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우연히 O157:H7 대장균에 감염된 쇠고기를 덜 익혀 먹으면, 우리는 죽을 수 있다. 이것은 괴담이 아니다. 미국 식품안전검역국(FSIS)은 식품에서 O157:H7이 검출될 경우, 1급 리콜 명령을 내린다. 1급 리콜은 식품을 먹을 경우 심각한 건강 손상 혹은 사망(serious adverse health consequences or death)에 이를 수 있을 때 내린다.
  
한국의
보건복지가족부 질병관리본부에 의하면, O157 전염의 주된 원인은 오염된 "갈은 고기", 곧 분쇄육(ground meat)이다. 분쇄육이란 한국의 법령에서는 햄버거 패티류, 미트볼류, 가스류 등이다. (<축산물의 가공 기준 및 성분 규격>) 미국 농무부의 2001년 자료도 적어도 분쇄육이 주된 원인임은 인정하고 있다. (Risk Assessment of the Public Health Impact of O157:H7 in Ground Beef.)
  
바로 이 분쇄육에 대하여, 한국은 2006년 3월에 광우병 발생국가인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다시 허용할 때에도, 수입을 일제 금지하였다. 미국의 도축장이 이를 한국에 수출할 경우에는 해당 도축장이 일체의 쇠고기를 한국에 수출할 수 없도록 잠정 조치를 취할 수 있었다(20조). 그리고 도축장의 문제가 해소되지 않을 경우 수출작업장의 승인을 취소할 수 있었다.
  
그러나 바로 이 분쇄육을
정운천 농림부 장관의 쇠고기 관보 고시는 광우병 발생국가로부터 수입되게끔 허용했다. 게다가 분쇄육의 원료로 선진회수육(AMR)을 사용하는 것조차 허용했다. 그 결과 농림부의 자료에 의하더라도, 미국에서는 학교 급식에서 사용되지 않도록 하는 선진회수육을 원료로 만든 분쇄육 햄버커 패티, 미트 볼이 우리 아이들의 학교 급식에 올라올 수 있게 되었다.
  
물론 모든 미국산 분쇄육이 선진회수육을 사용한다든지, 위험하다는 말은 아니다. 그리고 분쇄육의 문제는 한국에서 가공한 것이라고 예외는 아니다. 한국의 식품법령도 분쇄육은 O157에 오염되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적어도 미국산 분쇄육에 대한 전면 개방의 점에서, 한국 정부로서는 한국민의 생명과 건강에 미칠 영향을 과학적으로 평가하고, 검역 대책을 마련해야 마땅했다.
  
알다시피, 며칠 전, 미국 FSIS는 네브라스카 주 소재의 네브라스카 비프의 작업장이 만든 쇠고기 분쇄육 샘플에서 O157이 검출되자, 분쇄육에 대해 1급 리콜 조치를 취했다. 그런데 문제는 바로 이 작업장이 한국으로 쇠고기를 수출할 수 있도록 한국으로부터 승인 받은 작업장이란 사실이다.
  
나는 분쇄육의 수입을 허용한 이상, 정 장관은 즉시 위 작업장에 대한 현지 점검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O157 검출의 원인을 밝히고, 해당 작업장으로 하여금 잘못을 제거하도록 요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만일 한국의 분쇄육 제조 회사에서 생산한 한국산 분쇄육에서 O157이 검출되었다면, 한국의 농림부는 법령에 따라 축산물 가공업 영업허가를 취소할 수도 있다(축산물가공처리법 시행규칙). 일선 식품위생행정에서는 한 단계 낮은 강도의 규정(병원성 미생물 검출로 인한 규격 기준 위반)을 적용하여 해당 분쇄육 제조 공정을 1개월 정지시키는 처분을 내린다. 왜냐하면, 그 공정의 원인을 찾아내어 제거하지 않으면 동류 제품이 또 다시 O157에 오염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 장관은 미국의 분쇄육 리콜 사태를 쳐다만 보고 있는 듯하다. 왜냐하면 이 사건에 대해 농림부가 공식적으로 내어 놓은 자료 그 어디에도 현지 점검을 하겠다는 낱말이 없으며, 오히려
이렇게 끝을 맺고 있다.
  
해당 작업장은 우리나라로 수출이 승인된 작업장이지만, 리콜 대상 제품의 제조 기간(08.5~6월)중에는 우리나라로 수출이 중단된 상태였고, 과거 위생조건상 분쇄육은 수입허용대상이 아니었기 때문에 우리나라로 반입된 것은 없습니다(2008년 7월 2일자 농림부 게시).

  이러한 정 장관의 태도는 공허하다. 이 작업장이 앞으로 한국에 실어 보낼 분쇄육 생산 라인에서의 O157 오염 가능성이 문제되는 상황에서, 정 장관은 과거에는 한국으로 반입된 것은 없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어쩌다가 한국의 식품안전 행정이 이렇게까지 되었는가? 문제의 근원은 정 장관의 쇠고기 관보 고시이다. 이것이 한국의 검역 주권을 심각하게 제약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일이 결코 있어서는 안 되겠지만, 만일 네브라스카 비프에서 한국으로 수출한 분쇄육에서 O157이 또 나왔다고 하자. 그 때엔 정 장관은 해당 제품 폐기 말고 무슨 근본적 대책을 세울 수 있을까? (위 농림부 자료는 O157 검출 제품을 반송하겠다고 되어 있는데, 가축전염병예방법에 의할 때, 해당 제품은 소각, 매몰, 폐기의 대상이지 반송의 대상이 아니다.)
  
