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년전 1월15일 공군 제107 기지단장때 순직

<사진=유치곤장군 호국기념관 제공>
불후의 명작 ‘빨간 마후라’의 실제 주인공인 고(故) 유치곤 장군(1927∼1965)은 6.25전쟁의 호국영웅으로 익히 추앙받고 있다.

1927년 경북 달성에서 태어난 유 장군은 1951년 4월 공군 소위로 임관, 10월 강릉기지에서 F-51 전투기 조종사로 첫 출격을 시작으로 6.25전쟁 중 한국 공군 역사상 유일하게 203회의 출격 기록을 세웠다.

특히 1952년 1월 평양 근교 승호리 철교 폭파작전에서는 지상에서 겨우 1천500피트(450m) 초저공 비행으로 공격을 감행, UN공군이 500여 차례나 공격하고도 파괴하지 못했던 청옹성의 철교를 폭파하는 수훈을 남겼다.

세기의 '승호리 철교 폭파작전'은 1952년 1월15일.
이른 아침부터 강릉기지의 상황실은 숨막히는 긴장에 휩싸여 있었다.

유엔 공군은 1951년 후반기 부터 후방지역의 적 병참선을 차단할 목적으로 스트랭글 작전을 개시하였고,작전의 일환으로 승호리 철교폭파를 은밀히 추진했다. 

승호리 철교는 평양동쪽 16km에 위치한 대동강을 횡단하는 철교로서 평양과 덕천사이의 평덕선과 평양과 원산사이의 평원선이 가로지르는 교량이다.

인민군이 이 교량을 통해 전선으로 병력과 군수물자를 공급하고 있어 유엔군은 이를 전략적으로 중요한 표적으로 선정하기에 이르렀다. 

이런 전략적 요충지인 승호리 철교폭파를 위해 세계 최강의 미 5공군이 무려 500회나 출격했으나 적잖은 희생만 치르고도 폭파하지 못하는 실패만 거듭했다.

이런 상황에서 공군 제1전투비행단은 1952년 1월15일 제1편대 옥만호 대위, 유치곤 중위, 박재호 대위와 제2편대 윤응렬 대위, 정두량 대위, 장성태 대위로 편성된 공군 F-51무스탕 전투기 6대를 발진시켰다. 

조종사들은 생명의 위협을 무릅쓰고 4,000피트 고공에서 급강하하며 1,500피트에서 폭탄을 투하하는 초저공 공격방법으로 목표를 공격, 승리호 철교를 세 동강내어 버렸다.

 
이는 유엔공군이 500회나 출격해도 파괴하지 못한 철교를 불과 10회 출격으로 교량을 절단하는 쾌거를 이뤘다. 

승호리 철교의 폭파소식이 전해지자 '한국 공군이 설마'하고 아무도 폭파사실을 믿으려 하지 않았다는 후문이다.

더구나 미 제5공군은 처음에는 허위보고가 아니냐? 며 반문하며, 항공사진을 찍어 확인한 뒤에야 감탄사를 연호하면서 한국 공군사에 있어 신화적인 대전과로 기록됐다.

이후 평양 대폭파 작전을 비롯해 당시 유치곤 중위는 강원 고성지역의 351고지 탈환 작전, 송림제철소 폭파작전 등 한국 공군이 출격한 주요 작전에 참전해 빛나는 전공을 세웠다.
 
그는 6.25전쟁 중에 미국 공군 비행훈장을 비롯해 을지무공훈장과 충무무공훈장을 각각 3번이나 받았다.

6.25전쟁 이후에는 전후방의 각급 공군부대 전투지휘관으로서 공군 발전에 기여하다가 공군 제107기지 단장으로 재직 중이던 1965년 1월15일 그만 과로로 순직했다.

유 장군을 기리기 위해 2005년 6월에 개관한 달성군 유가면 양리의 유치곤장군 호국기념관에는 유 장군의 동상과 우주선 형태의 기념관, 추모비, 빨간마후라 노래비가 건립돼 있다.

T-37훈련기와 F-86전투기 2대가 전시돼 당시의 위용을 과시하고 있다.
기념관 내에는 영화 '빨간마후라'와 안보 관련 영상물을 상영하며, 유 장군의 유품과 6.25 전쟁 관련 사진 등의 자료를 상시전시해 호국정신을 일깨워주고 있다.
<이현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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