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내년부터 세금이 느는 중산층 샐러리맨의 기준을 연간소득 3,450만원에서 5,500만원으로 올렸다.

이번 세제 개편안에 대한 불만의 핵심이 ‘세금을 안 내겠다’는 게 아니라 ‘왜 고소득 자영업자들은 놔두고 상대적으로 유리지갑인 중산층 샐리러맨만 계속 터느냐’였던 것인 만큼 정부가 중산층의 부담을 덜어주고 자영업자에 대한 탈루 대책을 함께 강구한 것은 바람직하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증세 없는 복지’라는 대명제를 허물지 않는 범위 안에서의 차선의 원포인트 수정이다.

이번 파동의 근본 원인은 증세 없는 복지, 즉 고통 없는 복지를 고집한 데 있다.
정부 계산에 따르면 노인 기초연금 지급 등 박근혜 대통령의 복지 공약 달성에 총 135조원이 든다.

과소계상 논란을 차치하더라도 연평균 27조원씩 조달해야 한다.

그런데 올해 상반기에만도 세수가 벌써 10조원 가까이 펑크났다. 정부는 향후 5년간 길게 내다보면 51조원은 세입으로, 84조원은 씀씀이를 줄여 충분히 조달이 가능하다고 장담한다.

역설적이게도 이 공약가계부의 허상은 다른 누구도 아닌 정부에 의해 드러났다.

가급적 세금이 덜 늘어난 것처럼 보여야 하는 세제 개편안 발표 때는 ‘전년 대비 순증’ 기준을, 반대로 최대한 부풀려야 하는 공약 재원 발표 때는 ‘올해 대비 누적’ 기준을 적용했음을 정부 스스로 고백한 것이다.

애초부터 모범답안이 없는 시험지를 놓고 몇 달 동안 끙끙대며 문제지를 푼 기획재정부로서는 억울할 만도 하다.

따라서 근본 원인을 놔둔 채 지금과 같은 접근 방식으로는 내년 세법 개정 때 또 비슷한 논란에 휩싸일 수 밖에 없다.

고통 분담 없이 복지를 누리는 게 어렵다는 것을 국민들도 이번에 어렴풋이나마 느낀 만큼 ‘증세 없는 복지’를 원점에서 재검토해야 한다.
증세를 하든, 아니면 복지공약을 수정하든 해야 한다.

이는 결코 쉬운 선택이 아니다.
우리나라는 9분기 만에 0%대 성장에서 탈출했다. 민간소비도 지지부진하다.

이런 여건에서 증세를 하는 건 모험이라는 우려가 적지 않다. 하지만 보편적 복지를 위해서는 감내해야 한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모두가 다 함께 세금을 더 내든(증세), 빚을 내든(적자국채 발행), 아니면 복지를 일정부분 포기하든 그 부담은 국민 몫이다.
그러니 이 선택은 몇몇 경제관료나 전문가들이 할 게 아니다.

국민이 해야 한다.
국민들에게 복지재원의 실상을 제대로 알리고 각각의 방법론에 따른 득실을 충분히 깨닫게 한 뒤 판단하게 해야 한다.

법인세 소득세 부가가치세 등 증세의 세목도 공론화 작업을 통해 어느 정도 합의를 이끌어내야 한다.
지금부터라도 논의의 장(場)을 열어가야 한다.

그러자면 ‘증세는 안 된다’는 대못부터 빼내야 한다. 그럴 수 있는 사람은 대못을 친 박 대통령 자신밖에 없다.
<이완우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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