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J 측근이 주도해온 목포정치, 30년 만에 ‘임무교대’성공

성실함과 정무감각 장점...만 34세에 청와대 행정관 역임
[국회=권병창 기자/목포=강신성 기자
] '4·15총선'에서 '정치9단' 박지원의원을 누른 김원이<사진> 당선인은 입지전적 인물로 평가된다.

외딴 섬에서 태어나 7급 수행비서로 시작해 차관급 서울시 정무부시장에 오른데 이어 국회의원에 당선됐다.

김 당선인은 전남 신안군 도초면 고란리(난말리)에서 3남4녀 중 여섯째로 태어났다.

고향은 목포에서 뱃길로 2시간이 넘게 걸리는 섬이다.
부인 조정희 씨와 슬하에 2남을 두고 있다.

3살 때 목포로 이주해 목포 용호초와 제일중, 마리아회고를 다녔으며, 서울 성균관대 사학과와 동대학원 언론정보대학원을 졸업했다.

김원이 당선인은 중·고교 시절부터 사회의식이 남달랐다. 당시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 ‘김대중의 옥중서신’ ‘행동하는 양심으로’ 등 인문서적을 탐독했다.

20대는 학생운동과 지역운동에 헌신했다.

민주화 요구가 분출되던 1987년 대학에 입학한 김 당선인은 총학생회 정책국장, 서울지역총학생회연합(서총련)북부지구 정책위원장을 맡는 등 학생운동을 하다 제적을 당했으며, 졸업 후 위장 취업해 노동운동에 몸담기도 했다.

1993년 결혼과 군 입대를 위해 정착한 고향 목포에서도 대밭골노동청년회 야학 강사, 지역 언론사 설립 추진, 마대공장 노동자, 동부시장 옷가게 점원으로 일했다.

김 당선인은 발달장애 판정을 받은 첫째 아들을 위해 1996년 상경 후 이른바 ‘산전수전’을 다 겪는다.

23년 동안 당과 정부, 청와대, 지방자치단체에서 다양한 경험과 실력을 쌓았다.
목포에 꼭 필요한 인재가 되어 돌아가겠다는 결심을 하고, 정치인에 대한 꿈과 계획을 세운 것도 이 시기였다.

김 당선인은 성실함과 정무감각을 갖춰 위기관리에 능하고, 소통 능력이 뛰어나다는 평을 듣는다.

이러한 실력을 인정받아 그는 만 34세에 김대중 대통령청와대 행정관을 역임했다.

신계륜, 박병석, 천정배, 기동민 국회의원과 김근태 열린우리당 전 의장 보좌관을 지냈다.
2011년에는 박원순호에 합류해 정무보좌관과 정무수석비서관을 거쳤다.

문재인 당 대표 시절 조직부본부장, 2017년 문재인 선대본 직능부본부장을 맡아 문 대통령 당선에 기여한 바 있다.

대선 후 2018년 유은혜 부총리 겸 교육부장관 정책보좌관, 2019년에는 서울시 정무부시장을 역임했다.

김 당선인은 지난해 12월 서울시 정무부시장 퇴임 후 목포에 본격 상주한지 5개월 만에 민주당 경선과 본선을 치렀다.

하지만, 그의 국회의원 출마 결심은 오래전이었으며, 2~3년 전부터는 꾸준하게 목포를 방문해 기반을 다져왔다.

김 당선인은 선거운동 과정에서 ‘임무교대’와 ‘새로운 목포’를 내세우며 유권자들의 정체된 목포의 발전과 목포와 호남을 대표할 새로운 정치인에 대한 기대에 부응하며 지지세를 넓혀갔다.

결국 그는 415 총선에서 목포시민들의 요구를 실현할 새롭고 젊은 집권여당 인물로의 임무교대를 성공적으로 만들어냈다.

그의 당선은 30여년 동안 목포정치권을 주도해온 권노갑, 한화갑, 박지원 등 동교동계 정치인과 김대중 전 대통령의 정신을 이어갈 새로운 정치인의 시작을 알리는 의미가 있다.

저작권자 © 대한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