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무상통(有無相通) 천국 생활
수려한 벽산(碧山)의 사람들

예로부터 “어리석은 사람도 이곳에 머무르면 지혜로운 자로 바뀐다”는 말이 전해져 내려오는 지리산(智異山).
전남과 전북, 경남까지 아우르는 산세는 기운차기 그지없고, 울창한 자연림과 신비한 운무가 서로 어우러져 영락없는 영산(靈山)이다.
이 지리산 한 자락에 특별한 마을이 있다고 한다.

경남 산청군 시천면소재지에서 약 1.6km 정도 산 쪽을 향해 오르다 보면 지리산 둘레길이 시작되는 곳이 있다.
이 벽산에 위치한 ‘마근담’은, 사방으로 산으로 둘러싸여 마치 여인네의 치마폭에 포근히 안겨 있는 듯하다.
가옥과 농토, 주요 건물들이 들어서 있는 대지는 약 15만 평이고, 그 외 임야도 있다.

 
마을 초입에 들어서니 마을 주민 몇 분이 반갑게 맞이해 준다. 이곳의 상주(常住) 인원은 84명, 세대별로는 46세대로서 원주민들은 아니다.

전국 각지에서 다른 삶을 살고 있던 사람들이 귀농하여 이곳에 정착하게 된 것이 벌써 20여 년이 되었다고 한다. 생면부지의 사람들이 한데 모여 마치 한 가족처럼 마을을 이루고 살고 있는 것이, 나에게는 어쩐지 비현실감마저 들었다.

전직(前職)이 궁금해져서 물어보았더니 참 다양하다. 유조선 5만 톤급 선장, 개신교 목사와 전도사, 교사와 학원 경영자, 대기업 경리 출신, 그리고 서울 서초동에서 큰 인테리어 가게를 경영하면서 대학에서 강의를 했던 사람도 있다.

물질문명의 편리함을 좇아 고향과 농토를 쉽게 버리는 것이 현 세태인지라, 이 마을 사람들의 삶이 궁금해진다. 그리고 이들의 생각이 듣고 싶어진다.
무엇이 이들로 하여금 편리한 도시와 안락한 직장을 버리고 이곳에 오게 만들었을까?
오랜 친구나 동료와의 교제보다 더한 어떤 것이 이들을 이곳에 머무르게 하는 것일까?

마근담에만 있는 한 가지와 마근담에만 없는 3가지

이곳 마근담 마을 사람들의 생활 근간(根幹)은 자급자족이다.
생활하는 데 필수가 되는 식량과 부식은 가까운 논밭에서 스스로 일구어 생산해 낸다. 마을 사람들 모두가 채식주의자들인지라 야외의 농토와 비닐하우스는 이런 것들을 마련하기에 충분하다.

부족한 생필품들을 구입하기 위해 산을 내려오는 경우가 종종 있으나 웬만한 것들은 모두 마을 안에서 해결한다.
마을 촌장의 이런 설명을 듣고 있자니, ‘그래도 불편한 게 많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든다.
촌장은 나의 내심을 읽기라도 한 듯 마을을 한 바퀴 돌아보자며 일어선다.
따라나서는 시간이 오후 늦은 시간인지라 밖은 벌써 어두워지고 있었다. 마을 사무실 밖으로 나서자, 큰 돔 같은 형태의 건물이 단박에 눈에 들어온다.

그리고 그 옆쪽으로 환하게 불을 밝힌 곳이 있었다.
촌장은 그곳을 향해 발걸음을 옮기면서 다음과 같은 얘기를 한다.
“세상에는 많지만 저희 마을에만 없는 세 가지가 있고, 또 반대로 세상에는 없는 한 가지가 여기만 있습니다.”
무슨 퀴즈 같기도 한, 이 말이 얼른 이해가 되지 않아 나는 잠잠히 듣고 있었다.
“없는 세 가지는, 첫째는 돈이 없고, 두 번째는 남이 없고, 마지막으로 죄가 없습니다. 또 여기만 있다고 말씀드린 그 한 가지는 유무상통(有無相通)입니다.”

역시 이해가 쉽지 않다는 표정이 역력한 나를 이끌고 촌장은 건물 앞에 섰다. 어둠 가운데서도 건물 앞쪽에 붙어 있는 간판의 글씨가 역력히 눈에 들어오는 것은 실내의 밝은 조명이 밖까지 환하게 밝히고 있기 때문이었다. ‘마근담 행복마트’라고 굵고 진한 글씨로 간판이 걸려 있었고, 겉보기엔 24시간 편의점처럼 보였다.

