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문화재 나무 답사기 출간

강원 영월군 남면 광천리 남한강 상류에는 강의 지류인 서강에 둘러싸이고 가파른 절벽에 막힌 평지가 있다.

조선 제6대 임금 단종은 세조에게 왕위를 빼앗기고 청령포라 불리는 이곳에 유배됐다.

청령포 솔숲 가장자리에는 관음송이란 소나무 한 그루가 우람하게 있는데 단종은 이 소나무에 걸터앉아 서울을 바라보면서 통곡했다고 한다.

관음송은 단종의 비참한 모습을 지켜봤다고 해서 볼 관(觀)자를, 단종의 슬픈 말소리를 들었다고 해서 소리 음(音)자를 따서 붙인 이름이다.

강원 삼척시 근덕면 궁촌리에는 고려의 마지막 임금 공양왕이 교살된 곳이라는 전설을 지닌 음나무가 있다.

공양왕은 2년8개월 동안 허수아비 왕 노릇을 하다가 결국 왕위에서 쫓겨났다.

공양군으로 강등돼 원주로 유배됐다가 간성으로 쫓겨갔고 다시 삼척으로 옮겼다.

궁촌리 음나무가 있는 자리는 공양왕이 죽기 직전까지 살던 집의 마당이 있던 곳이라는 이야기가 전한다.

음나무는 옛날부터 귀신을 쫓고 불행을 몰아내는 의미가 있지만, 공양왕은 이곳에서 한 달 남짓 살다가 나무의 효험도 보지 못하고 비극적인 죽음을 맞이했다.

조선왕조실록에는 공양왕을 교살(絞殺)했다고 나오는데 교살은 큰 나무에 목매다는 것이 보통이었다.

상세한 기록은 없지만, 공양왕이 음나무에서 최후를 맞았을 가능성을 충분히 떠올릴 수 있다.

조선 전기의 문신인 김종직은 함양군수로 재임하던 시절 5살짜리 아들을 홍역으로 잃는다.

아이의 이름은 목아(木兒), 즉 나무 아이였다.

김종직은 자식을 잃은 다음해인 1475년 승진해 함양을 떠나면서 학사루라는 누각 앞에 천년을 거뜬히 살 수 있는 느티나무 한 그루를 정성 들여 심고 나무 아이의 짧은 삶에 대한 아쉬움을 달랬다.

해인사 팔만대장경판, 무령왕릉 관재 등 나무 문화재를 과학적으로 분석해 온 박상진 경북대 명예교수가 우리 문화재 나무 답사기(왕의서재)를 펴냈다.

저자가 14년 동안 전국 각지를 답사하며 천연기념물 나무에 얽힌 전설과 사연을 담은 책이다.

전국에 있는 250여 천연기념물 나무와 숲 가운데 역사 문화적 가치가 높은 73곳을 선별해 2~3차례씩 답사했고 책에 실린 사진도 직접 찍었다.

저자는 머리말에서 "우리는 나무 문화재라는 말에 익숙하지 않지만 문화재로서의 값어치를 따지면 천연기념물 나무는 다른 어떤 유물에도 뒤지지 않는다"면서 "기나긴 세월 동안 마을지킴이로 살아온 나무에는 세상살이의 이런저런 사연이 얽혀 있다. 이는 우리의 구전문화이며 때로는 역사의 편린을 꿰어맞출 수 있는 자료가 되기도 한다"고 말했다.

저자는 답사 현장에서 마을의 노인들을 만나 나무에 얽힌 옛 이야기를 수집했다면서 세월이 흐를수록 나무가 담은 사연이 잊히고 있다며 안타까워했다. 412쪽. 2만3천원.

저작권자 © 대한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