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품 탄생까지 25단계의 시크릿 루트/"생전에 불후의 걸작품 남길 터"

찬란한 옻칠공예를 재현해 낸 한 장인의 집념이 2000년의 한국의 美를 고스란히 되살려내 세인의 이목을 끌고 있다.

4반세기 넘게 옻칠문화에 매료돼 외길을 걸어온 화제의 장인은 다름아닌 朴萬淳 옻漆工房의 박만순<53.경기 부천시 원미구 춘의동 부천종합운동장내.사진)씨가 그 주인공.

30여년 남짓 옻칠 하나만을 몰두해 온 그는 까다롭기로 소문난 공예문화진흥원의 명품관에서도 솜씨를 찬사하리만치 옻칠의 가인으로 회자된다.

<박만순 씨와 아내 김순겸 씨가 질곡의 삶이 묻어나는 자신의 옻칠공방에서 나란히 포즈를 취했다.>

한때 북한산을 즐겨 오르내린 박만순 장인은 후배로 부터 묘령의 여성을 소개받아 지금의 아내와 늦깍이 웨딩마치를 울렸다.

국내 옻칠 공예계는 예전보다 다소 관심이 높아지며, 배우려는 문하생들이 점차 늘어나는 추이를 보이고 있다.

그렇지만 왕성한 활동을 하는 장인은 그렇게 많지 않은 현실로 안타까움을 던져주고 있다.

약관 20세 때 큰아버지 박병억(83.경기 성남시 은행동) 옹으로부터 사사받은 그는 옻칠공예의 세계에 첫 발을 내딛게 된다.

박 장인은 “기술의 바탕은 있지만 아직도 새로운 분야를 개척한다.”면서 “칠공예는 공식이 없다. 손끝으로 이뤄진다.”고 역설했다.

가장 힘들었던 점은 경제적 난관에 이르자, 홀연히 세일즈나 친구가 운영하는 전기사출, 차량 운전을 하며 잠시나마 외유를 한 때이다.

결혼이래 지속적인 난항을 겪고 있던 부부는 최근 브랜드 아이텐티티(BI)로 두각을 보이는 손혜원 대표를 만나고 나서야 정상적인 작품 활동에 매진할 수 있었다.

‘참이슬’ ‘처음처럼’ ‘종가집 김치’‘레종’ ‘힐스테이트’ ‘위니아’ 등의 고품격 브랜드를 창출한 ‘크로스포인트’의 손혜원 대표의 러브-콜을 받은후 이들은 안정 모드로 접어든 셈이다.

 <‘네이밍의 귀재’ 손혜원 크로스포인트 대표>

손 대표는 “미션으로 주어진 옻칠공예를 상업화시키면 앞으로 상당한 가능성이 열려 있다.”고 전망한다.

박 장인 역시 “진귀한 옻칠을 만날 때면 굶은 배마저 부르고 또다른 재료 구상에 빠진다.”고 말한다.

손혜원 대표가 특별히 주문한 식탁 등은 관상용으로 겸하되 실용적으로 애용돼야 한다는 전언이다.

기억에 남고 보람된 일에 박 명장은 “까다롭고 힘들었던 작품을 마감한 후 최종 포장전 감상할 때는 형언할 수 없는 희열을 느낀다”고 귀띔한다.

신사임당의 ‘초충도문갑’은 금과 옻칠, 나전재료 등이 사용돼 시중에서는 3천만원대를 호가한다.

<운학흉배문머릿장>

박 장인은 “나전칠기의 제작 과정을 한눈에 살펴볼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면서 “천연적인 순식물성 재료가 가미된 옻칠공예는 화학적 재료없이 20여 개의 공정단계를 거치는 만큼 세계적으로 흉내조차 내지 못한다.”고 강조한다.

제품의 재료는 수령이 7,8년 앞뒤로 자생하는 원주 옻나무산이 으뜸으로 4kg들이 240만원을 호가한다.

원주시는 치악산국립공원을 무대로 한지와 옻나무를 특화산업으로 권장하며, 점진적인 농가수익을 배려하고 있다.

이에 수반된 옻의 수액은 옻기름 수분이 덜하고 고무질이 강해 중국산과 달리 강원도 원주산이 상종가로 거래된다.

박 장인은 고도의 인내력이 필요한 옻칠기 공정은 ‘미쳐야 한다’며 독특한 R&D로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찾아야 한다고 토로한다.

마감의 만족도는 60,70% 가량이 마음에 들었지만, 만족의 순간도 잠시일뿐 또다시 결점이 보인다고 아쉬워 한다.

지칠줄 모르는 체력과 집중력이 요구되는 과정을 통해 그만 노화가 빠른데다 자칫 건강을 잃기 십상이라며 박 장인은 우려한다.

여타 공정보다 강도 높은 금시회(金蒔繪)때는 초정밀의 긴장감이 감돌 정도라고 밝혀 그의 진면목을 엿볼 수 있다.