 
안으로 들어서자, 촌장은 나에게 일반 슈퍼에서 실제로 물건을 구입하는 것처럼 해보라고 한다. 나는 그의 말대로 진열대를 둘러보면서 물건을 골라 바구니에 담았다. 쌀에서부터 부식, 치약과 칫솔 등의 생필품이 다양하게 갖추어져 있어서 불편함은 없었다. 구입을 마치고 값을 치르려고 계산대 앞에 섰다. 그런데 계산대 안쪽에 돈을 받는 사람이 안 보였다. 그리고 카드를 긁는 기계와 현금 수납고가 눈에 띄지 않는다.
돈을 들고 서서 촌장을 바라보았더니 촌장은 빙긋이 웃으며 “물건값은 지불하지 않아도 됩니다. 대신 이 노트에 물품 내역만 기입해 놓으세요.”라며 계산대 한쪽에 비치되어 있는 노트 한 권을 꺼내 보인다.
그런데 비슷한 노트가 한두 권이 아니고 족히 30권은 넘어 보인다. 노트 옆면에는 이름들이 쓰여 있는 게 노트의 주인이 각각 있는 것 같았다.

노트에 기입하고 있는 나를 보면서 촌장은 입을 뗀다.
“이곳은 물품을 구입해 가면서 값을 지불하지 않습니다. 물품 내역을 기입하는 것은 자신의 생활을 규모 있게 하기 위해 가계부를 적는 의미입니다.”
“그럼 이곳의 물건들은 무슨 돈으로 사다 놓으시나요?”라고 나는 의아해졌다.

유무상통의 비법(秘法)
“우리 마을은 유기농 농사와 음식, 인성(人性) 교육의 현장 체험마을인 에코빌리지(Eco Village)로 선정되어 있습니다.
이곳에서 우리가 무농약으로 재배한 100% 유기농 음식을 맛보고, 또 우리의 친환경적 삶을 체험해 보고자 하는 방문자들이 꽤 찾아옵니다.

우리는 그분들에게 유기농 식생활 체험 연수와 자연 속에서 하늘을 섬기며 사람을 사랑하는 우리의 삶을 있는 그대로 보여 드리고 있습니다. 거기에서 얻어지는 수익금 전액이 마트의 물건값으로 충당됩니다.
그리고 이곳 46세대는 각자의 수입원이 있지요. 유기농산물을 출하하는 사람, 요양사 일, 수공예품을 만들어 내다 파는 일 등 다양한 일에 종사하고 있습니다.

각 가정에서는 수입이 있으면 자신의 생활비로 먼저 쓰고, 여분의 돈을 마을 마트에 내 놓습니다. 각 세대의 가정 형편이 다 다르니 10원도 못 낼 수도 있고, 또 경우에 따라선 상당한 돈을 내놓기도 합니다.
이곳을 보시면 금고가 있지요. 열쇠는 채워져 있지 않습니다. 24시간 개방되어 있지요. 이 금고의 현금은 누구든지 자유롭게 갖다 넣기도 하고 또 가져가기도 합니다.

이곳에 웬만한 생활필수품은 준비되어 있지만, 개인의 취향이 다르니 이곳에 없는 물건을 마을 밖에 나가 개인적으로 구입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경조사, 여행 등 각자의 필요 경비가 다르니 그때 쓸 수 있도록 현금을 항상 보관해 두는 금고입니다.”

설명을 듣고 있는 나는 상기되어 왔다. 왜냐면 이 마을에서는 돈이 없어도 살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이다.
촌장의 설명의 주지(主旨)는 이곳 주민 중에서 생활비의 여유가 있는 사람은 그 여유분을 마을금고에 내놓고, 생활비가 부족한 마을 주민은 마을금고에서 돈을 마음대로 가져다 자신의 돈처럼 쓸 수 있다는 뜻이다.
 
어디 현금뿐이랴. 마트에 비치되어 있는 물품 또한 돈 없이 언제든지 마음대로 가져다 쓸 수 있다는 말이다.
이러니 설령 자신의 주머니에 돈이 씨가 마른다 하여도 최소한 굶어 죽을 일은 없을 터.
‘야, 거 좋네!’ 하다가 나는 슬그머니 걱정이 머리를 쳐든다.

