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화현(대만)=권병창 기자/사진=윤찬기 기자]학문의 문예가 높은 왕씨 일가는 200여년전 담장 안밖으로 우물을 내 길손과 이웃에 물을 나눠 마실 수 있도록 했다.
이로 인해 우물 하나를 만들려면 일반 사람들은 사실상 어려웠던 만큼 그 당시로는 아름다운 미덕으로 여길 수 있다.
우리나라 역시 지난 1671년 조선나라에 큰 흉년이 들었다.
경주 최씨는 곳간을 과감히 헐면서 이렇게 얘기한다.
"곳간을 열어 모든 굶는 이들에게 죽을 끓여 먹이도록 하라."
그리고, "헐벗은 이에게는 옷을 지어 입히도록 하라."
이렇게 말하고 집 앞 마당에 큰 솥을 걸고 굶주린 사람을 위해 연일 죽을 끓이도록 했다.
지금도 그 자리가 '활인당'이란 이름으로 구전되고 있다.
1일 타이완의 창화현 루강(鹿港) 옛길에 남아있는 '한국판 경주 최씨집'의 '반달우물(半邊井.Half side Well)'이 메말라가는 현시대에 소리없는 웅변으로 다가온다.
"사방 백리 안에 굶어 죽는 사람이 없게 하라, 흉년기에는 땅을 사지 말라. 재산은 만 석 이상 지니지 말라."
경주 최 씨의 또 다른 유훈에 버금가는 작은 밀알이 아닐까 싶다.
창화현내 루강의 왕씨 가문이 그 당시에 택한 뜻은 타자본위(Altarity) 윤리 또는 서양의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그 옛날에 이미 실천한 셈이다.
가진 자는 그 부를 주위 사람과 나눌 의무가 있다는 아가페(agape)적인 인격과 정신적 사랑이 오롯이 담겨있는 나눔실천이리라.
그리스어로 이는 '조건 없는 사랑'이라는 뜻을 내포하기에 이 시대에도 역시 존경받아 마땅하다.
즉, 자기를 희생하고 타자본위의 이웃 생활을 ‘아가페 사랑’으로 나누며 여전히 감동물결을 선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