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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 장준하 선생 44주기 추모식 거행17일 파주시 탄현면 장준하추모공원에 200여명 참석
<김두관의원,김원웅광복회장,최종환파주시장, 박정의원이 헌화와 분향을 올리고 있다.>
<장호권 기념사업회장이 추모식사를 하고 있다.>

[파주=권병창 기자/사진=김진혁 기자] 일제강점기 광복군으로 활동한데 이어 해방 후는 군사독재에 맞서 민주화운동을 펼친 故 장준하선생의 44주기 추모식이 숙연하게 거행됐다.

17일 오전 파주시 탄현면 장준하추모공원에서 열린 이날 추모식은 장호권 장준하기념사업회 회장에 이어 주요 내외빈들이 헌화와 분향을 올렸다.

200여명이 참석한 추모식은 국가보훈처와 파주시 주최,(사)항일독립선열선양단체연합이 후원했다.

식순은 국민의례와 추모사, 추모공연, 유족인사, 내빈소개, 독립군가 제창, 분향 참배 순으로 진행됐다. 

고인의 장남인 장호권(사)장준하선생기념사업회장은 추모식사를 통해 "이 나라가 다시는 외세에 휘둘리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는 "그동안 국민의 위에서 기득권을 취한 적폐세력을 내쳐, 국민이 주인인 나라를 만들어야 한다"며 "적폐세력 청산을 위해 얼마든지 희생할 수 있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장 회장은 이어 "역사는 매일 아침 보는 거울과 같다"며 "더 이상 부끄러운 조상으로 남지 말고 후손들에게 떳떳한 조상으로 남기위해 진력하자"고 당부했다.

<광복회의 김원웅회장이 추모사를 하고 있다.>
<김두관의원이 추도사를 하고 있다.>

광복회의 김원웅 회장은 추모사에서 "지난 1965년 박정희 정권에 의해 맺어진 한일협정은 굴욕적인 외교"라며 "일제강점기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보상을 국가가 나서 합의한 것은 잘못"이라고 지적했다.

또한, 김두관<사진> 의원은 “장준하 선생이 추구했던 ‘완전한 자주독립’과 ‘평화통일’의 과제를 이뤄내기 위해 남은 모두가 노력해 나갈 때”라고 주문했다.

박정(파주시을)의원 역시 추도사를 통해 "44년의 시간이 흐른 지금도 선생의 가르침은 너무나 선명하다"고 술회했다.

이에 "무자비한 친일과 독재에 맞서 조국의 독립과 민주주의 수호를 위해 걸어온 선생의 가르침을 다시한번 가슴에 새긴다"고 말했다.

<더불어민주당 박정의원이 추도사를 하고 있다.>

박 의원은 "일본이 진심으로 반성하고 잘못을 속죄하도록 만들어 역사를 바로 세우겠다"고 밝힌데 이어 "장 선생의 죽음에 대한 의문도 명확하게 규명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국회에 계류중인 '장준하특별법안'이 하루빨리 통과될 수 있도록 힘을 모으겠다고 거듭 강조했다.

박 의원은 그러나"일본은 지금도 과거사 문제에 전혀 반성하지 않고, 경제전쟁을 통해 대한민국을 위협하고 있다"고 일갈했다.

박 의원은 이어 "선생의 굳은 의지와 강한 기개를 이어받아 최선을 다하겠다"며 "대한민국은 새로운 100년에 아무도 흔들수 없는 강한 국가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최종환파주시장이 추도사를 하고 있다.>

최종환<사진> 파주시장은 “파주 장준하공원을 민족 교육의 장으로 만들겠다”며 미래 비전을 제시했다. 

한편, 정치가 언론인이던 고 장준하(1918~1975.8.17) 선생은 1944년 일본군에 징집됐다가 6개월 만에 탈출해 광복군 간부훈련을 받고 한국광복군 제2지대에 배속됐다.

이후 미국 전략정보국(OSS)에서 훈련을 받고 국내에 특파됐다. 
1945년 해방 후에는 잡지 ‘사상계’를 간행하면서 민주화운동에 뛰어들었다가 수차례 투옥되기도 했다.

제7대 국회의원에 옥중 당선된 장준하 선생은 유신체제 반대운동을 벌이던 1975년 포천 약사봉에서 의문사했으나 명확한 사인은 규명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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