‘혹시 물건이 다 도둑맞거나 금고의 현금이 하룻밤 사이에 없어지지는 않을까?’
나는 그 걱정에 견딜 수 없어 촌장에게 슬그머니 물었다. 그러자 촌장은 만면에 웃음을 흘리며 손을 내저으며 “그런 일은 없습니다. 우리는 같은 목적을 가지고 한 배를 탄 공동체입니다. 비록 84명이라는 몸의 각 개체는 있으나, 생각과 꿈과 소원이 하나라는 점에서 우리는 한 몸입니다.”

결코 높지 않은 톤으로 말하는 촌장의 목소리에는 힘이 들어가 있었다.
“우리는 이 금고를 ‘유무상통 함’이라고 부릅니다. 있는 쪽에서 없는 쪽으로 흘러가서 자연스레 평탄해집니다. 비단 현금이나 물품에 국한되지 않습니다.
 
건강한 사람은 몸이 약한 사람을 대신해 일을 해줍니다. 기술이 있는 사람은 그 기술로 마을 주민을 위해 무료로 봉사합니다.

예를 들어 미용이나 이발, 자동차 수리, 옷 수선 등 무엇이든 돈 없이 해결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하니 마을 안에서 돈을 사용할 일이 거의 없어지는 것입니다.”

촌장의 얘기를 듣고 보니, 이 마근담 마을에서는 왜 돈이 없는지를 알게 되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돈이 있기는 있으나 쓸 용무가 없기에 필요치 않은 곳이라는 뜻이다.

이 세상에 벌어지고 있는 모든 사건과 사고 중에 ‘돈’과 무관한 것이 어디 있을까? 순간 나는 왠지 모르게 긴장감이 풀어져 그동안 줄기차게 메고 다녔던 어깨의 가방을 슬며시 내려놓고 싶어졌다. 지금껏 내가 힘겹게 버텨왔던 무겁고도 무거운 삶 전체를 내려놓고 싶어진 것이다.

 
「남」이 없는 마을

이 유무상통의 비법 속에 하나의 큰 구심점이 있다고 촌장은 말한다. 그것은 마을 전 주민의 일치된 생각으로서, 지구 땅의 모든 인류는 하나님 안에서 진짜 ‘가족’이라는 것이다. 이곳 사람들은 하나님을 믿는 그리스도인들이다.

비록 몸은 다른 유전자를 갖고 태어나기는 했으나, 전 인류를 당신의 친자녀로 사랑하시는 하나님 앞에서 모든 사람은 하나의 가족이라는 얘기다.
설령 다른 종파의 사람이 찾아온다 해도 이곳 사람들은 진심으로 환영한다.

왜? 종파와 계급과 지위, 나라와 국경이 하나님 안에서 친형제인 사실마저 바꿀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마을에는 남이 없다. 주민 한 사람, 한 사람이 모두 친형제이다.
촌장은 나의 얼굴을 보며 진지하게 말한다.

“한 가정에서 친형제끼리 집 안의 물건을 사고파는 일이 없지요? 자연스럽게 나눠 쓰잖아요. 똑같습니다. 또 가난한 아우에게 부자 형이 돈을 나눠주는 건 당연한 일이지요. 그래서…”
나에게는 유무상통이라는 것이 자본 경제주의 사회에서는 결코 용이치 않은 제도처럼 느껴졌다. 아니 용이치 않다기보다는 불가능하다. 그러나 그 사회 전체 구성원이 한 가족이라면 가능할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래서 촌장의 말끝을 자르면서 나도 모르게 이렇게 말했다.

“아… 서로가 가족이기 때문에 결코 실행하기 어려운 제도는 아니군요.”
촌장은 빙그레 웃으며 말을 덧붙인다.

“유무상통은 어떤 제도(制度)가 아닙니다. 이 마을에 규칙으로 정해놓고 이렇게 저렇게 하자는 것이 아니지요. 사랑입니다. 가족을 사랑하는 마음이 유무상통이라는 방법으로 표현되는 것뿐입니다.”
촌장은 나에게 가족이 있느냐고 물어서 남편과 그 외 가족이 있다고 답했다.

촌장은 고개를 끄덕이며 댁의 남편은 밖에 나가 열심히 일해 받은 대가를 가족에게 남김없이 가져다주지 않느냐고, 그렇게 하는 것이 당신 가정의 제도나 규칙 때문이 아니고 가족을 사랑하는 남편의 마음이 그렇게 만드는 것이 아니냐고 되레 묻는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 마을에서 하는 유무상통이라는 것은 가족을 사랑하는 마음이었다는 것을 조금씩 이해하기 시작했다.

