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장경판 등 국보, 보물 70여 점 보유

<해인사 원경/사진=합천군 제공>

[해인사(가야산)=박정희 기자] 법보종찰(法寶宗刹) 해인사는 불보사찰(佛寶寺刹) 통도사, 승보사찰(僧寶寺刹) 송광사와 더불어 한국의 3대 사찰로 손꼽힌다.

해인사는 한국 화엄종의 근본 도량이자 우리 민족 믿음의 총화인 팔만대장경을 모신 사찰로서 한국인의 정신적인 귀의처요, 이 땅을 비추는 지혜의 등불이 돼왔다.

해인사는 신라시대에 그 도도한 화엄종의 정신적인 기반을 확충하고 선양한다는 가치아래, 이른 바 화엄십찰(華嚴十刹)의 하나로 세워진 가람이다.

화엄종의 근본 경전인 화엄경은 4세기 무렵에 중앙아시아에서 성립된 대승 경전의 최고봉으로서, 그 본디 이름은 대방광불화엄경(大方廣佛華嚴經)이며 동양문화의 정수라고 일컬어진다.

이러한 정신을 바탕으로 해인사는 해동 화엄종의 초조(初祖) 의상대사(義湘大師,625~702)의 법손인 순응(順應)화상과 그 제자인 이정(理貞)화상이 신라 제40대 임금 애장왕 3년에, 곧, 서기 802년 10월16일에 왕과 왕후의 도움으로 지금의 대적광전에 자리에 창건했다.

해인사는 한국불교의 성지이며, 또한 세계문화유산 및 국보 보물 등 70여 점의 유물이 산재해 있다.

국내 최대 사찰로서 명산인 가야산을 뒤로하고 매화산을 앞에 두고 있어 그 웅장한 모습과 주변 경관이 어우러져 경의로울 뿐 아니라 송림과 산사가 어울어져 연출하는 설경을 보는 이로 하여금 신비경에 젖게 한다.

법보종찰 해인사는 팔만대장경이 세계기록유산으로, 장경판전이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돼 있다.
그리하여 국민 모두가 함께 잘 보존해야 할 소중한 성보를 봉안하고 있는 사찰이다.

<합천군 소재 해인사에 있는 팔만대장경>

지리적 위치상 외적의 침입이 미치기 어려운 곳인 해인사는 고려시대에도 ‘고려왕조실록’를 보관했던 사고지로 기록된다.

팔만대장경이 보안돼 있는 해인사 대장경판전은 같은 양식과 규모의 60간짜리 165평씩의 두 긴 건물이 남북으로 나란히 바라보고 있는 판고로서,국보 제52호로 지정돼 있다.

남쪽 건물은 수다라장, 북쪽 건물은 법보전이라 부르는데, 경판을 보관하는 창고기능을 위해 일체의 장식을 가하지 않은, 소박하면서도 전통 과학의 우수성이 독창적으로 발휘된 건물이다.

그러므로 많은 외국인 관광객들이 해인사를 찾아와 인류역사의 숨결을 느끼고 있는 대목이다.

국민들 또한 “살아생전에 꼭 가봐야 할 사찰” 중의 하나로 생각하고 탐방하는 유서깊은 사찰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해인사는 효봉, 성철, 고암, 혜암, 법전, 원각 대선사(大禪師) 등의 역대 선지식스님을 배출한 명실공히 한국불교를 대표하는 사찰이라 할 수 있다.

해인사 초입에 병정처럼 지켜주는 고사목(枯死木.사진 위)은 애장왕3년 순응과 이정, 두 스님의 기도로 애장왕후의 난치병이 완치되자 왕이 그 은덕에 감사해 두 스님이 수행하던 자리에 해인사를 창건할 수 있도록 했는데, 이때 이를 기념해 식수한 나무로 구전된다.

이 느티나무는 1200여년의 오랜 세월동안 해인사와 더불어 성장해 오다가 1945년 수령을 다해 고사하고, 지금은 등치만 남아 해인사의 장구한 역사를 전해주고 있다.

<피톤치드가 풍부한 해인사로 올라가는 오솔길>

이와같이 불교문화사에 찬연히 빛나는 팔만대장경의 우수성이 전 세계 불교학계에 알려지면서, 유네스코는 1995년도 불국사의 석굴암, 서울의 종묘와 함께 경판을 봉안한 대장경 판전을 세계문화유산으로 2007년 고려 팔만대장경을 세계기록문화유산으로 지정,오늘에 이른다.

이는 곧, 그 문화적 가치와 중요성을 다시 한 번 일깨우고, 후손들 모두가 길이 보전해야 할 인류의 문화유산임을 반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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