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 춘분, 안중근광장에 고결한 자태 상춘객 손짓

<남산자락 안중근광장에 자생하는 와룡매의 고고한 자태가 20일 오후 상춘객의 눈길을 사로잡고 있다.>
<와룡매 사이로 서울시교육청 교육연구정보원에 게양된 국기가 힘차게 나붓끼고 있다.>

[남산(서울)=권병창 기자] 1590년대 조선의 얼과 혼, 그리고 한(恨)이 고스란히 살아 숨쉬는 남산의 와룡매(臥龍梅).

고결한 와룡매의 뒷편에는 안중근의사 유묵(遺墨) 중 대표적인 '견리사의견위수명(見利思義見危授命)'이 우뚝 솟아있는 기념비에 새겨졌다.

즉, '이로움을 보았을 때에는 정의를 생각하고, 위태로움을 당했을 때에는 목숨을 바치라'는 뜻으로 작금의 LH투기의혹 사태에 소리없는 채찍으로 밀려든다. 

남산자락 안중근광장에 자생하는 수령 20여년생 와룡매는 임진왜란 당시 창덕궁에 자라고 있던 홍매화를 일본으로 가져간 모목(木)의 후계목으로 구전된다.

20일 오후 상춘객들의 눈길을 사로잡는 와룡매의 수고는 6~7m에 이르는 반면, 밑둥둘레는 50~60cm로 도도한 자태를 뽐낸다.

<함초롬히 피어오른 와룡매가 한껏 탐스러운 자태를 뽐낸다.>

일본이 한국 침략에 대한 사죄의 뜻을 담아 400여년 만에 환국한 뜻깊은 매화나무(梅花)로 알려진다.

눈길을 사로잡는 모목(母木)은 임진왜란 당시(1592~1597년)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의 명령에 따라 조선으로 출병한 다테 마사무네(伊達政宗)에 의해 1593년 일본으로 반출됐다.

이후,1609년 다테가의 보리(菩提寺)인 마츠시마(松島)의 즈이간지(瑞巖寺)가 중건(重建)되면서 본당 앞 양 옆에 홍백으로 식수돼 400여년간 화려한 꽃을 피우며 사찰의 유명한 나무(木)가 됐다.

사찰의 제129대 주지 히라노소죠(平野宗淨)스님이 일본의 침략으로 인해 조선에 많은 피해와 수많은 인명을 살상한데 대한 참회로 '안중근의사 숭모회'에 후계목 반환을 제의했다.

한·일 외교통상부의 적극적인 협조로 마침내 1999년 3월 26일, 안중근의사 순국 89주기를 맞아 400여년 만에 고국으로 돌아오게 됐다.

그 당시 환국식과 더불어 이곳 남산공원에 홍매화 1그루와 백매화 1그루가 식수돼 지금에 이른다.

저작권자 © 대한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