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일 늦은 저녁 빗줄기만 오락가락, 뜸한 인적에 쓸쓸함만 더해

<고 김학순 위안부 피해자와 세소녀들의 이별의 순간을 상징하는 위안부 기림비>
<한.중.필리핀 소녀들은 두손을 서로 맞잡고 부디 살아돌아올 것을 약속했으리라>

[남산(서울)=권병창 기자] 게릴라성 빗줄기가 잦아들며,칠흑같이 땅거미가 어두운 15일 저녁 9시께 서울 남산 한켠에 자리한 '위안부 기림비'는 그 어느 날보다 쓸쓸하고 외롭다.

"우리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우리의 이 아픈 역사가 잊히는 것입니다."-위안부 생존자

서울 남산에 위치한 위안부 기림비는 2017년 미 샌프란시스코시에 건립된 위안부 기림비를 모티브로 제작된 '자매 조각상(Sister Statue)'이다.

일제 침탈의 아픔을 간직한 서울 남산도서관 인근 조선신궁터 부근에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의 고통과 투쟁, 용기를 기리는 동상이 세워졌다.

위안부 기림비 동상은 의연한 모습으로 정면을 응시하며, 손을 맞잡은 160㎝ 크기의 세명의 소녀(한국·중국·필리핀)와 1991년 위안부 피해 사실을 최초로 공개 증언한 故김학순 할머니가 비련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모습을 실물 크기로 표현한 작품이다.

기림비 형태는 손을 맞잡고 있는 한국 중국· 필리핀 세 소녀를 김학순할머니가 바라보고 있는 형상이다.

<남산 안중근동상 한켠에 세워진 위안부 기림비. 제75주년 광복절인 15일 늦은 저녁은 기림비 주변은 인적조차 드물어 쓸쓸함을 더한다.>

일본군 '위안부'피해 사실을 처음 증언한 고김학순 할머니의 시선은 용기의 표상이자, 잊지 않겠다는 다짐이며, 세 소녀가 맞잡은 손은 연대를 뜻한다.

소녀들은 맨발에 흙을 딛고 서 있고, 할머니는 자갈밭에서 있다.
이는 시련의 시간을 지나온 긴 노정을 담고 있다.

소녀상과 만나는 이가 이들과 손을 맞잡아야 비로소 완성된다.
손을 내밀어 함께 기억하면 역사가 되는 것이리라.

이 기림비는 1931년부터 1945년까지 '위안부'라는 미명아래 일본 제국군의 성노예가 돼야 했던 아시아 태평양 13개국, 수십만 명의 여성과 소녀들의 고통을 증명하기 위해 세워졌다.

당시 여성 대부분은 전시 감금 중에 조국의 광복을 맛보지 못한채 사망한 것으로 구전된다.

이 어두운 역사는 생존자들이 침묵을 깨고나와 용감하게 증언을 시작한 1990년대까지 은폐돼 있었다.

이들은 "전쟁의 전략으로 자행한 성폭력은 가해국 (일본)정부에 책임을 물어야할 반인륜범죄"라는 세계적인 선언을 이끌어 냈다.

표지석에는 이 여성들을 기억하고, 전 세계에서 지금도 일어나고 있는 성폭력을 근절하고자 이 기림비를 바친다고 적혀 있다.

토속적인 美를 더한 기림비는 성노예로서 인권을 유린당했던 어린 소녀들, 여성들의 역사를 기억하며, 그 역사의 진실을 세계에 알리는 인권수호의 상징물로 조성됐다.

제75주년 광복절인 15일 늦은 저녁, 우리의 시선밖 어쩌면 버림받은 슬픈 자화상이 아닌가 싶어 마음은 그저 무겁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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