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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토의 숨결] 500년전 시간여행 ‘살아있는 민속박물관’-아산 외암마을
<수령 600년이 넘는 마을 수호신 느티나무. 보호수로 지정된 느티나무는 수고 21m, 나무둘레 5.5m에 이른다. 느티나무 목신제는 장승제와 함께 마을의 안녕과 풍년을 기원하는 전통의식으로 매년 음력 1월14일이면 외암민속마을보존회 주관으로 열린다.>
<전형적인 한옥 형태가 고스란히 보존돼 있다.>
<투호 등 민속놀이를 즐기는 어린이들>

[외암마을(아산)=권병창 기자] 함초롬히 피어오른 야생화와 수려한 계곡이 압권인 광덕산과 설화산 아래 고즈넉히 자리잡은 살아있는 민속박물관.

외암민속마을 또는 외암마을은 주민들이 생활 터전으로 실제 거주하는 곳으로 마을내 소나무 숲과 장승, 솟대 그리고 초가와 한옥, 돌담이 어우러져 500년의 유구한 세월을 자랑한다.

국가지정 중요민속자료 제236호로 2000년 1월 지정된 외암마을은 ‘살아있는 민속박물관’이라 부르는 것도 이같은 이유 때문이다.

전형적인 농촌형의 외암마을을 찾으면 문화유산해설사의 안내로 시간여행을 즐기며, 곳곳을 관람할 수 있다.

전체 가구수가 60여 호인 외암리 민속마을에 가옥 주인의 관직명이나 출신지명을 따서 참판댁, 병사댁, 감찰댁, 참봉댁, 종손댁, 송화댁, 영암댁, 신창댁 등의 택호가 정해졌다.

게다가 돌담장 길이가 500여 m나 이르는 이끼 낀 돌담을 돌면, 전통 민속마을의 역사를 짐작할 수 있는데, 뜰안에 심어놓은 감나무, 살구나무, 밤나무, 은행나무 등이 정겹다.

충무공 이순신장군의 유허를 볼수있는 현충사, 민속박물관, 온양온천, 아산온천 등이 인접해, 색다른 문화공간을 만끽할 좋은 기회로도 각광받고 있다.

<서민층의 가옥인 초가삼간>
<돌담과 야생화가 이방인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각종 용도로 이용된 물래방아>
<마을 앞에 우뚝 솟아있던 천하장군 장승>
<울창한 송림으로 조성된 자연취락 언덕이 한가롭다.>

사방이 콘크리트 벽에 둘러 쌓인 곳에서 한번쯤 탈출해 일상 생활의 피로를 말끔히 씻고, 자녀들에게 전통문화체험을 통해 우리 문화유산의 소중함을 일깨워 주기에 모자람이 없다.

녹색농촌체험마을과 팜스테이, 유비쿼터스마을로 지정된 외암마을은 볼거리 또한 즐비하다.

아산시 송악면 외암리의 외암마을은 북쪽의 설화산을 최고봉으로 그 남서쪽의 약한 구룽지에 자리잡고 있으며, 마을 어귀는 낮고 마을 뒤로 갈수록 점차 높아지는 목가적인 지형이다.

이러한 지형 조건에 따라 마을의 집은 대개 남향 또는 서남향으로 배치되어 사계절 일조량이 풍부하다.

겨울에는 서북 계절풍을 막아주는 좋은 기후환경 때문에 일찍부터 촌락마을이 형성됐다.

이 마을에는 원래 여러 성씨가 살고 있었는데 조선 명종 1545~1567때 예안 이씨 이사종이 세 딸만 둔 진한평주의 첫째 사위가 되어 이곳으로 이주하면서 그의 후손들이 번창,오늘에 이른다.

그 후손 중에서 많은 인재가 배출되자 차츰 예안 이씨를 중심으로 하는 동족 마을을 이루게 된다.

<돌담을 넘어 자태를 뽐내는 연분홍 찔레꽃이 멋스럽다.>
<고즈넉한 농촌마을의 전형>
<탐스럽게 매달린 앵두가 사뭇 군침을 돌게 한다.>
<외암마을 초입의 돌다리가 아름다운 마을의 역사를 짐작케 한다.>

조선 경종 3년1723에 이간후선생이 쓴 ‘외암기’에 마을 이름을 '외암‘으로 기록한 사실이 있으며, 일제 때부터 획수가 적은 '외암하’로 쓰기도 했다.

이 마을에는 충청지방의 양반집과 초가가 어우러지고 집집마다 돌담으로 둘러져 있다.

설화산에서 흘러내리는 맑은 물은 인공수로를 따라 마을 안을 흐르면서 정원을 꾸미거나 생활용수로 이용되고, 유실수와 화목군 등 수림과 어울려 아름다운 경관을 보여 준다.

조선시대 이 마을은 지리적으로 한양과 가까워 왕래가 잦아서 인지 한양 풍속과 큰 차이를 보이지 않는다.

정월 보름을 전후해 느티나무제와 장승제를 지내며, 매년 10월에는 전통문화, 관혼상제와 농경문화, 민속놀이 등을 체험할 수 있는 짚풀문화제가 손짓한다.

이 마을은 역사와 자연환경이 잘 보존되어 있고 충청지방의 전통적인 살림집 모습을 비교적 잘 간직하고 있는 ‘민족문화의 보고(寶庫)’로 기록된다.

이는 장승의 기원에서 장승은 우리 조상들의 원시신상의 대상으로 장승을 비롯, 솟대, 선돌, 돌탑, 남근시 신목 등과 함께 민초들의 삶 속에 전승됐다는 사료적 가치마저 구전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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