있도록 군과 정 소장이 함께 노력하자”고 화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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