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인협회/피천득 문학의 재조명>

"수필은 청자연적이다. 수필은 난이요, 학이요, 청초하고 몸맵시 날렵한 여인이다.”
피천득 선생의 걸작 ‘수필’의 서두이다.
수필의 진면목을 알리는 빛나는 문구로 칭송된다.
“글을 쓰게 되는 것은 돈과 명예가 필요해서 입니다. 그런데 나는 그것이 필요하지 않고 무엇보다 예전 작품보다 더 잘 쓸 수 없기 때문입니다.”
종전 작품보다 진전이 없는 작품은 쓸 가치가 없다는 자신의 문학관을 분명히 했다.
피천득 문학의 지향점은 최고, 최상, 최대, 고결, 아름다움의 추구에 있었고, 이런 방향성은 수필 개척기에 수필의 위상 성격 품격 방향 경지를 설정하는데 많은 영향을 끼쳤다.
한국문인협회(회장 김년균)는 그동안 서정주 조지훈 유치환 박목월 등 시인 4명과 김동리 박화성 채만식 등 소설가 3명에 이어 8번째로 수필가 피천득 선생의 문학을 재조명하는 기회를 가졌다.
27일 오후 서울 종로구 동숭동 1-117 예총회관 2층 세미나실에서 가진 ‘피천득 문학의 재조명’이란 발제를 통해 한국문인협회 수필분과의 정목일 회장은 이같이 진단했다. 
이날 행사에는 한국문인협회에서 발간하는 ‘월간 문학’ 편집국장인 정종명 소설가 사회로 이어졌으며, 장르별 작가 100여명이 운집, 문학의 불꽃을 지폈다.
금아 피천득 선생은 초기에 시인으로 활동하다 수필로 전환한 뒤 국민적인 수필가로 사랑을 받아 왔다.
2007년 5월25일 향년 97년세로 타계하기 전 ‘수필의 금자탑’으로 한국 수필문학의 대명사로 구전된다.
정목일 회장은 ‘어떤 문학단체에 속하거나 관여하지 않으셨지만 오로지 작품으로 독자들의 사랑을 받음으로써 수필계의 최정상에 계셨던 선생’으로 금아를 평론했다.
정 회장은 다른 문학 장르의 경우엔 자주 정상이 바뀌는데 비해 수필에서만은 피천득 선생의 위치는 ‘독야청청’이었다고 술회했다.
금아 선생의 수필은 독보적이었으며 금아 수필을 뛰어넘는 수필을 찾을 수 없다고 논했다.
정 회장은 이어 ‘금아 선생과 특별한 인연을 갖고 있다’며 회상했다.
지난 94년 ‘현대문학’지로 추천받아 데뷔한 수필가 20여 명이 ‘현대문학수필작가회’를 결성하고 ‘바람이 켜는 노래’(현대문학사)란 동인지를 내면서 출판기념회를 갖게 됐을 때의 후일담을 전했다.
당시 피천득 선생댁을 찾아가 세번 절을 올리는 예로써 스승으로 모시고, 1년에 3,4차례 댁을 방문해 얘기를 나눴다고 기억했다.
그는 금아 선생댁을 방문 했을때 아파트 거실과 방 벽에 붙여진 동.서양의 문호들을 비롯한 사상가 철학가들의 사진을 눈여겨 보았다.
잡지나 신문에서 구한 흑백 사진 밑에 말린 장미 꽃송이를 테이프로 붙여 놓은 순수함도 엿보았다고.
과학자 아인슈타인, 도산 안창호의 사진도 있었고 특별히 좋아하던 여배우 잉그리드 버그만의 20,30대 사진을 구해 붙여져 있었다고 전했다.
무엇보다 금아 선생은 최고의 영성, 지성, 감성의 소유자로 업적을 남긴 분들과 마음의 대화는 물론 아베크적인 교감을 나누고 있음을 읽었다고 했다.
금아 선생은 또 학교 이외엔 그 어떤 조직에도 속하지 않는 ‘자유인’이었다고 밝혔다.
정 회장은 금아의 경우 수필가 시인 번역가의 면모를 지니고 있으며, 자신은 ‘시인’으로 불려지길 좋아하셨다고 말했다.
시보다는 수필로 대성한데다 ‘국민적 수필가’로 추앙받았던 것과는 달리, 아이러니를 연출했다.
정 회장은 사실 피천득 선생의 세계처럼 교묘한 문학 세계는 또 없다고 평했다.
표면상으로는 지극히 명료하고 간단한 것 같으면서도 실제로 그것이 어떻게 구성됐으며, 어떻게 전개됐는 지를 알아보려고 할때 일부 번거로움이 있다는 고백이다.
금아 선생의 30년대는 시를 썼으며 40년대에 ‘수필’이란 작품을 내놓으면서 이목을 집중시킨바, 수필로 전향해 20여 연간에 70여 편을 남겼다고 정리했다.
불후의 명작, ‘인연’은 피천득 선생의 마지막 명작으로 1974년 ‘수필문학’지에 발표한 것으로 알려진다.
금아 선생은 사실상 60년대 절필했기에 40년이 넘게 단 한편의 수필도 쓰지 않고도 지속적으로 한국 최고 수필가로 군림할 수 있었던 것은 독자들이 금아 수필을 사랑해 애독했기 때문으로 분석했다.
‘인연’은 만남과 이별에 대한 이미지를 완벽한 구성과 낭만적인 아름다움으로 형상화시킨 수필의 백미로 손꼽히는 작품.
금아 선생이 획득한 가장 큰 문학적 쾌거는 한국 수필의 진수와 진가를 발휘함으로써 수필발전에 공헌한 점이다.
금아의 핵심은 문장에 있으며, 남들이 흉내낼 수 없는 독창적인 문체를 구축했다.
‘시적인 문장, 서정적인 문장, 고결한 인품이 담긴 문장, 순수하고 투명한 동심의 문장, 유미주의적인 문장,’으로 망라했다.
그 외 정목일 회장은 금아 선생의 일생에 대해 “전설처럼 보석처럼 찬란한 데다 수필에는 짙은 향훈과 감동이 있다”고 찬미했다.
<한국문인협회 권병창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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