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 베일이 그대로 잠들어 있는 해발 2,744m의 백두산.

그중에도 들꽃은 신비의 천지 이상으로 등반객의 마음을 사로잡는 매력의 자연이다.

백두산 천지 서쪽 청석봉 아래 노호배 능선에 있는 노랑만병초의 군락지는 가히 경이로움을 안겨주기에 충분하다.

초여름인데도 해발 2,500m 지점인 이곳에는 잔설이 눈에 띄며 대자연의 숭고함을 더한다.

어렵사리 민족의 영산, 백두산을 다녀와도 그 자태를 기억하는 이가 많지 않다.

정상의 천지만 바라다보니 산중풍경은 도외시되기 일쑤다.

여행전문가들은 천지 연봉 능선에서 고개를 되돌려 산 아래로 펼쳐진 가공할 장관을 보라고 권한다.

숲이 바다를 이루는 풍경을 여기 말고 또 볼데가 있을까. 신비로운 천지를 능가한다.

구름 걷힌 천지를 보기도 어렵지만 숲이 바다처럼 펼쳐진 풍경을 보기는 더 어렵단다.

거산 백두의 진면목이라 할 파노라마같은 수려한 풍경. 감탄 뒤에 의문이 따른다.

그 누가 심은 것도, 누가 뿌린 것도 아닌데 백두산 정상에는 온통 희귀 야생화의 꽃 대궐이다.

모두가 산이 심고 산이 키운 자연의 친구들이다.

백두산 고산지대(해발 1,800m 이상)를 찾아가 들꽃을 보자면 ‘서파(西坡·서쪽)’가 좋다.

산문(山門)부터 해발 2,400m의 청석봉(천지 16연봉 가운데 하나) 아래까지 이어진 도로를 따라 들꽃을 볼 수 있다.

들꽃 흐드러지게 핀 들판,

그것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천지 외벽의 분화구, 그랜드캐니언을 연상케 하는 금강대협곡, 들꽃으로 뒤덮인 풀밭 금강화원과 고산화원 등….

하산 코스는 노호배(老虎背)다.

‘호랑이의 등’처럼 부드러운 경사의 구릉이다.

수목생장 한계선의 사스래나무 숲까지 이어지는 구릉. 온통 양탄자처럼 푹신푹신한 소관목으로 뒤덮이는데 여름이면 이곳 역시 들꽃 천지를 이룬다.

이 초원의 꽃밭 한가운데서 백두산 자연을 둘러보며 먹는 간식거리는 평생의 추억이 된다.

노호배 트레킹 도중 만나는 이름모를 야생화, 그중에서도 사람의 마음을 쥐고 흔드는 것은 두메양귀비 노랑만병초 두메자운 등이다.

작고 가녀린 이네들이 풍우에 시달리는 모습을 보면 가슴이 메어진다.

나무마저 크지 못해 작은 나무가 풀처럼 바닥에 몸을 붙이고 기는 곳.

그래서 여기 꽃은 더더욱 사랑받는다.

해발 1,800m 수목생장 한계선 아래로 내려오면 꽃들도 다르다.

키도 훤칠하고 빛깔도 화려하다. 박새, 날개하늘나리, 하늘매발톱, 붓꽃 등등….

자태 고운 꽃이 수천 평 풀 섶과 숲 속을 한 색깔로 채색한다. 지구가 태어날 때 모습 그대로처럼 자연의 질서가 유지되는 백두산 고산지대.

기회가 되면 그곳에서 자연의 친구가 되어 보자. 들꽃과 바람, 그리고 나비와 벌처럼.

<백두산=조성하 여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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