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에서 마녀라는 공포와 부딪쳤을 때 당당히 맞서 싸우든가 공포로 포기하던가.

음산한 느낌의 제목대로 공포물 혹은 호러 영화고 볼 수 있는 마녀의 관(감독 박진성)이 22일 오후 왕십리 영화관에서 시사회를 가졌다.

사실 마녀의 관이 호러나 공포를 주제로 한 영화지만 여름한철 등골을 오싹하게 하는 그런 영화라고 보기는 어렵다. 자극적인 제목처럼 영화는 전혀 자극적이지 않다는 말이다.

마음속의 두려움 혹은 일상적인 공포 같은 것을 다루고 있지만 그 두려움이나 무서움은 언제든지 그리고 우연한 기회에 떨쳐버릴 수 있는 것들과 일맥상통한다. 기자간담회를 통해 감독은 이런 사실을 “용감하게 현실을 이길 수 있는 사람, 즉 소소한 것을 과감하게 떨치고 자신의 소신을 선택하면서 공포와 정면대결 하는 사람, 쉽게 포기하지 않는 사람이 진정한 영웅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그래도 공포를 주제로 한 영화인데 웃음기나 코믹을 심하게 제거한 것까지는 그렇다 치더라도 철학적인(?) 공포의 모습을 보이는 것 즉 이 영화에서 공포는 한 번 생각해 보고 느껴야 하는 두려움이라는 점이다.

그래서 그런지 몰라도 공포물에 들어가는 엄청나게 말초적이고 신경질 적인 수식어 대신에 마녀의 관에는 판타지 호러라는 낱말이 걸려 있다.

어떤 초인적인 존재가 빚어내는 거부할 수 없는 근본적인 두려움이나 어떤 대상을 향한 복수나 저주와 같은 계획된 사실들이 빚어내는 공포와는 다른 소소한 두려움이 이영화의 중심점이다. 사실 공포영화가 너무 청각을 자극하는 비명이나 시각을 앞세운 잔혹극도 문제겠지만 이 영화처럼 머리로 생각해야 하는 공포도 문제점은 있어 보인다.

어떻게 보면 항상 부딪칠 수밖에 없는 인간의 한계, 하지만 별로 크게 인식하지 않고 살아가면서 죽을 때까지 만나고 헤어지면서 느껴야 하는 두려움들을 표현한 영화라는 점에서 공포의 새로운 면을 제시했다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영화의 처음 시작은 참 여러 가지로 인상적이다. 어디선가 본 듯한 장면인 듯하지만 구도를 잘 맞춰놓은 사진 같은, 흑백도 아니고 칼라도 아닌 묘한 느낌의 색감이 있는 장면에서 어떤 불길함이나 공포가 감지되는 듯하게 하다 전혀 다른 반전을 일으키며 현실로 돌아온다. 이때부터 영화는 해석이 필요하다는 점을 잊지 않는다.

그렇지만 절대로 처음 장면을 제외하고는 마녀의 관이라는 제목과 연관성을 알리는 순서로 착하게 진행시키지도 않는다.

더구나 이 영화는 3막으로 되어 있고 각각 연관된 테마가 내용을 달리해서 구성되어 있는데 2막의 경우는 러시아 작가 고골의 원작을 충실하게 살리려는 탓에 고전적이고 해학적이다. 1,2,3막이 가각 다른 내용과 다른 시대 다른 이야기를 한 듯 하지만 따지고 보면 이야기는 다 연결되어 있는 상태로 마녀의 관을 해석하고 있다.

2막의 특이함을 영화의 큰 틀에서 회상 신이나 과거의 윤회나 과거의 일들이 지금에까지 미치는 것으로 생각한다면 그렇게 봐도 무방할 듯하다. 다만 영화 자체에서 아쉬운 점은 3막을 3D영화로 제작했다가 무산됐다는 점이다.

 

독립영화는 언제나 원작과 감독과 관객사이의 통역이 필요하다. 기자간담회에서 박진성감독은 마녀의 관이라는 제목에 대해 어렸을 적 누구나 한 번쯤 건드려 보고 들여다보고 싶어 했던(예를 들면 이성에 대한) 욕망이라는 것을 표현한 것이라고 했다.

 

감독 : 박진성

상영 : 120 분

등급 : 18세 관람가

개봉 : 2010년 3월 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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