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수록 더워지는 한반도 농축산 생산 감소 품질 저하
국립기상연구소 보고서, 토종농작물 어류 주산지 북상

반만년의 전통농법을 지닌 한반도의 농업지도가 가파르게 바뀌고 있다.

1980년대만 해도 전남 보성에서 재배하던 녹차는 이제 강원도의 고성까지 경작지가 북상했다. 제주도 특산물인 한라봉 역시 이제는 전남 고흥이나 거제도에서도 재배, 맛을 볼 수 있게 됐다.

사과 재배지도 대구에서 강원 영월로, 복숭아 재배지는 경북 경산에서 강원도 춘천으로 바뀌었다. 이 같은 재배지 변화는 한반도로 찾아든 잇따른 기후변화 때문이다.

기상청 국립기상연구소 연구보고서의 근착자료에 따르면 탄소배출량을 줄이지 않고 현재 추세대로 유지하면 2050년께 우리나라 연평균 기온은 올해보다 섭씨 3.2도 오를 전망이다.

내륙을 제외한 전국이 고온다습한 아열대 기후가 된다는 전망이다. 앞으로 40년 동안 강수량은 16%, 해수면은 27㎝ 상승할 것으로 예측된다. 또 여름은 지금보다 19일 이상 길어져 5개월 넘게 지속되고 겨울은 1개월 가량 짧아진다.

이미 여름철에는 집중호우 빈도가 점점 잦아지고 있으며, 열대야 현상도 30일 이상 지속된 것으로 분석됐다. 이 같은 기후변화는 농수산물 재배지와 관련 산업에도 상당한 변화를 가져올 조짐이다.

2100년께 주식인 쌀 생산은 지난해 대비 15% 감소할 것으로 전망됐고 사과 재배 면적은 무려 66% 줄어들어 생산기반이 무너지는 것으로 조사됐다.

고랭지배추 등 생산도 급감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에 따라 정부는 내년부터 매년 1300억원을 농림수산업 분야 기후변화 대응 연구개발(R&D)에 투자하는 등 2020년까지 1조원을 투자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농업 분야 기후변화 종합대책을 세웠다.

생태계 기후 변화 통합감시망을 구축하고 망고 골드키위 등 아열대 작물을 보급할 계획이다. 또 농업분야 온실가스를 감축하고 벼 무 배추 등 소비가 많은 품목에 대해선 고온과 습해에 잘 견딜 수 있도록 품종을 개량한다는 방침이다.

유리온실 비닐하우스 식물공장 등 시설투자도 대폭 늘려 기후변화에도 농산물을 안정적으로 생산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기존 방식 대신 저탄소 농법을 사용해 추가비용이 발생했을 때 이를 보전해주는 ‘저탄소 직불제’도 도입해 탄소 배출을 억제하기로 했다.

농림수산식품부 관계자는 “쌀직불제 등 기존 제도에 온실가스 감축 활동을 포함한 저탄소 직불제 도입 방안을 만들겠다"고 말했다.

그는 “지구온난화는 농.어업 생산력에 심각한 저하를 불러올 수 있지만 이를 오히려 기후변화에 맞는 전략을 통해 기회로 만들어나가면 새로운 농가 소득원이 만들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용어설명> 저탄소 직불제/ 기존 방법 대신 저탄소. 친환경 농법으로 농사를 지어 추가 비용이 발생하거나 매출액이 감소했을 때, 이를 농민에게 보전해주는 제도. 일본 등 선진국은 이미 이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보성 녹차, 고성서 재배가능…대구 사과, 영월서 경작 

명태는 한국의 대표적인 수산물이다. 얼리지 않은 생태, 말려서 먹는 코다리 북어, 얼린 동태, 명태 새끼 노가리 등 이름도 다양하다.

알과 창자는 각각 명란젓, 창난젓으로 만들어 먹기 때문에 버릴 것이 하나도 없는 생선이다. 명태 조리방법이 다양한 이유는 우리나라 어장에서 명태를 손쉽게 구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만큼 값도 쌌다.

명태는 동해에서 1980년대만 해도 매년 10만t 이상 잡혔다.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지난해 명태 어획량은 1,000여t으로 급감했다. 1980년대의 1% 수준이다. 이제 더 이상 우리나라 근해에서는 명태를 잡을 수 없다.

한류성 어류인 명태가 동해안을 따라 러시아 쪽으로 북상해 버렸기 때문이다. 농림수산식품부에 의하면, 국내 연간 수요량 30만t 중 대부분을 러시아 등에서 수입하고 있다.

지구 온난화가 지속되면서 한반도 주변 수온은 최근 40년간 섭씨 1.3도 올랐기 때문이다. 전 세계 해양 수온이 100년간 0.5도 상승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예상보다 빠른 속도란 지적이다. 예년과 달리 급속도로 탈바꿈되는 기후변화에 따라 우리나라의 수산업 지도마저 바뀌고 있다.

기온 상승에 따라 서식지가 바뀐 동.식물은 비단 명태뿐만이 아니다. 농촌진흥청 기상청 등 기후변화 시나리오 보고서에 따르면 제주도 남쪽 먼바다에 살던 참다랑어가 태안반도 서쪽 해안까지 북상했다.

