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원 101주년 맞은 국립소록도병원

<사진=국립소록도병원 전경>

보리피리

보리피리 불며
봄 언덕
고향 그리워
피-ㄹ 닐니리.

보리피리 불며
꽃 청산
어린 때 그리워
피-ㄹ 닐리리.

보리피리 불며
인환(人還)의 거리
인간사 그리워
피-ㄹ 닐리리.

보리피리 불며
방랑의 기산하(幾山河)
눈물의 언덕을 지나
피-ㄹ 닐니리.…<한하운(韓何雲1919~1975)>

1955년 간행된 한하운의 시집 ‘보리피리’ 표제시는 질곡속에 핀 방초인양, 방황의 늪에서 피어오른 정한과 향수를 그리워 한다.

한하운은 ‘보리피리’를 통해 되돌아 갈 수 없던 어린 시절에 대한 그리움과 초라한 삶의 인고를 들어 자유시로 승화했다.

불후의 명작은 1953년 서울신문사 사회부장으로 필봉을 휘두른 고 오소백기자에게 편집국 안에서 즉석으로 써 준 한하운의 즉흥시로 구전된다.

<병든 한센인을 강제로 몰아넣어 수용한 감금실>

오랜 세월 우리들의 눈물 샘을 자극하던 자서(自序)에는 “천형(天刑)의 문둥이가 되고 보니 지금 내가 바라보는 세계란 오히려 아름답고 한이 많다."

"아랑곳없이 다 잊은 듯 산천초목과 인간의 애환이 다시금 아름다워 스스로 나의 통곡이 흐느껴진다”는 주옥같은 글을 새기면서 서정시는 한층 더 애절하게 심금을 울리며 가슴에 와 닿는다.

한하운의 정취가 물씬 묻어나는 소록도의 국립소록도병원은 지난해 개원 100주년을 계기로 소록도 주민의 작품 전시가 성사되면서 그들의 예술이 재조명되고 사뭇 관심과 사랑을 받았다.

감 금 실/김정균

아무 죄가 없어도 불문곡직하고 가둬놓고
왜 말까지 못하게 하고 어째서 밥도 안주느냐.

억울한 호소는 들을 자가 없으니
무릎을 꿇고 주께 호소하기를
주의 말씀에 따라 내가 참아야 될줄 아옵니다.

-중략-

이 속에서 신경통으로 무지한 고통을 당할 때
하도 괴로워서 이불껍질을 뜯어
목매달아 죽으려고 했지만,

내 주의 위로하시는 은혜로
참고 살아온 것을 주께 감사하나이다.

<모든 이들로부터 버림받았던 한센인들이 유일하게 마음이나마 편히 누렸을 소록도병원내 일부 병동이 지금은 박물관으로 소장된채 그들의 슬픔만이 아련하게 느껴질 뿐이다.>

올들어 개원 101주년 기념으로 특별 전시한 ‘다가섬’으로 다시 찾아 사랑위에 피어난 향기로운 전시회를 개최, 또다시 세인의 이목을 끈바 있다.

소록도가 아름다운 이유는 이같이 아름다운 사람들이 살았기 때문이리라.
지난 시기 질병을 이겨냈던 그들의 흔적은 고스란히 우리의 이야기가 아닐까 싶다.

소록도 사람들의 삶의 흔적과 한센병 극복을 위한 노력, 그리고 사랑의 나눔이 한세기를 넘어서도 여전히 묻어난다.

지난 100년 아픔이 서린 고난의 역사를 되돌아보며, 새로운 100년을 꿈꾸는 그들의 전시관에는 한센병과 투쟁하며 인고의 생활을 살아온 소록도 원생들의 한센병 치료를 위해 사용됐던 각종 치료약제 및 치료기구 등이 전시돼 있다.

<한여름의 상쾌함이 밀려난 가을풍경의 소록도해수욕장은 을씨년스럽기조차 하다.>
<소록도병원에서 바라본 소록대교>

1916년 5월17일, 한센인의 진료 요양 복지 및 자활 지원과 한센병에 관한 연구업무를 수행할 목적으로 전남 고흥군 도양읍 소록해안길에 설립된 국립소록도병원.

2016년 100주년을 바라본 유구한 역사 속에서 한센인의 삶의 질 향상과 인권 증진을 위해 끊임없는 노력을 해왔다는 후일담이다.

이러한 전통은 그 세월과 함께 자란 아름드리 소나무가 무성한 소록마을 공동체문화를 일궈낸 값진 원동력이 됐다.

국립소록도병원은 한센인의 건강증진과 복지향상, 그리고 인권개선을 위한 각종 사업을 지속적으로 추진, 귀감이 된다.

이제는 그들이 지난 날 곱지않은 편견의 굴레에서 벗어나 진정 따듯한 삶을 구가할 수 있는 공감대 형성이 하루속히 다가오길 소망해 본다.
<권병창 기자/사진=국립소록도병원 제공>

저작권자 © 대한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