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의 옛 고도, 충남 부여를 지나 남쪽으로 내려가노라면 목가적인 면 소재지가 손짓한다.

다름아닌 물좋고 인심좋다는 부여군 林川면.

그 곳에는 언젠가 폐교돼 형질변경을 거쳐 자리했던 모교 임주초등학교가 지금은 무슨 용도로 상전벽해(?)가 됐는지는 모른다.

정든 교문을 나선지 어언 반세기, 세밑연말의 연례 행사인양, 이맘때면 모여든 동창회가 마흔 여섯 번째로 또다시 맞았다.

이젠 반백의 머리가 주류인 초등학교(당시 국민학교) 남녀동창들이 수두룩하지만, 해마다 건강한 반가움에 다시 찾곤 한다.

갓 60을 넘긴 환갑 나이에 이젠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숱한 추억거리는 여전히 우리의 뇌리에 자리잡아 잊혀지지 않음은 당연지사다.

실례로 편지봉투에 쌀을 담아 학교에 제출한 일, '반갑지 않은 불청객'-채변봉투, 자치기와 다마치기(구슬치기), 딱지치기(여자의 경우-고무줄 놀이, 공기 놀이), 새학기에 교과서를 받으면 달력으로 책 포장, 방학 때의 탐구생활 숙제, 비포장 신작로, 저녁때 학교운동장에서 놀다가 애국가가 울리면 멈춰 서 가슴에 손을 얹고 국기를 향해 경례를 했다.

뿐만아니다.
박치기를 한 프로레슬링 김일 선수, 어깨동무, 운동회 때의 화약총, 곤봉운동, 덤블링, 부채춤, 오재미로 대박 터트리기,청군백군 릴레이 계주, 소풍날의 환타와 오란씨.

또한, 남해안 해일피해 친구를 돕기위한 공책 보내기, 반공웅변 대회, 주산대회, 등화관제 훈련, 엿장수에게 빈병과 고무신 대나무로 맞바꿔 먹기, 버스 차장의 ‘오라이’, 책받침을 보며 구구단 외우기도 새록새록 떠오른다.

읍내에 친구나 친척이라도 있다면, 딱따구리 과자, 크낙새 연필, 낙타표 연필, 피노키오 연필, 대나무로 만든 비닐 우산, 나폴레옹 그림표지의 ‘완전정복’ 참고서도 얻어 볼 수 있었다.

<사진=SNS 발췌>

여름방학 시작 날이면 이 마을과 저 마을로 나눠 패싸움 하기는 잊지 못할 또하나의 추억거리다.

그 밖에 동아전과, 표준전과, 동아-표준수련장, 국민교육헌장 외우기,나폴레옹 그림표지의 ‘완전정복’, 태엽을 감는 불알(?)달린 쾌종시계, 라디오 프로-전설의 고향 등 아직도 생생한 용어들이다.

마지막 한 장만이 지친 얼굴을 내민 12월, 칼바람이 휘몰아치는 세밑연말이 다시 다가왔다.

가슴 한켠은 이미 이승을 등진 두눈시리도록 안타까운 몇몇 친구를 기리며, 아직 건강하게 정겹던 벗을 만나볼 수 있음에 은총과 공덕에 감사하다.

평소에 못찾고 만나지 못한 그리운 얼굴을 보고파, 2일 오후 교정이 유난히 고즈넉했던 임주초등학교 제1회 동창 모임에 설레는 마음으로 옷깃을 여민다.
<수필가 권병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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