「죄」가 없는 마을
이곳에서만 없는 세 가지 중, 남은 한 가지를 마저 물었다. 과연 어떻게 죄가 없을 수 있단 말인가? 촌장은 거침없이 대답하기를 이곳은 죄가 없다고 한다.

이것 역시 가족이라는 큰 구심점이 작용하여, 그것을 가능케 하고 있다는 것이다. 진심으로 사랑하고 우애하는 가정에서는,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며 자식은 부모를 공경한다. 힘으로 아우의 것을 빼앗는 형은 있을 수 없고, 형의 부인을 넘보는 아우는 없다.

마근담 마을의 모두는 서로 소중한 가족이기에 세상에서 빈번히 일어나는 사건이라는 것이 없다. 도둑, 상해, 강간, 사기, 살인이라는 것은 단어조차 듣지 못한다.
각 집마다 대문은 없으며 현관에 열쇠조차 걸려 있지 않다. 예쁜 새댁을 홀로 남겨두고 남편이 며칠씩 출타해 있어도, 추행당하기는커녕 외로울까 봐, 친구들로 북적인다.

뛰어놀다 있을 법한 아이들의 싸우는 소리 한 번 마을 공터에서 들려오지 않는다. 집 밖으로, 그리고 놀이터에서는 웃음소리만 넘쳐난다.

마근담의 유흥

설명을 마친 촌장이 나를 건물 안으로 안내했다.
이곳 사람들이 즐기는 오락을 보여 주겠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술집도, 영화관도, 오락실도 없는 이곳 사람들은 무엇을 하며 긴 지리산의 겨울을 보낼까 궁금해진다.

마근담 사랑방(인터넷 카페)

겨울 산골의 사랑방 하면, 굴뚝에서 연기가 모락거리고 방 안 가득 메운 동네 사람들이 벌이는 화투판을 떠올리기가 쉽다.
그런데 이곳 마근담의 사랑방은 IT 강국이라는 이름에 합당한 국민답게 인터넷 카페였다. 마을 공식 카페가 개설된 지 2년 남짓이라고 한다.

그런데 매일 열성 손님으로 어찌나 북적대는지, “이렇게 재미있고 잘되는 장사는 처음 본다.”며 카페 주인장은 즐거운 비명을 지른다.
그래서 마근담의 사랑방 소식을 들어보기로 했다.
“주로 어떤 분들이 사랑방에 찾아오시나요?”
“마을 식구 전원입니다. 물론 외부의 다른 분도 들어오시고요.”

“마을 식구 전원이라면…”
“7세 어린아이부터 84세 할아버님까지예요.”
“정말 마을 사랑방이네요. 어떤 목적으로 카페를 운영하고 계세요?”
“이곳에는 연로하신 분과 몸이 불편하신 분도 계세요. 젊고 건강한 식구들은 매일 함께 모여 운동도 하고, 일주일에 한 번 천왕봉에도 오르면서 즐겁게 지내시는데 이런 분들은 마음만 있지 그럴 수 없는 상황이지요. 그래서 ‘이런 분들이 소외감을 느끼지 않고 함께할 수 있는 것이 어떤 것일까?’ 생각했더니 인터넷 카페였어요.”

“반응은요?”
“폭발적이죠, 뭐! 이곳 분들은 모두 작가들이에요. 어쩌면 그렇게 고운 글귀들을 토해 내는지요. 일상에서 일어나는 단순한 것들을 글로 표현하는 재주들이 보통이 아닙니다.”
“나중에 책으로라도 엮어야겠네요?”

“네, 기회만 된다면요. 그리고 이 사랑방의 진짜 월척은 따로 있습니다.”
“뭔가요?”
카페지기는 인터넷을 열어 마을 카페를 보여준다.
그곳에 이런 제목의 글이 올라와 있었다.

“범인을 찾습니다. 자수하세요.~ 그리고 목격자 제보를 기다립니다.”
‘죄가 없는 마을에 무슨 범인일까?’ 싶어 읽어 내려갔다.
내용인즉, 겨울 화목으로 쓰려고 산에서 나무를 해온 어느 분이 집 앞에 나뭇단을 쌓아 두고 출타해서 돌아와 보니 나뭇단이 거짓말처럼 사라졌다는 것이다.

