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란스럽다. 가치관이라고까지는 할 수 없지만 정돈되어 있다고 생각했던 성에 대한 내 생각이 여지없이 흔들리고 있다.


성도 자원봉사가 될 수 있는가? 처음 sex volunteer!라는 단어를 들었을 때는 뭔가  음습하고 안 어울리는 단어라는 생각을 했었다. 그리고 그 이야기의 중심축이 장애인이라는 사실을 알았을 때는 주먹으로  한 대 맞은 것 같았다. 성에 장애인이라는 복병이 튀어나올 줄은 솔직히 생각하지 못했었다.  장애인도 그렇지만 성이라는 문제도 너무 노골적으로 드러내기 시작하면서 무관심쪽에 가까웠다.

 영화 시사회 사회를 맡은 신현준씨와 장애인 배우들  앞줄 이윤호(좌) 조경호


그래서 그런건 아니지만 영화를 보면서 솔직히 불편했다. 그냥 못마땅한 불편함이 아니라 뒷맛이 쓴 충격적이었다. 그동안 성과 연결시키는 것을 애써 외면해 왔던 장애인이라는 단어를 꽁꽁 밀봉시켜 벽장이나 장판 속에 처박아 두었다가 어느 날 그것을 꺼내서 세상에 내놓으려 하는 사람을 지켜보면서 말릴 수도 꺼내라고 할 수도 없는 그런 불편함과 씁쓸함 이었다.

여자 배우 한여름


세상에는 별별 자원봉사가 있을 수 있다. 자원봉사라는 단어는 장애인과 아주 밀착된 단어이기도 하지만 그 기본에는 사랑과 밀착되어 있다. 성도 사랑과 밀착되어 있지만 남녀 간의 육체적인 면과 윤리 도덕과 밀착된다. 하지만 영화는 전혀 이질적일 것 같은 자원봉사와 성과 장애인이 결합되어 있다.

사회자 배우 신현준씨가  기자들의  질문을 듣고 있다.

성도 자원봉사가 될 수 있을까 하는 생각, 발칙 하다기 보다는 뭔가 안타깝고 도덕이나 윤리적인 문제라고 보기에는 그동안 성과 연관 지어 생각했던 감정의 교감이 너무 메마른 느낌이다.


그래서 그런지 감독은 성으로 하는 자원봉사를 신념을 가진 영화학도의 영화로 정당성을 부여해 버무렸다.


신부역을 담당한  홍승기 변호사  거칠은 형사 역으로 출연한 홍 창진 신부

감독은 이 영화에서 장애인에게  성을  제공하는 것이 통상적인 남녀간에 일어나는 교감과 감정 없이도 가능하다고 생가했던 것 처럼 표현했다.

그냥 시설에 가서 보통의 자원봉사라고 말하는 밥 먹여 주고 목욕시켜주는 것처럼 정성이나 마음만 있으면 가능한 것으로 생각한 것일까. 통상적인 남녀 관계에서 성적인 행동이 일어나기 위한 열정, 사랑, 혹은 호기심(하다못해 길들여진 끼, 오락, 자손생성) 같은 것이 전혀 없이도 상관없다고 생각한 것 처럼 보인다.

그렇지 않고서야 자원봉사라는 고귀함을 어떻게 성과 연결시킬수 있었을까. 감정이 배제된 성이 정말로 가치가 있는 것인지 모르겠다. 


조경덕 감독이 신현준씨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내가 아는 자원봉사는 행동으로 하는 것이다. 마음에서 우러나와야 하는 것이 진정한 자원봉사라고 믿는다. 그래서 자원봉사는 누구에게도 비난을 들어서도, 해서도 안 되는 인간의 가장 아름다운 모습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그 자원봉사의 행동이 성이라면? 자원봉사는 혼자든 여럿이든 남녀노소 제약이 없지만 성은 남녀 간에 이루어지는 제약도 많고 민감하다. 호기심이 가장 많은 부분이 바로 성문제 아닌가.


그렇지만 나는 이 영화에 윤리적인 타락이나 도덕적인 타락의 잣대를 대고 싶지는 않다. 장애인의 성도 보호되어야 할 것임에 틀림없는 사항이고 그것은 존중되어야 마땅하다고 보는 감독의 의도에도 찬성한다. 더구나 누구도 애써 외면했던 장애인의 성 문제들을 정면으로 드러내 놓고 밖으로 나오게 한 점에 대해서는 박수를 보내고 싶다.

가운데 있는 분은 조경덕 감독의 친이모다. 연기를 너무 잘해서 다들 기성배우인줄 알았다.

다만 한가지 성으로 하는 자원봉사가 자원봉사라는 좋은 의도와 정신과는 다르게 비난을 받을 여지가 있다는 점에서 생각을 정리하기가 쉽지 않다. 특히 장애인들의 성에 대한 절박함, 평생을 성 없이 그냥 지내야 하는 그들의 안타까운 점을 담기 위해 정말 금기시하는 절대로 있어서는 안 되는 것들을 화면에 담은 점은 괘씸하다. 혹시 감독은 자칫하면 비난으로 이어지는 성을 말하기 위해 자원봉사라는 누구도 비난할 수 없는 가치를 교묘하게 이용한 것은 아니었을까.


하지만 시사회에서 본 조경덕 감독은 성실하고 겸손했다. 제한된 시간 때문에 질문도 마저 못하고 시사회장을 정리하면서 토론을 하고 싶었다고 했다.


이 영화에서 감독의 시선 즉 성과 자원봉사를 얽어 넣는 것도 충격이었지만 출연한 배우들도 적잖이 충격이었다. 전문 배우대신 일반인들도 웬만해선 알만한 사회적인 인물들을 배우로 등장시켰다는 점이다.


기존의 장애인 영화가 조승우는 문소리 같은 탁월한 배우들이 했다면 이 영화는 독립영화라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진짜 중증장애인을 섭외해서 촬영했는데 감독은 자신이 연출력이 없어서 영화에 설정된 인물과 최대한 가까운 인물들을 섭외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어디까지가 진짜고 어디가 설정된 영화냐는 질문에 대해 그는 자신은 설정 한 두 가지를 제외하면 전부 다 발로 뛰어서 했다고 말해 장애인을 위한 성 자원봉사자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장애인의 성을 전면에 내세운 발상으로 논란거리를 만든 조경덕 감독

특히  신부역을 했던 홍승기 변호사는 대한변협의 공보를 맡았던 터라 사회적인 문제점이 있을 때마다 볼 수 있었던 인물이었는데 영화에서 배우가 된 모습을 보니 조금 생소하기도 했다.


그는 영화에 대해 시비를 많이 걸었다고 했다. “제목이 너무 선정적이다. 꼭 이 장면을 넣어야 하느냐 하면서 말렸지만 감독이 지독하게 말을 안 들었다”며 “그 덕분에 영화가 완성됐다”고 했다. 법조계에서 연극배우로 인정받는 인천지법 김용희 판사가 죄수역할로 활약 했다.


조경덕 감독이 종교에 대한 자문을 얻기 위해 찾았던 홍창진 신부는 형사로 나와 거친 연기를 실제처럼 잘 해 꼭 전문배우 같았다.                     이순주 기자


제목 : 섹스블란티어

감독/각본 : 조경덕

제작/배급 : 아침해놀이

출연 : 한여름, 조경호, 홍승기, 이윤호

장르 : 드라마

시간 : 123분

개봉 : 4월 2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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