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들이 음악을 한다. 것도 지독한 연습으로 이루어지는 음악이다. 이들 노인들의 평균 나이는  81세. 클래식을 좋아하지만 팝과 펑키음악 까지 이들이 소화하지 못하는 음악은 없다.

몇 달간 연습을 해도 가사 두 줄을 못 외우고 아파서 산소 호흡기를 달고 연습에도 자주 빠지지만 음악에 대한 열정만큼은 세상의 그 어느 음악가 못지않다.

화면은 80년대의 엉성함을 닮고 노인들의 빛바랜 삶처럼 갈색 가을빛이다. 인터뷰 형식으로 이루어지는 화면구성은 좀 어설퍼 보이지만 보기엔 편안하다. 흔들린 사진처럼 흐릿하게 지나가는 인물묘사는 디지털 시대가 아닌 아날로그 시대를 산사람들을 대변하는 듯하다.

이들 영엣 하트 팀이 부르는 노래는 밝고 아름다운 것만 있는 것이 아니다. 나이가 나이인지라 새 노래를 배울 때마다 끝없는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진도도 안 나가는 답답함을 보이지만 절대로 포기하지 않는 끈질김을 가지고 있다.

그냥 신나는 펑키 스타일은 스타일대로 소화하기 어렵고, 무난한 음악은 음악대로 음정 박자 엉터리여도 흐린 눈을 비비며 가사를 외우고 거친 악기 소리에 티슈로 귀를 막으며 연습을 게을리 하지 않는 노년의 음악가들이지만 이들 노인음악 팀 영앳 하트는 유럽공연도 거뜬하게 해내며 음악으로 삶을 이어간다.

공연을 앞두고 항암치료를 받다 죽은 동료가 있는가 하면 교도소 위문 공연 가서는 죄수들의 눈물을 홀딱 빼놓는 사람들, 진심으로 영혼으로 노래를 느끼는 사람들. 이럴 때마다 초점을 맞추느라 카메라는 흔들린다.

척추가 아파 제대로 일어서지 못해도 절대로 음악만은 포기하지 못하고 하루 전까지 음악을 연습하다 죽는 사람들이 이들이다. 음악을 영혼삼아 마지막 삶을 불태우는 할머니 할아버지 악단. 영화 자체가 하나의 다큐멘터리를 보는 듯 사실성과 진실성이 묻어난다.

영화를 보는 내내 나이 들어 내가 저런 열정과 감각을 가질 수 있을까. 자신이 없다.

<이순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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