그런데 자세히 살펴보니 누군가가 나무를 땔감으로 잘 잘라서, 화목 보일러실에 얌전히 쌓아 두고는 줄행랑을 쳤단다.
이 고마운 분을 찾아 감사 표시라도 하려고 했으나, 좀처럼 알 수 없기에 이런 글을 마을 카페에 올린 것이다.

이 글이 올라오고 나서 현장 목격자의 제보가 있었다. 마침 그 현장을 지나치던 마을의 한 주민이 사진까지 찍어 두었다가 제보를 한 것이다. 그 아름다운 범인은 체포되었고, 화목 주인으로부터 눈물 어린 감사의 포옹을 받았다는 내용이었다.

“끈끈한 정이 있는 사랑방이네요…”
“네, 이런 사례가 빈번해요. 우리 집에 누군가가 들어와 몰래 돈 봉투를 놓고 갔으니 그 사람을 찾아 달라고 하기도 하고, 화롯불에 막 구워낸 군고구마를 현관 안에 놓고 노크만 하고 가 버린 사람이 누구냐며 수소문하는 글들이 수두룩해요.”

남의 집 땔감을 가만히 준비해 주고 가는 사람, 어려운 사람에게 현금 봉투를 놓고 가는 사람, 군고구마를 들고 와서 문을 두드리고 숨바꼭질하는 사람들…

난 갑자기 몸이 따뜻해져 와서 외투를 벗고 싶어졌다. 좀처럼 듣기 어려운 미담에 마음이 데워진 탓일까?
사랑방 주인은 말을 잇는다.
“카페에 들어오면 마을의 모든 모습이 낱낱이 한눈에 들어오거든요. 이곳의 모든 주민은 누구 한 사람 제외되거나 외로울 이유가 없습니다. 자연히 연합과 결속이 되더라구요.”

“계속 열심히 하세요.~”
“그래야죠. 이곳 마근담 가족들의 행복을 위해서요.”
우수 카페지기, 파워 블로거가 되었다고 해서 따로 보수를 받지는 않는다고 한다. 다만 마을 식구들이 행복할 수 있다면 기쁨으로 하겠다며, 자신의 하루 일과를 다 마친 늦은 밤이라도 모니터 앞에 앉아 있는 모습이 참 보기 좋다. 자신이 아닌 남의 행복을 지켜내는 기쁨을 그녀는 이미 알고 있는 것 같았다.

마을 뷔페의 날(마을 식당에서)
이곳은 매달 한두 번은 마을 식당에서 온 마을 식구가 자리를 같이한다. 각 가정에서 음식 몇 가지씩을 준비해 와서 뷔페식으로 늘어놓고 함께 먹는 것이다.
오늘은 이날을 위해 똑순이 X씨가 그동안 몰래 갈고 닦아 놓았던 새로운 음식을 선보였다. 지금껏 보지 못했던 새로운 음식을 맛보는 마을 식구들의 입이 함박만해진다.

‘X는 어쩜 그렇게 요리를 잘하느냐며, 마음이 예쁜데 손맛은 더 예쁘다’며 칭찬이 자자하다.
X씨는 ‘왜들 그러시냐, 놀리지 말라’며 얼굴을 붉히면서도, 뿌듯한 표정이다.
자신이 정성 들여 만들어 낸 음식이 워낙 호평인지라 만드는 수고도 잊어버리고 함께 기뻐한다.

그중에는 연세가 많아 보이는 할머니를 유난히 챙기는 한 청년이 보였다. 자신의 옆에 앉아 식사를 할머니가 손놀림이 불편하신지 음식을 자꾸 흘리고 있었다. 청년은 그때마다 흘린 것을 치우고, 할머니의 입 언저리에 묻은 음식까지 닦아 드린다.
영락없이 친손자이려니 싶어 다가가 물어보았다.

“외할머니세요? 아니면 친할머니?”
“아, 양쪽 다 아니지만 이곳에서 제 친할머니가 되셨어요. 원래 가족이 없이 홀로 사시는 분인데다 약간 치매기가 있어요. 그래서 제가 이분의 친손자가 되어 드리기로 했어요.”

“할머니가 든든하시겠네요?”
“그럼요. 오래 사시면 좋겠어요. 그리고 돌아가실 때까지 저희 가족이 돌봐 드릴 거예요.”
“복 받겠네요….”
“복 받으려고 하는 건 아니고요. 늙고 병든 분을 돕는 건 당연한 것 아니겠어요? 저도 늙어서 이 할머니처럼 될 날이 곧 오잖아요.”