사과 재배지는 대구에서 강원 영월로, 복숭아 재배지는 경북 경산에서 강원 춘천으로 바뀌었다. 40년 후 내륙지방을 제외한 전국이 아열대기후로 바뀌면 일상생활과 농수산업에 미치는 파장은 상당할 것이란 관측이다.

‘아열대’란 열대와 같이 기온이 높은 여름과 비교적 온화한 겨울을 가진 기후다. 여름철에는 집중호우가 쏟아지고 폭염현상이 자주 나타난다.

기상청은 오는 2050년 열대야 발생일 수는 연간 30일에 달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한마디로 1년 열두 달 중 한 달을 찜통더위와 씨름하며 불면증을 이겨내야 한다는 조언이다.

가장 큰 타격을 받는 것은 농업이다. 쌀 사과 고랭지배추 등 생산이 감소하는 것은 물론 품질도 나빠질 것으로 보인다. 온도가 높아지면 소 돼지 등 가축도 스트레스를 받기 때문에 생산성이 떨어진다.

농촌진흥청은 다가올 2100년까지 돼지의 평균 체중은 13% 감소하고 새끼돼지 폐사율은 58%까지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한우 수태율은 절반으로 떨어진다. 당장 올해에도 기상이변에 따른 피해가 현실화하고 있다.

곶감의 경우 지난 10월 말부터 지속된 10도 이상 고온 현상으로 올해 생산량이 급감할 전망이다. 예전에 없었던 질병도 나타나 우리 농작물에 피해를 줄 것으로 우려됐다. 말라리아 뎅기열 등 아열대성 질병이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기상청 분석결과, 기온이 1도 높아지면 말라리아와 쓰쓰가무시병 질병 발생률이 각각 3%, 6% 늘어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해수면이 지속적으로 상승함에 따라 2050년께 150㎢ 지역이 범람피해를 입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여의도 면적의 18배를 웃도는 면적이다. 기후변화에 따른 농수산업 전략을 바꿔야 한다는 지적도 흘러나온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기후변화에 맞춰 망고, 골드키위, 아보카도 등 그동안 수입에만 의존해 왔던 열대과일을 재배해 고소득을 올릴 수 있을 것으로 보고 농가에 재배방법을 보급할 것"이라고 말한다.

아열대 기후에 맞춰 수박 고추 토마토 등 높은 온도에서 잘 자라는 과채류에도 집중 투자해야 한다는 견해이다. 비닐하우스 난방비 등 생산 단가도 줄일 수 있는 것 역시 기회요인이다.

아열대작물 15종 보급…고온에 적합한 농작물 개발

기후변화에 관계없이 생육환경 자동화를 통해 생산성을 3~6배 높일 수 있는 식물공장이 2014년에 도입된다.

또 2015년까지 망고, 골드키위 등 아열대 과수 5종과 울금, 아티초크 등 아열대 채소 10종에 대한 재배방법이 농가에 보급된다. 2050년 내륙을 제외한 전국이 아열대화될 것으로 예상됨에 따라 정부가 이 같은 내용의 농림수산업 분야 `기후변화 대처 플랜`을 마련했다.

폭염 한파 폭우 등 기후변화에 따른 이상기온으로 농어업의 피해가 급증하고 있기 때문이다. 농촌진흥청은 지난해 이상기온으로 인한 피해는 무려 3조4,000여 억원으로 추정된다.

농림수산식품부 관계자는 “기온이 2∼4도 상승해도 적응할 수 있는 품종을 개발하고, 시설재배를 확대하면서 작년 수준의 생산력을 유지하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우선 고온과 병충해에 강한 벼 39종, 맥류 12종, 사과 8종, 무 배추 4종, 어류 7종, 해조류 2종 등 모두 127종을 개발한다.

이를 위해 정부는 관련 분야 연구개발(R&D)에 매년 1,300억원 정도를 투자키로 했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농어업 분야의 기후변화 대응 투자 규모는 올해 283억원에 불과해 적극적인 대응에 한계가 있다"며 “기후변화 대응 연구가 사안의 중요성에 비해 시급성이 높지 않아 산발적인 투자만 이뤄졌지만 앞으로 R&D 투자와 함께 기후변화 대응 프로세스 전반에 걸쳐 체계적으로 대응할 것"이라고 말했다.

벼는 고온 조건에서도 품질이 양호하고, 홍수로 인한 저항성이 높은 품종을 개발하고 무나 배추의 경우도 고온과 습해에 견디는 품종을 개발한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돼지나 젖소들은 고온에서 스트레스로 인해 수태율이 떨어지게 되는데 이를 방지할 수 있는 기술개발도 추진할 것"이라고 말했다.

어류도 질병에 강하고 고속성장이 가능한 신품종 7종과 고온성 해조류 2종을 개발해 수산자원 확대에 나선다. 양식 생산량은 현재 135만5,000t에서 2020년까지 155만t으로 크게 늘리기로 했다.

이 밖에 농림수산식품 기후변화대응센터를 2013년에 설치해 농수산물 재배 매뉴얼을 보급할 것으로 알려졌다.
<탐사보도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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