그가 미국 측에 대해 할 일은 고작 이것밖에 없다.
  
첫째, 그는 미국 정부에 이를 알리고 협의해야 한다.
둘째, 적절한 경우 미국 정부에 개선 조치를 요구할 수 있다(수입위생조건 23조).
  
더욱이 정 장관의 관보에는 미국이 원인조사를 실시할 경우로서, 특정 위험 물질이 발견될 경우라고 명시하고 있어, 한국행 쇠고기에서 O157이 검출되었다는 것만 가지고는 미국이 원인 조사를 하지 않을 수도 있다. 언젠가, 한국행 쇠고기에서 등뼈가 나왔을 때, 어떤 미국인은 한국에서 집어넣은 것 같다고 말하지 않았던가?
  
  이 상황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알려면 정 장관이 자신의 손으로 폐기한
노무현 정부 시절의 수입 위생 조건 20조를 다시 읽어야 한다. 앞에서도 보았지만, 종래에는 수입 위생 조건을 지키지 않는 미국 작업장에 대해선, 한국 정부가 해당 도축장이 한국으로 쇠고기를 수출할 수 없도록 잠정 조치를 취할 수 있었다. 그리고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아예 작업장 승인을 취소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제 정 장관의 관보에 의하면, 미국 작업장의 한국행 분쇄육에서 O157이 검출된다고 해도, 정 장관이 자신의 손으로 취할 수 있는 근본적 조치는 없다. 이 작업장 생산 분쇄육에 대한 검역 절차는 결코 중단되지 않는다. 그리고 이러한 위험한 상황에서 해당 분쇄육 제품에 대한 철저한 전수검사도 사실상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정 장관이 자신의 손으로 그렇게 관보에 실었기 때문이다.
  
  "해당 작업장에서 생산된 제품은 여전히 수입 검역 검사를 받을 수 있다. 동일 제품의 5개 로트에 대한 검사에서 식품안전위해가 발견되지 않았을 경우 한국 정부는 정상 검사 절차 및 비율을 적용해야 한다."
  
  이처럼 정 장관이 자신의 손으로 미국에 대해 직접적인 조치를 취할 길은 없다. 그런데 있을 뻔 했다. 애초의 고시 초안에는, 미국 작업장의 또 다른 분쇄육에서 또 다시 O157이 검출되었을 때, 이 경우 해당 작업장은 개선 조치가 취해질 때까지 중단 조치될 수 있다고 되어 있었다(24조). 이 조항은 한국 측이 직접 조치를 취할 수 있는 것으로 해석될 여지도 있었다.
  
  그러나
김종훈 통상교섭본부장의 추가 협상은 이 여지를 깨끗이 없앴다. 한국 정부는 직접 중단 조치를 취하지 못하고 미국 정부에 이를 요청할 수 있도록 했다(부칙 9항). 물론 이 요청을 받는 대로 미국정부는 해당 작업장을 중단시켜야 한다. 결국 같은 말이 아니냐고? 전혀 그렇지 않다. 중단된 작업장에 대한 재승인권을 누가 갖느냐에서 차이가 있다.
  
  나는 O157 검역 주권이 포기되었다고 본다. 왜냐하면, O157 검역 주권이란, 한국 정부가 한국에서 열심히 O157 검출 실험을 하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한국이 세계무역기구 회원국으로서 보장받고 있는 검역 주권은 훨씬 그 이상이다. 한국은 어느 미국 작업장의 분쇄육 공정이 O157에 오염되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되면, 그에 대한 과학적 자료가 부족한 상태에서도 임시로 해당 작업장에 대한 수출중단 명령 등 위생검역조치를 취할 국제법적 권한이 있다(위생검역협정). 그리고 조사 결과 원인이 제거되었다고 판단하면, 수출 개시를 승인할 수 있다.
  
  그러나 한국은 이러한 검역주권을 포기했다. 이제 한국은 자신의 손으로 어느 미국산 분쇄육에서 O157을 검출하더라도, 그 작업장 생산 분쇄육에 대한 정밀 전수 검사조차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없다. 한국은 다섯 개 박스 묶음(로트)까지만 뜯어서 정밀 전수 검사를 할 수 있을 뿐이다. 여기서 멈춰야 한다. 여기까지 O157이 안 나오거든, 여섯째 상자를 전수검사 목적으로 뜯어서는 안 된다. 그건 금지선이다. 자기 나라 국민들이 우연히 O157:H7 대장균에 감염된 쇠고기를 덜 익혀 먹다가 죽을 위험은 모르겠지만, 여섯째 상자는 뜯어서는 안 된다. 이런 관보 고시는 국민에게 필요가 없다.

송기호/변호사·조선대 겸임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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