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사회·문화
[향토의 숨결] 백제 의자왕때 3천 궁녀, 꽃이되어 몸날린 ‘낙화암’
<백마강 유람선인 선화1호 황포돛배 선상에서 바라보이는 낙화암의 원경>
<백마강을 가로지르는 선화2호 황포돛배에서 바라본 낙화암 절벽>

[부여=권병창 기자] “적군의 손에 죽지 않겠다. 망국의 한을 품에 안고 절개를 지키려 목숨을 아끼지 않았다는 전설이죠.”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110호 낙화암(落花岩)은 야트막한 부소산성 북쪽과 백마강 수변에 위치한다.

삼국유사 기록에 따르면, 백제 의자왕 20년(660)이 멸망하자 궁인들은 화를 피하지 못할 줄 알고 적군의 손에 죽지 않겠다며 부소산성 북쪽 구석에 있는 큰 바위에 올라 강으로 몸을 던져 죽었다는 구전이다.

이에 후세 사람들은 궁인을 꽃으로 비유해 이곳을 ‘낙화암’으로 부르며 오늘에 이른다.

낙화암 높이는 60m 정도이며, 절벽 아래에는 천하명필 송시열의 글씨로 알려지는 '낙화암' 글자가 새겨져 있다.

<낙화암 상층부에서 부여군 문화해설사가 유래와 역사를 설명하고 있다.>
<천년고찰 고란사로 오를수 있는 황포돛배 선착장>
<선화2호 황포돛배가 항속 5노트로 금강을 따라 낙화암이 바라보이는 구간을 오가고 있다.>

바로 윗편의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108호 백화정(百花亭)은 역시 부소산성 북쪽 금강변의 낙화암 정상부에 있는 육각의 정자건물이다.

1929년 당시 군수 홍한표의 발의로 부풍시사라는 '시우회'에서 세운 것으로 알려진다.

‘백화정’이란 이름은 중국 소동파가 혜주에 귀양가 있을 때에 성밖의 서호를 보고 지은 ‘강금수사백화주’라는 시에서 취한 것으로 보인다.

이 곳은 부여 외곽을 휘감아 도는 백마강과 주변의 낮은 구릉들이 어울려, 내려다 보이는 풍광이 일품이다.

마치 한 폭의 산수화를 대하는 듯해 부여를 찾는 관광객이면 반드시 들르는 명소로 손꼽힌다.

<'제1차 백제문화 역사유적지 팸투어'에 참가한 취재기자들이 10일 오후 백화정을 배경으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대한일보  webmaster@daehanilbo.co.kr

<저작권자 © 대한일보,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대한일보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