맞는 말이다. 인생은 쏜 화살처럼 빨리 지나가서 눈 깜짝할 사이에 백발이 되는 것이다. 나이도 많지 않은 청년의 깨달음이 왠지 오늘따라 깊은 감동으로 밀려온다.

효도잔치(마을 회관에서)

오늘은 효도잔치가 벌어지는 날이다.
마근담의 할아버지, 할머니 몇 분은 이날을 손꼽아 기다려 오셨단다. 왜냐하면 맛난 음식을 실컷 먹을 수 있어서이기도 하지만, 이 마을 식구들의 모든 장기(長技)가 총동원되기 때문이다.
귀요미 아이들의 춤과 노래,

성대모사가 능청스러운 A총각,
“앗 뜨거, 뜨거” 하며 구성진 유행가 가락에 제스처가 간지러운 B씨,
80이 가까운 국민 할배의 한판 승부의 노래.

효도잔치는 장기대회로 급 탈바꿈한다.
곁들여서 몸짱 대회라고 해서, 매일 등산으로 몸을 단련한 남녀노유가 무대 앞으로 나와 멋진 몸을 선보인다.

여기서 몸짱으로 뽑힌 당선자는 그 포상으로 이 잔치의 주인공이신 할머니나 할아버지를 업고 한 바퀴 도는 것으로 잔치는 끝을 맺는다.
이것이 마근담에서 자주 볼 수 있는 효도잔치이다.

십계 윷놀이(마을 회관에서)
한 달에 한두 번의 전체 모임은 식사만으로 끝나지 않는다. 식사가 끝나면 반드시 윷놀이 판이 벌어진다. 그런데 이곳 마근담의 윷놀이는 보통 윷놀이와 다른 것이 있다 한다.

그래서 윷놀이 판을 주시하며 나는 그 다른 점을 스스로 찾아내 보려 했는데, 의외로 간단하게 알 수 있었다. 보통의 윷놀이는 앞서가는 말을 잡아 쫓아내고, 내 말이 먼저 달려가서 이기는 형태이다.
그런데 마근담의 윷놀이는 앞서가는 사람의 말을 잡으면 오히려 잡는 쪽이 윷놀이 판에서 쫓겨난다. 그리고 맨 꼴찌 말이 진출도 못 하고 있을 경우에는 진출해 있는 본인의 말에 그냥 덤으로 미진출한 것까지 얹어서 보내준다.

한마디로 강자(强者)는 저지시키고, 약자(弱者)에게는 힘을 실어주는 셈이다. 약육강식의 원리에 익숙해 있는 현대인의 생리(生理)로는 성이 안 차는 게임이다. 그러나 마근담 사람들은 이런 윷놀이를 하며 무척 즐거운 표정이다.

세상에 이런 게임이 많아진다면, 그리고 이런 게임을 즐길 수 있는 사람들이 많아진다면, 세상은 지금보다는 훨씬 더 예쁜 그림이 나오지 않을까 싶다.

여름밤에는 저녁 식사가 끝난 식구들이 하나둘 마을 정자로 모여든다고 한다.
날이 맑은 밤은 깜깜한 하늘에서 달님이 얼굴을 내밀고 환하게 웃고 있어서 손을 뻗치면 곧 닿을 것 같다고 한다. 지리산의 청명한 공기가 달빛을 더 선명하게 하는 탓일까?

정자에 모인 식구들은 오늘 하루 있었던 일들로 웃음꽃을 피운다.
때론 일곱 살 난 꼬마가 어른들 앞에서 유행가를 그럴 듯하게 뽑기도 한다. 어떤 날은 악기를 가지고 나온 젊은이가 모인 가족들의 귀를 즐겁게 하기도 하고, 서툰 기타 반주에 맞추어 모두 함께 노래를 부른다.
박자도 안 맞고 가사도 틀리기 일쑤이지만 별로 괘념할 것이 못 된다. 달빛에 취해 함께 노래 부르는 이 시간이 그 어느 때보다 행복하다.

비록 가진 것이 없고, 내세울 것이 없는 이들의 삶이지만 이들은 서로를 위할 줄 안다. 옆 사람을 돌아볼 마음의 여유가 있고, 상대의 부족함을 채워 주기를 기쁨으로 여긴다. 이들 간에는 빈부귀천이 없고, 지위고하가 없다.

