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도에서 바라본 손저으면 맞닿을듯 서도의 최고봉 해발 168.5m '대한봉'이 지척에 들어선다.>
<독도의 탕건봉과 권총바위, 그리고 삼형제바위가 억겁의 세월을 뒤로 한민족의 얼과 혼을 일깨워 준다.>

열강의 국가 발견자 임의로 이름붙여 유린된 슬픈 자화상
[독도=권병창 기자]
 반만년의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한반도의 동쪽끝, 태초의 신비가 고스란히 살아 숨쉬는 독도.

예로부터 우리의 선조가 지켜왔던 섬, 그리고 우리가 면면히 살아 오는 섬.

육지와 258km, 울릉도의 87.4km밖 독도의 이모저모와 자연생태계의 ‘寶庫’를 재조명해 본다. <편집자 주>

독도는 본래 천연보호구역으로 지정된 이래 천연기념물 제336호로 일반인들이 접근하기는 어려운 섬이다.

하지만, 실효적 지배과정에서 독도의 중요성이 재인식되면서 다양한 규제가 완화되어 현재는 전 국민이 다녀갈 수 있는 섬으로 변해갔다.

<함초롬히 피어오른 독도의 천연기념물 해국>
<척박한 화산석과 토양에서 자생하는 섬기린초와 땅채송화가 곳곳에 자란다.>

독도 해양생태계의 수중 서식생물은 조피볼락,성게, 갑각류를 포함해 해조류는 대황,감태,미역등이 자란다.

초본류는 해국을 비롯한 섬시호,큰두루미꽃,섬기린초를 볼수 있으며, 조류로는 괭이갈매기,황조롱이,바다제비,메추라기 등이 서식한다.

이와같은 독도는 현재 정부 기관단체 및 사회단체 교육의 장이자, 문화예술의 장으로 활용되고 있다.

이처럼 독도가 한국인의 삶 속으로 들어오게 되면서 점차 독도를 방문하는 국민의 수도 늘어난 가운데, 현재는 '전국민 독도밟기 운동'으로 번져나가고 있다.

이같은 독도를 부르는 이름은 다양하다.
우리가 부르는 '독도'라는 섬 이름은 1904년 일본 군함 니타카호의 항해 일지에서 처음으로 기록됐다.

우리나라 문서 중에서는 1906년 심흥택 울릉군수의 보고서에서 확인할 수 있다.

<동도에서 불과 150여m 건너에 있는 어업인숙소>
<독도 괭이갈매기들의 군무>
<80~90여m 깊이에 이르는 거대한 화산 분화구 천장굴>

'독도'라는 이름은 울릉도 주민들이 부르던 '독섬'의 뜻을 취해 한자로 표기한 것으로 '독섬' 은 '돌섬'의 사투리이다.
그 이전에는 다양한 이름으로 독도가 문서와 지도상에 나타나 있다.

일본에서 메이지유신 이전에 ‘독도’를 부르던 이름도 발견된다.
1905년 일본의 독도 영토 편입 조치에서 처음 등장한 이름이다.

일본은 독도를 '마쓰시마', 울릉도를 '다케시마'라고 불렀으나, 1905년 이후 독도를 '다케시마' 라고 부르고 있다.

뿐만아니라, 리앙쿠르 암(Liancourt Rocks)은 1849년 독도를 발견한 프랑스의 포경선 리앙쿠르호의 선박이름에서 가져왔다.

<희망브리지, 대구의 시민구조봉사단, 울릉군재향군인회 봉사단원들이 25일 오후 동도 해변의 널부러진 각종 쓰레기를 수거하고 있다.>

독도가 처음으로 서양에 알려졌을 때 붙여진 이름으로 서양인들은 독도를 리앙쿠르 암으로 불렀다.

이어 호넷 암(Hornet Rocks)은 독도를 발견한 영국 함대의 함장이름을 따서 호넷(Hornet)이라고 이름 붙였다.

영국인은 우리의 독도를 호넷 암으로 불렀다.

게다가 메넬라이-올리부차(Menelai-01livutsa)는 러시아 극동함대가 독도를 발견한 후 붙인 이름으로 서도는 '올리부차'로, 동도는 '메넬라이'라 유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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