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대통령이 23일 법무부 국민권익위원회의 내년도 업무보고에서 지역 토착세력의 비리에 대해 예년에 없이 강도높은 비판의 목소리를 토해냈다.

올 여름 8.15 경축사에서 토착비리, 권력형 비리를 근절하기 위한 방안을 더 적극적으로 모색하겠다고 선언한 데 이어 사이비 언론 등 지역 토착세력의 구조적 비리 가능성을 다시한번 강조하며 척결 대책을 주문한 것.

이날 토론에서 이 대통령은 최근 문제가 됐던 일부 기초자치단체의 예산 전용과 횡령 사례를 구체적인 숫자를 제시하며 지적했다.

이 대통령은 "홍성군만 해도 670명 가운데 108명이 집단으로 예산을 빼돌리는 데 가담했다. 어떤 직원은 4천496만원을 빼돌려서 유흥비로 쓰고, 어떤 직원은 3천941만원을 빼돌려 1천700만원을 고급 유흥주점에서 썼다고 한다"면서 "생계형 범죄가 아니다"라고 일갈했다.

그러면서 "국민들이 볼 때는 우리 지역도 그렇지 않을까 의구심이 생길 것"이라고 우려했다.

또 이 대통령은 "기초 지자체를 보면 지난 지방선거에서 당선된 216명 가운데 10%가 당선무효로 중간에 물러났고, 올해 공기업에 근무하는 임직원 51명이 구속됐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런 비리의 온상에는 지역토착 세력과 사이비 언론이 결부돼 있다"고 밝혔다.

정부가 예산을 어렵게 책정해도 일선 공무원들이 예산을 빼돌리는 사례가 비일비재하고 지역에서는 이른바 연줄이 작용해 단속도 제대로 되지 않고 있다는 점을 들며 근본적인 대책을 지시한 것으로 해석된다.

이에 따라 법무부는 오는 2012년까지 전국 고검 및 주요 지검에 전문수사팀을 만들어 토착 세력의 이권 개입과 공무원 비리를 철저히 수사하는 한편 기업의 대규모 비자금 조성이나 비자금 유출 행위를 근절키로 했다.

이창재 대검 수사기획관은 "지역 공직비리를 척결하기 위해서는 관용없는 엄정한 처리로 토착세력과 부패공무원, 사이비 언론과의 연계 등 뿌리깊은 부패고리를 끊어야 한다"고 주문했다.

사법 시스템의 선진화 등에 대한 제안도 잇따랐다.

서석호 변호사는 "미국의 경우 음주운전으로 사망사고를 내면 징역 5년으로 양형기준이 정해져 있으나 우리의 경우 하루도 복역하지 않는 사람, 3년 복역하는 사람 등 차이가 크다"면서 "예측 가능성을 위해 하루빨리 구속 및 양형기준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무려 4시간 40분간 진행된 이날 토론에서는 초등학생, 교사, 교도관, 행정수요자들도 참석해 다양한 경험과 의견을 개진했다.

차지현 서울 조원초등학교 교사는 "학생들과 함께 법무부의 `가정헌법 만들기 운동에 참여했는데 `아빠 말이 곧 법이다. 일 조금하고 집에 일찍 들어온다는 조항도 있었다"고 소개했으며, 이에 이 대통령은 "그럼 여기 있는 사람들은 다 법을 위반하고 있다"라고 농담해 좌중의 폭소를 자아냈다.

휴대전화 문자 발신번호를 임의로 조작하지 못하도록 하자는 의견을 정책에 반영시켰다는 고병우 묘곡초등학교 학생은 "이처럼 어린이 의견도 법률에 지속적으로 반영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밖에 주상근 강릉교도소 교위는 사고로 숨진 딸의 이름을 따서 자신이 후원한 방글라데시의 보람초등학교 개교식에 참석했다고 소개한 뒤 "평소에 선교사를 하고 싶다던 딸의 유지를 살려 수형자들의 성공적인 사회복귀를 지원해 달라"고 당부했다.

이에 권재진 민정수석은 손수건을 꺼내 눈물을 닦았다고 배석한 김은혜 대변인이 전했다.

<권병창 기자/사진=청와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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