있으면 있는 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 나누어 쓰면서 무사한 매일을 감사한다. 비록 삶이 힘든 날도 있으나, 나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내 옆에 있어 주는 것만으로도 오늘을 살아내기에 충분하다. 그래서 마근담 사람들의 마음은 오늘도 천국이다.

마근담의 농사

자신을 이곳의 ‘농제(農弟: 농사를 책임지는 사람)’라고 소개하는 분이 우리를 비닐하우스로 안내했다. 자신은 이곳에서 농사를 담당하는데, ‘아우가 되어 형을 섬기듯 이곳 식구들에게 봉사하리라’는 결심으로 이렇게 호칭을 붙였다고 한다.
약 5백 평쯤 되는 비닐하우스에 겨울 시금치가 씩씩하게 잘 자라 있었다.

“이곳은 개인 텃밭이 있어 원하는 사람은 자신이 직접 텃밭을 가꿉니다. 그런데 병약하고 나이 드신 분들, 그리고 마을 밖에서 주로 일을 보시는 분들은 직접 농사를 짓기가 어려우므로 이렇게 비닐하우스나 공동 텃밭을 저와 몇몇 봉사자들이 함께 가꾸고 있습니다.

여기서 나오는 작물들은 물론 무료로 공급해 드리지요. 그리고 남는 것은 외부에 내다 팔기도 하고요.”
“유기농 체험 마을이니 철저하게 하시겠네요?”
“그럼요. 우리 마을 식구들의 건강을 위한 것이니 당연한 것이고, 내다 파는 것도 똑같이 철저하게 합니다.”

일반 슈퍼나 시장에서 건강한 먹거리를 찾기가 어려운 상황에서 몹시 부러운 생각이 든다.
“저에게도 좀 보내줄 수 있나요?”
“원하시면 택배로 배달해 드립니다. 그런데 저희 농산물을 찾는 분들에게 고집하는 것이 있습니다.”
난 약간 뜨악해져서 다음 말을 기다렸다.

“우리 유기농산물은 정말 특별합니다. 땀과 수고로 얼룩진 정성의 결정체이지요. 농약을 일체 사용하지 않으므로 병충해와 싸울 때마다 우리는 밤잠을 자지 않고 벌레를 한 마리씩 손으로 잡아 줍니다. 화학 비료, 성장 촉진제 등은 물론 쓰지 않습니다.
 
힘들지만 자연 퇴비를 만들어 잘 발효시켜 거름으로 줍니다. 자기 자식을 키운들 이리 정성을 들일까 싶습니다.”
그렇게 말하며 머리카락을 쓸어 올리는 농제의 이마에 깊은 골이 파여 있다. 아직은 젊은 나이인 것 같은데, 아무래도 유기농사의 무거운 책임감 때문인 것 같다.

“그래서 우리 농산물을 원하시는 분들에게 꼭 드리고 싶은 말은, 이 유기농산물의 가치를 좀 알아 달라는 것입니다. 정말 돈으로도 살 수 없는 귀중한 것이란 사실을요.”
나는 ‘나에게도 좀 보내 달라’는 말을 너무 쉽게 한 것 같아 후회되었다. 그러나 농제는 나에게 줄 시금치를 캐어 비닐봉지에 주섬주섬 담고 있었다.

마근담의 의사들

이곳 마을 사람들은 건강해 보였다. 얼굴은 상기되어 있어, 어떤 좋은 일을 기대하고 있는 듯이 보였다.
그러나 사람은 늘 건강하란 법은 없다. ‘이곳 사람들은 의료 혜택을 충분히 받고 있을까?’라는 걱정이 들었다.
마을의 한 분에게 물었다.
“몸이 아프면 어떻게 하세요? 이런 곳에서는 병원 가기가 쉽지 않죠?”

“꼭 가야 할 병이라면 물론 갑니다. 특히 외과적 처치가 필요할 때는요. 허지만 그런 일은 드물고, 이곳 사람들은 모두 건강합니다.”
“비결이라도 있나요?”
“우리 마을에는 자연 의사들이 많이 있습니다. 좋은 물과 오염되지 않은 공기, 햇빛, 사우나, 산책과 등산 그리고 깨끗한 음식 등입니다.
이것들이 다 이곳의 의사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감기조차 잘 안 걸리는데요.”
“부럽네요….”

“그러나 가장 강력한 의사는 따로 있습니다. 욕심과 이기심을 갖지 않는 것입니다. 이만큼 훌륭한 의사는 없습니다.”
나는 왠지 그럴 것 같아서 고개를 끄덕였다.