음양구조의 그늘과 입체표현 기법을 통해 그려진 목단꽃의 밝고 어두운 부분을 사실화하는 어려움 또한 만만치 않다는 고백이다.

8폭의 초충도문갑은 세밀화 작업이 요구되며, 완성된 제품은 향후 2,3000년 동안 변모되지 않는 명품으로 모자람이 없다.

앞으로의 계획을 두고, 박 장인은 무형 문화재로 지정돼 최소한의 경제적 생활이 보장됐으면 하는 소망이다.

국가에서 지정한 중요 무형문화재 가운데 나전장기능보유자인 송방웅(70), 이형만-정수화 선생 등 3명을 포함한 각 지방문화재는 극소수에 이른다.

칠장에 대한 공모제가 요원한 만큼 기존의 무형문화재 등이 서로 정보를 교류하고 이끌어줄 때 동반상승에 가치실현이 가능하다고 기대한다.

여건이 허락되면 등산과 붕어낚시를 하고 싶다는 그는 젊은시절 암벽 등반을 즐긴 산악 마니아로 알려진다.

옻칠공예, 우리 고유의 전통미 되살려

박 장인은 나전을 붙인 것과 옻칠로 마감한 점이 가장 완성도 있게 구현한 평탈기법으로 자평하며 고유의 전통미를 재현하는데 성공했다.

전통의 옻칠공예는 다양한 바탕 재료와 뛰어난 전통기술을 접목하면 부가가치를 높일 수 있는 가능성마저 일깨워 귀추가 주목된다.

옻의 천연도료를 이용하는 옻칠공예는 섭씨 25~28℃, 습도 75~85%의 칠장에서 5시간 가까이 건조시키는게 노하우.

<첫 선보인 강원반 소반이 5층으로 이뤄져 빼어난 선형과 구도를 뽐내고 있다>

소정의 과정을 수십차례 반복해 완성하므로 숱한 번거로운 여정이 되풀이 된다.

하나의 나전칠기를 완성하기 위해서는 무려 25번 이상 옻칠하는 박 장인은 화학칠 도료를 사용하는 저가의 양산 공예품과 차별화시키려 도제방식 그대로 옻칠을 가미한다.

100% 옛 방식을 고수하는 환경친화적인 공법을 통해 명사들이 먼저 인정하는 독보적인 작품성을 평가받고 있다.

혹자들은 효재가 사용하는 칠기 도시락에 이어 VIP들에 부끄럽지 않은 엄선된 선물, S전자 TV프레임 제작, 소장자가 갖고 싶어하는 명품으로 손꼽는데 주저치 않는다.

그가 선보인 주요 명품은 나전칠대모모란넝쿨무늬옷상자를 비롯한 나전칠십장생무늬함,전칠권학문 3층 책장,보상화당초문홍흑예물함,포도문보석함, 초충도문갑, 나전운학쌍학문원형과반, 염주합,나비문사각과반,가을국화차호, 나전모란호접문원구절함 등 즐비하다.

그의 수상이력 또한 2007년 1월 제1회 부천한국문양공예대전에서 당시 김명곤 문화관광부 장관으로부터 영예의 대상<사진>을 거머쥐었다.

이어 제32,33회 대한민국전승공예대전에서 연거푸 장려상을 차지한데다 올해 제9회 원주시 한국옻칠공예대전에서 동상을 품에 안았다.

전통의 옻칠공예는 경남 의창군 다호리에서 출토된 유물에서 추정되듯 베일에 쌓인 2000년의 신비를 함초롬히 간직하고 있다.

옻의 수액을 이용해 기물에 칠을 더하는 옻칠공예는 견고한 막을 형성해 광택이 좋고, 부착성과 내수성, 방충성,방부성, 절연성이 뛰어남을 과학적으로 입증했다.

옻칠은 바탕재료에 따라 목심칠기, 남태칠기, 지승칠기, 금태칠기, 도태칠기, 칠피칠기 등으로 나눠 부른다.

나전칠기는 옻칠표면을 장식하는 기법에 따른 명칭으로 전복이나 진주, 소라패를 가공한 나전으로 세분된다.

줄음질과 끊음질 기법으로 문양을 오리거나 길게 썰어 칠면위에 붙이고 끼워만든 공예품으로 꾸준하게 각광받고 있다.

고려시대 때 발달하고 천년의 역사를 누려온 나전칠기는 송나라 사신 서긍이 고려도경에서 고려의 나전칠기는 그 기법이 매우 세밀해 귀하게 여길만 하다고 찬미했다.

충남 청양이 친정인 김순겸 씨는 "지루하고 답답한 그 일의 끝은 언제나 기쁨"이라며, "그저 평범한 나무가 하나의 명품으로 탄생하는 일, 입에서 감탄사가 터져 나올 때 눈은 이미 황홀경을 걷고 있다"고 술회했다.

박만순 장인은 "길이 후손에 남을 명품을 남기고 싶은게 평소의 희망"이라며 여생의 꿈을 불지폈다.

<권병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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