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음성품바축제 캡처>

[음성(충북)=윤종대 기자] 1976년 9월12일, 지금으로부터 꼭 44년전의 눈물겨운 후일담이다.

당시 오웅진신부는 이제는 고인이 된 최귀동할아버지를 만나면서 부랑인과 장애자, 정신질환자 등을 보살피는 사랑의 숲, 음성 꽃동네의 효시를 이룬다.

오 신부는 초라한 깡통을 들고 다리를 절며 성당 앞을 지나는 남루한 그 할아버지를 뒤따라 살펴보려는 노파심이 발동했다.

오 신부는 무극천 다리밑 움막에 모여살고 있는 거지들과 장애인들에게 얻어온 밥을 나눠주는 충격적인 모습에 감명받아 지금의 꽃동네가 탄생하는 기원이 됐다.

그 당시 오갈데 없는 18명을 위해 현지 맹동면에 ‘사랑의 집’을 세운데 이어 1983년 9월8일 꽃동네요양원을 준공했다.

최귀동 할아버지는 일제때 강제징용에 끌려갔다 병자가 돼 돌아왔으나 다른 병들어 버려진 사람들을 위해 40여년 남짓 밥을 얻어다 먹였다는 후문이다.

최 옹은 1986년에 받은 한국가톨릭대상 수상금 120만원을 죽어가는 불우한 자들의 집을 지어달라고 기증해 급기야 꽃동네에 ‘임종의 집’이 세워졌다.

최귀동 할아버지는 1990년 칼바람이 휘몰아치던 1월, 향년 81세로 숨을 거두면서 유일하게 온전한 한쪽 눈마저 기증, 소리없는 귀감이 되고 있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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