“모든 병은 마음에서부터 시작합니다. 마음에서 모든 욕심과 이기심을 내려놓아 버리면 세상 참 편하고 행복합니다. 행복한데 병이 찾아올 리가 없죠.”

마근담 사람들은 행복을 보이는 물질에서 찾고 있지 않았다. 많이 가지려 하지도 않고, 자기 몸만을 이롭게 하고자 궁리하지도 않는 것 같았다. 그럼으로 얻어진 마음의 평안이 이 사람들을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 건강한 사람으로 만드는 것 같았다.

마근담을 찾는 사람들
이곳 마근담은 지리산 둘레길 조합에서 지정한 에코빌리지이다. 사람이 몸과 마음, 모두 건전하고 행복하게 살기에 적당한 마을이라는 뜻이다.
조합의 지원도 있고 해서 마근담은 벽돌담, 마을 목욕탕, 유기농 요리 교실 등을 보수하고 새 단장을 마쳤다. 입소문을 타고 마근담이 알려지기 시작하면서 이곳을 방문하는 사람들의 발길이 부쩍 많아졌기 때문이다.

이곳에서는 열 가정 정도를 수용하고 자연과 유기농 요리를 체험할 수 있는 코스가 준비되어 있다. 또한 자녀를 동반하는 가정에는, 우리 한국의 미덕 중에서도 가장 으뜸인 효경 사상(부모 효도)을 골자로 하는 인성교육도 빼놓지 않는다.

이곳 사람들은 이렇게 믿고 있다.
“부모는 보이는 하나님이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찾기 전에 먼저 눈에 보이는 하나님인 부모를 잘 섬겨라. 그러면 그 사람은 설령 하나님을 몰라도 하늘이 축복할 것이다.”

신앙에서 어떤 점이 인륜과 상충하여 반목을 사기도 하는데, 이곳 마을 사람들의 신앙심이 특별해 보였다. 그리고 인류는 모두 하나님의 친자녀들이기에 진짜 한 가족으로 살아가는 이들의 생활 그 자체가 곧 이들의 종교인 것 같았다.

마근담 마을 사람들의 꿈

누구에게나 꿈은 있다. 곧 쓰러질 것 같은 움막집에 사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꿈을 안고 산다.
그 꿈의 종착역은, 행복이 아닐까 싶다. 누구든지 행복해지기 위해서 오늘을 견뎌내며 뛰고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곳, 마근담 사람들은 이미 그 종착역에 도달해 있는 것일까? 내가 보기에는 이곳의 사람들은 충분히 행복해 보였다.

그들이 행복한 것은 모든 것을 다 가져서가 아니라 보통 사람들이 갖는 행복의 조건과 다르기 때문이었다. 지금이라도 불행하다고 느끼는 사람들이, 이 마근담 사람들이 생각하는 행복의 조건과 같은 것을 찾는다면 그들 또한 행복해질 것이다.

나는 이곳 사람들에게 마지막으로 묻고 싶어졌다.
“정말 행복하세요?”
“물론입니다.”
“다른 바람은 없습니까?”
“있습니다.”
의외의 답에 나는 귀를 쫑긋했다.
“우리는 우리가 느끼는 이 행복을 더 많은 사람들이 갖게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 또한 이 산에 올라오기 전에는 세상에서 가장 불행했던 사람들이었고, 행복을 찾으려고 무던히 애를 썼습니다.”
말을 잠깐 쉬더니 이어간다.

“그러나 진정한 행복은, 남을 행복하게 해주는 데서 오는 만족과 보람이었습니다. 이 행복감을 세상의 많은 사람들이 공유하기를 바랍니다.”

취재를 마치고 산을 내려오던 나는 마을 입구에서 잠깐 어지럼증이 일어났다. 마근담과 산 아랫마을, 불과 2km도 안 되는 거리 차이가 유난히도 심하게 느껴지는 데서 오는 괴리감 때문이었을까?

그렇다. 마음의 천국과 지옥은 한 뼘 차이조차 없을지도 모르겠다. 그러기에 인간사에서는 행(幸)과 불행이 늘 교차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1월의 날씨가 보기 드물게 화창하다. 지리산의 천왕봉(天王峯)쯤으로 보이는 곳의 하늘이 무지 푸르다. 한데 어느 틈에 눈발이 희끗희끗 휘날리기 시작한다. 푸른 하늘에 흰 눈이라, 이 또한 절묘한 조화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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